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박기영 기자] 방송에서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성인지 교육 확대 등 양성 평등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원구원 선임연구원은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디어 내 성평들을 위한 연속토론회' 발제를 통해 서울YWCA의 방송 모니터링 결과를 근거로 “방송 내 성차별이 만연하다”고 주장했다.

30일 국회 의원회관 2세미나실에서 '미디어 내 성평등'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미디어스

이 연구원은 "서울YWCA의 ‘드라마의 성차별성’ 모니터링 결과, 드라마 출연 남성의 직업은 사장, 의사, 국회의원, 검사 등 전문직이 많지만 여성은 육아나 회사원, 판매사원, 아르바이트 등이 많았다”며 “실제 육아 하는 여성이 많긴 하다. 하지만 작가들이 상상력을 키워서 만들어야 재미와 쾌락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방송을 보면)남성적 주제라고 여겨지는 정치는 남자가 보도한다. 앵커의 연령도 남자는 '노련하고 원숙한' 앵커가 하고 여자는 '꽃 같은' 여성이 한다”며 “드라마에는 여성비하가 많고 남성의 위계화를 전달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성의 나체화가 많이 나왔는데, 그림들은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여자는 보여주는 주체고 남자는 보는 주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라며 “방송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 대안적인 사회는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서울YWCA가 조사한 ‘시민이 고발한 미디어속 성차별’ 사례를 소개했다. 관련 사례에는 ‘뽀롱뽀롱 뽀로로’에서 분홍색 캐릭터인 ‘루피’만 요리를 하고 나머진 먹기만 하는데, ‘루피’는 높은 목소리와 여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아이들에게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라인프렌드 캐릭터 중 ‘브라운 & 코니’ 캐릭터가 연인 설정인데,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명품백을 계산하게 하는 스티커와 직장 여성 코니가 업무 중 거울보고 셀카를 찍는 스티커 등이 ‘된장녀 프레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외 tvN <코미디 빅리그>, KBS <개그콘서트> 등에서 성비하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토론에 참여한 전별 법률사무소 동일 대표변호사는 “여성정책이 패러다임이 ‘여성발전’에서 ‘실질적 양성평등 실현’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성별 영향분석 평가, 성인지 예산, 성인지 통계, 성인지 교육 등 정부가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책의 양성평등 효과를 강화할 수 있는 각종 조치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변호사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30조 양성평등 조항과 방송법 33조 심의규정, 제100조 제재 등을 들어 방송 내 양성 평등이 강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조항은 ‘방송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해야 한다’, ‘방송은 특정 성을 부정적, 희화적, 혐오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등의 내용이다.

이어 외국 방송사의 지침서를 사례로 들어 양성 평등을 강조했다. 영국 BBC는 ‘프로듀서를 위한 지침서’에 ‘차별적인 표현 금지’, ‘프로그램 진행자의 인종 및 성비 동일하게 구성’, ‘불필요한 경우 성에 대해 명시하지 말 것’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호주의 지침서 ‘Fair Exposure Guideline'은 ‘성 폄하적인 고정관념과 성차별적인 언어사용을 피할 것’, ‘여성과 여성의 관심을 보도와 토론프로그램에서 충분히 반영할 것’, ‘공공문제에 대해 여성의 의견을 충분히 구할 것’ 등이 담겼다.

토론자로 참가한 곽현화 영화배우 겸 개그우먼은 “영화배우 겸 개그우먼으로 소개됐지만 웬만한 방송 일은 다 해본 것 같다. 음반도 잠깐 냈었다”며 “처음 방송에 데뷔할 때 섹시하다는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12년이 지나고 나니까 내가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조성된 분위기에 휩쓸렸던 건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일례로 운동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특정 부위를 카메라로 비추더라.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방송에서 요구하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라고 토로했다.

또, “제작사의 입장에서도 여자는 엄마 캐릭터 아니면 섹시한 캐릭터 양분할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소재를 해줬으면 좋겠다”며 “그럼 충분히 재미있는 내용을 많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KBS PD는 토론에서 “(내가)다큐멘터리나 시사 쪽을 하는 PD다 보니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뭘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며 “문제의식 자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노력 자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토론에 참가한 김형성 방송통신 심의위원회 방송심의기획팀 팀장은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일반 시청자들이 방송에서 성평등 문제를 얼마나 느낄지는 시청자들이 민원을 얼마나 넣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며 “(민원은)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과 PPL 등에 집중되며, 양성 평등에 대한 민원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심의는 사회인식을 선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후반영한다. 사회인식이 더 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인지 교육을 방송 제작진까지 확대한다거나, 방송 모니터닝, 여론 조성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과거 전국 노래자랑에서 남자 초등학생이 나와서 송해 씨가 성기를 만지는 장면이 방송에 나와 권고를 받았다”며 “이걸 보고 남자 초등학생이 아니라 여자아이였으면 현행범으로 체포됐을 것으로 생각했다. 남녀 성평등부터 인식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해당 토론회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국회시민정치포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 법조인협회 공익인원센터,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 운동본부, 한국PD연합회 등이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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