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을 잠시 중단한 채 머리 깎고 입대하는 주변의 많은 학우들과 친구들을 보아왔다. 한창 젊음을 즐기고 청춘을 만끽할 시기에 군대라는 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선배, 동기, 후배들을 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늠름하게 여겨왔다. 그리고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여자인 나로서는 약간의 미안함도 있어왔다.

그런데 요즘 나는 대한민국 보통의 남자라면 꼭 치러야 할 군 복무가 과연 신성한 것이라 할 수 있는지 깊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병역의무가 나라를 지키는 '신성한 의무'이기 이전에 우리 학생들에게는 '빚더미 멍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든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기꺼이 군대를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국방의 의무, 병역의 의무라는 국민의 4대 의무를 성실히 지키기 위해서 군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의무를 다하려 하는 젊은이들에게 도대체 정부는 왜 혜택을 주지는 못할망정 불이익을 주려 하는 것인가.

▲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취업후 상환제 전면수정과 등록금 상한제 도입을 요굿하며 1월 13일 오후 국회앞에서 기습 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오마이뉴스

'신성한 의무'가 신용불량자를 양산한다면?

ICL에는 여러 가지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가장 모순적으로 비춰지는 부분은 나라의 의무를 이행하는 기간 중에도 정부로부터 대출한 학자금 이자는 복리로 꼬박꼬박 쌓여간다는 것이다. 군대를 안가거나 면제를 받았다면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만큼 빨리 졸업해서 취업도 빨리 할 수 있고 학자금도 빨리 상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에서 부여한 의무를 위해 학창생활은 물론이고 사회생활도 할 수 없는 2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대출한 학자금의 이자를 꼬박꼬박, 그것도 복리로 따져서 받아가겠다고 하니 군대를 가라고 장려하는 것인지 기피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기피해보라고 권장하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국가가 부여한 의무를 착실히 이행하면 오히려 인센티브를 주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면 개인적으로 불이익이 되고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 놓는다면 과연 그러한 정부, 그러한 국가를 젊은이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입장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군대를 가야만 하는 당사자들은 오죽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까. 이것은 TV프로 1박 2일에서 개그 소재로 자주 나오는 ‘복불복 게임’보다도 훨씬 더 비합리적이다.

지난 1월, YMCA ‘대학생 신용지기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학자금 대출 경험이 있는 대학생의 80%가 ICL을 찬성했지만, 그 중 61%만이 ICL을 선택하겠다고 답변을 했고, ICL을 선택하겠다는 군 미필 남학생은 50%에 불과했다. 이것은 연 6%에 달하는 높은 이자율과 군 복무 기간 중 이자 부담 문제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5, 6년 전 대학생 신용불량자가 사회 문제화 된 적이 있었다. 2005년 신용불량자에 대한 신용회생 대책으로 8만 명가량의 신용불량자의 병역기피 현상을 막고 청년 신용불량자의 구제를 위해 군 복무 기간에 더해서 6개월까지 무이자로 대출금 상환을 유예하는 조치를 한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ICL을 통해 신용불량자가 아니고 부족한 학자금을 대출 받은 학생들에 이자 계산을 군 복무 기간까지 가산하여 적용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멀쩡한 대학생들을 신용불량자로 양산시키겠다고 작심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정부는 군 복무 기간 동안의 이자를 유예할 경우 발생할 추가적인 재정 부담이 문제라고 하는데, 3~4% 정도인 중소기업 정책 금리, 농업 정책 금리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비싼 이자율을 대학생들에게 받으면서 추가 재정 운운하며 난색을 표시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한 비용이 청년들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고 회피하고 싶은 ‘빚더미 멍에’로 인식하는 것보다도 진정 중요한 문제인가. 이러한 모순된 제도가 지속된다면 건강한 젊은이들의 생각을 훼손시키는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해결은 빠를 수록 좋다

ICL. 참 문제가 많은 제도이다. 최대 원금의 세 배까지 갚아야 하는 복리형 높은 이자율, 불완전한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해명할 수도 있고 또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열 번, 스무 번 생각해봐도 경제활동도 못하고 사회활동도 할 수 없는 군 복무 2년 동안 비싼 학자금 이자를 갚으라고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조치이다. 아니, 이해는커녕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이다.

졸업하자마자 백수가 되어야 한다는 ‘졸백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을 더이상 비합리적인 제도의 희생물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선배, 친구, 후배들의 뒷모습이 측은하고 애처롭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다 늠름하고 당당하게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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