모태범 선수가 500m 금메달에 이어, 1000m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메달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이 청년의 나이는 이제 21살이다. 적어도 다음 올림픽까지 어쩌면 그 이후로도 이 청년의 이름은 세계 빙상계의 주요 명사로 언급될 것이다. 우리가 '위더스푼'이나 '데이비스'의 이름을 기억해왔던 것처럼.

신기한 일이다. 적어도 나는, 주변에서 취미로 '빙상'을 즐긴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빙상장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선뜻 생각나질 않는다. 스포츠를 어지간히 즐긴다는 사람일지라도 대체로 비슷할 테다. 빙상의 선전이 허구연 해설위원이 CF 모델이 되어서까지 강조하는 '인프라'의 문제는 아니란 말이다.

외신들이 정신줄을 놓는 경이로움을 표하는 상황은 그래서 이해할 만하다. 서너 살 때 동네 빙상장에서 아버지로부터 처음 스케이트를 배우며 자란 다수의 아이들 중에서 특출 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이 선수까지 이르게 되는 시스템을 가진 대다수의 나라들이 보기에 소수정예의 한국이 '빙상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500m를 남녀 동시 제패하는 광경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테다. 참고로, 한국에 선수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첫 실내 빙상장이 생긴 것은 2000년의 일이었다.

▲ 태릉국제스케이트장ⓒ태능선수촌 홈페이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빙상 뿐 만이 아니다. 주변에 주말에 활 좀 쏘러 다닌다는 사람은 없다. 우리 동네 핸드볼 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는 사람도 없고, 신체 단련을 위해 레스링을 배운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들 종목은 모두 수년 째 세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가 스포츠 강국 코리아의 불가사의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우린 정말 말마따나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스포츠를 잘하는 선택받은 '민족'인 것일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같은 몽골 계열에 알타이어족들을 봐도 그렇다. 그런 독특한 유전자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단언하건데, 이 모두는 '태능'의 힘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엘리트 체육의 산실 '태능 선수촌' 말이다. 대한민국 올림픽의 역사는 곧 태능선수촌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올림픽은 인프라의 확충을 통한 생활 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가 아니라 역량의 집중을 통해 엘리트 스포츠의 도약을 꾀하는 결과론적 목표이다.

인프라의 규모 자체가 우리와 비할 바 못되는 미국을 제외하곤, 우리처럼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합숙 시스템을 통해 올림픽을 준비하는 나라는 아마도 중국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한국과 중국의 공통점은 올림픽의 성적을 곧 '국력'으로 치환하는 셈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야 최근 들어 좀 덜해지긴 했지만, 메달의 색깔을 민족의 우수성으로 설명하는 문법을 갖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만해도 좋을 법한 촌스러움 가운데 하나인 금메달 선수에게 보내는 대통령의 축전이 여전한 것도 아마 '민족의 우수성'을 떨치고 '국력'을 드높인 젊은이를 칭송한다는 빛나는 전통의 발현일 테다.)

나는 지금 태능선수촌이 타파되어야 할 근대적 체제라거나 국가적 차원의 훈육 시스템으로 엘리트 스포츠의 성과만을 도출해내는 방식의 체육 행정을 탓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러한 일방적이고 이론적 수준의 공격과 비판은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이상의 스펙트럼일지도 모른다. 스포츠의 패러다임은 많이 바뀌었다. 비록 여전히 은메달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진 메달'이라는 모호한 찬사를 바쳐지긴 하지만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국가의 위대함과는 상관없이 모태범, 이상화 그리고 숱한 쇼트트랙 선수들 그 모든 젊은이들이 꿨을 꿈의 위대함과 성취를 즐기는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다.

김연아나 박태환과 같은 우리도 믿기 힘든 특별한 재능을 지닌 돌연적 선수들을 제외하면, 올림픽을 꿈꾸는 모든 선수들은 올림픽 출전 이전에 태능 입성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대다수의 종목에서 태능에 입성한다는 것은 곧 그이의 기량이 국내에선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선수가 이룰 수 있는 가장 멋진 도전이 준비되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모든 스포츠가 '국가'가 아닌 '자본'의 박동에 맞추어 달리기 시작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프로 스포츠는 말할 것도 없고, 김연아하면 각종 광고가 박태환하면 SK가 조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듯 스포츠가 자본의 가장 확실한 영토가 된 상황에서 태능은 그저 묵묵히 수십 년 전 그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여전히 있다. 모태범, 이상화 선수의 믿기 힘든 질주를 보면 문득, 이 지지부진한 정체를 뭐라 불러야 할 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땀을 태능에 흘려 벌리고, 얼마나 많은 원망과 고함을 불암산에 버려두고 온 것일까?

아마도 우리는 최소한 당분간은 캐나다 혹은 유럽의 어느 나라들처럼 거의 모든 스포츠가 생활 스포츠 인프라에서 출발하여 엘리트 체육까지 기울지 않는 정형의 피라미드를 이루는 구조를 갖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의 스포츠는 꽤 오래도록 조깅, 헬스, 수영, 등산 정도에 머물 것이 분명하고 그 너머의 종목들은 그저 보는 것으로 만족 할 수밖에 없을 테다. 이 기울어진 구조를 탓하는 것은 쉽지만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난맥은 간단히 걷힐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번 올림픽을 보며, 그나마 존재하고 있는 엘리트 체육의 유일한 산실인 태능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태능 선수촌의 식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그때 밥값을 놓고 흥정을 벌어야 했던 이들 가운데 이번에 '민족의 우수성'을 떨치고 '국력'을 드높인 이들이 나온 셈임을 생각하면, 뭔지 모를 비애와 부끄러움마저 든다. '자본'에 박동을 맞춘 스포츠의 무한 질주 속에서 '태능리언'들이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은 차라리 새로운 형태의 '헝그리 정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었을 테다.

정권이 바뀌면 언제 걷어질지 모를 자전거 도로 일랑 이제 그만 깔고, 모태범, 이상화 선수의 레이스에서 심장 떨림을 조금이라도 느끼셨거든 그나마 한국 스포츠 특히 비인기 종목의 최후의 보루이자 기적의 발원지로 존재하고 있는 태능에 투자를 좀 더 하시길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 명색이 국가대표 선수인데, 밥값 걱정하는 것은 '국력'에 어울리지 않냐 말이다. 인프라, 그래 맞다. 문제는 다시 인프라이다. 국가대표 조차 인프라 탓에 훈련을 종목별로 쪼개 하는 나라에게 '빙상 최강국'이란 칭호는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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