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탄’이라는 게 있었다. ‘빠바바방’ 소리와 함께 경찰의 페퍼포그 차량이 쏟아낸 지랄탄은 일정한 방향 없이 사방으로 튀며 최루가스를 쏟아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니 일단 지랄탄이 떨어지면 최대한 멀찌감치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이 사랑한 지랄탄은 대규모 시위대를 해산시킬 때 효과적이었다.

지랄탄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최루탄은 과잉진압의 상징이었다. 최루탄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비난 여론도 높아졌다. 민주화 이후 지랄탄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민주노동당과 전교조, 전공노를 겨냥한 검경의 수사 행태가 바로 이 지랄탄을 떠올리게 한다. 정확한 수사 대상과 수사 범위, 수사의 목적을 파악하기 힘들다. 여기저기 쑤셔대다가 걸리면 걸리는대로 걸겠다는 건지, 크게 걸릴 게 없으니 대충 헤집어놓고 빠지겠다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등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경찰의 민주노동당 서버 압수수색을 “6·2 지방선거를 앞둔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9일 오후 국회 본청앞에서 공동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남소연 오마이뉴스

민노당 등에 대한 경찰 수사는 200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국선언에 나선 전교조 지도부를 수사하던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계좌 정보, 이메일 등의 수사자료를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1월25일 경찰은 전교조 및 전공노 조합원의 민노당 가입과 당비 납부 사실을 확인해 이 가운데 1차로 69명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출석요구서를 발부했다고 밝혔다. 물론 그 전에도 검찰과 경찰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와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주경복 후보를 도운 전교조 교사에 대해서도 검경의 수사는 어김없이 이어졌다.

수사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법원에서 일제고사 거부 교사에 대한 징계가 무리라는 판결이 잇따랐다. 전교조 교사의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무죄 선고가 나왔다. 민노당 앞에서도 검찰은 체면을 구겼다. ‘공중부양’ 혐의로 기소된 강기갑 민노당 대표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대검찰청은 보도자료까지 반발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노당과 전교조 등을 상대로 진행된 검경의 수사 일지를 되짚어 보면, 애쓰는 것에 비해 한 일이 참 없다 하는 생각은 든다.

전교조 및 전공노 소속 조합원의 민노당 가입 혐의는 검경 입장에서 볼 때 대단한 호재임에 틀림없다. 현행법은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민노당과 전교조를 동시에 타격하려면 이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교사나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왜 막아야 하냐고 물어보면, “불법이니까”라는 수준 이상의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경찰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현행법상 교사의 정당 가입은 금지돼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민노당 당원 명부를 입수해 일일이 ‘정체’를 파악해보면 간단할 것 같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2006년 당비대납 사건을 수사할 때 당시 검찰도 한나라당 당원명부를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경찰의 좌충우돌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민노당의 반발을 뚫고 홈페이지 서버를 뜯어갔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다음에는 민노당의 CMS 당비 계좌를 문제삼으며 오병윤 민노당 사무총장 체포를 시도했다. 게다가 이 계좌의 출금 내역은 물론 입금 내역까지 확인하겠다고 나섰다. 한마디로 민노당의 어떤 당원이 당비를 얼마나 냈는지 등 ‘민노당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CMS 계좌에서도 추가 단서를 포착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노당 쪽에서 이 계좌는 경찰과 수구언론이 주장하듯 ‘돈 세탁’을 위한 ‘비밀 계좌’가 아니라 1988년부터 관리해온 CMS 당비 계좌라는 사실을 밝히고 나섰다.

정리하면 민노당에 대한 경찰 수사는 저멀리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수사에서 비롯해 민노당 홈페이지 서버 압수수색, CMS 계좌 수사까지 흘러왔다. 경찰은 최근 여기서 한 술 더떴다. 경찰이 민노당 당사를 압수수색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의 진짜 목적은 여전히 헷갈린다. 시국선언한 교사가 미워 그 출신을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건지,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 가입 실태를 뿌리뽑겠다는 건지, 민노당의 ‘비밀 조직’을 파헤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투덜남C는 서울 여의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언론사 정치 담당 기자다.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의 꿈은 원대했다. 유재석의 위트와 손석희의 날카로움, 서태지의 기발함이 골고루 배인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10년을 보낸 지금, 기사야 어떻게 됐든 일단 주변으로부터 ‘싱겁다’ ‘까칠하다’ ‘4차원이다’라는 소리를 듣는 데는 성공하고 있다.

‘구타유발자’는 가끔, 때로는 자주 길을 잃고 헤매는 자본과 권력을 위해 투털남C가 준비한 선물이다. 제목은 험악하지만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다 잘 되라고 하는 소리다. 그냥 구타가 아니라 ‘사랑의 매’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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