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동계 실내 스포츠 중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던 농구의 인기는 머나먼 추억이 되었고, 마니아들의 관심만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대중의 관심을 이끌만한 스타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이제는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 있는 90년대 농구대잔치 인기몰이의 주역들이 여전히 선수들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역주행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2016-2017 KBL 챔피언 결정전(KGC vs. 삼성)은 KBL도 충분히 스토리텔링을 내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 명승부였다. 특히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된 6차전은 근래 KBL에서 보기 힘들었던 짜릿함과 흥미진진함이 끝까지 지속되며 기억에 남을 만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이번 KBL 챔피언 결정전은 사상 처음으로 90년대 농구대잔치 인기몰이 주역들 간의 사령탑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이번 챔프전 매치업인 정규시즌 1위 KGC의 김승기 감독과 3위 삼성 이상민 감독은 현역 시절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주역들이었다.

2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서울 삼성 썬더스와 안양 KGC 인삼공사의 경기. 삼성의 이상민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현역시절 인기도는 연세대의 사상 첫 농구대잔치 우승의 주역이었던 이상민 감독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중앙대를 이끌면서 저돌적인 돌파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김승기 감독은 '터보가드'라는 닉네임과 더불어 남성팬의 인기 또한 꽤나 모았었다.

그러나 프로무대에서 김승기의 모습은 아마시절의 전성기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프로농구 출범 초기 현란한 기량을 지닌 외인 용병가드들에 밀리면서 자신의 전매특허를 보여줄 기회를 찾지 못했고, 소속팀 삼성 썬더스의 부진과 더불어 팀이 리빌딩을 할 때 당시 나래 소속의 주희정과 트레이드 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주희정은 삼성에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맹활약을 펼치면서 팀을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으로 바꿔 놓는 데 기여하고, 마침내 2000-2001 시즌 팀이 프로무대에서 처음으로 챔피언 자리에 등극하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게 된다. 김승기 또한 팀이 삼보로 명칭이 바뀐 이후 2002-2003 시즌에 처음으로 챔프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된다. 하지만 김승기의 역할은 식스맨이었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은 김승기는 선수시절에 이어 코치로서도 소속팀의 우승을 맛보게 된다(동부 2007-2008). 이후에도 자신의 지도자 경력의 스승인 전창진 감독을 묵묵히 모시면서 그는 단계적으로 지도자 역량을 쌓아간다.

2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서울 삼성 썬더스와 안양 KGC 인삼공사 경기. 안양 김승기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마침내 정식 감독 직함을 달고 김승기 감독은 팀을 챔프전에 올려놓는다. 삼성의 이상민 감독 또한 선수시절에 이어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을 맞이하게 된 상황. 양팀 감독은 현역시절 숱한 큰 경기 경험을 해서인지 챔피언 결정전 초보감독이라는 티가 나지 않고 오히려 어지간한 베테랑 감독보다 더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었다.

선수들은 치열하게 코트에서 맞대결을 펼쳤고, 어쩌면 2017-2017시즌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6차전에서 양팀은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는 최고의 명승부를 연출했다.

KGC의 주장 양희종은 믿겨지지 않는 신들린 슛감각으로 9번의 3점슛 시도 중 무려 8번을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그의 3점슛이 림에 꽂힐 때마다 짜릿함의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특히 팀이 83-85로 뒤지던 상황에서 위태로운 자세에서 볼을 잡은 사이먼이 넘어진 상황에서 3점슛 센터라인 지점에 서있던 양희종에게 혼신의 힘을 다한 패스를 건넸고 이를 잡은 양희종이 극적으로 3점슛을 성공시키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KGC 양희종이 3점슛을 성공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맞서 삼성의 노장가드 주희정은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에너지로 상대 코트를 유린한다. 그리고 양희종의 3점슛에 맞서 똑같이 3점슛으로 응수하면서 기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게 팀을 리드한다.

6차전을 앞두고 부상당한 사익스 대신 투입된 KGC의 신입용병 마이크 테일러는 바로 이틀 전에 팀에 합류한 선수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팀에 빨리 융화되었고 현란한 개인기로 코트를 휘저으면서 2쿼터 팀 공격을 주도하였다. 20분만 뛰었지만 16점을 올리는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팀 사기를 끌어올렸다.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런 용병을 데려왔냐고 중계를 하던 해설위원이 감탄할 정도로 KGC 구단 스태프의 발 빠른 움직임은 팀 우승에 숨은 공신이었다.

크레익과 몸싸움 하는 과정에서 갈비뼈 부상을 당한 KGC 간판센터 오세근은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고비 때마다 골밑 득점을 올려주었다. 삼성의 센터 라틀리프는 여전히 지칠 줄 모르는 활약으로 팀 공격의 80%를 이끌었다. 그의 활약은 만약 귀화한다면 오세근과 더불어 경쟁력 있는 포스트 진용을 구축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KGC 오세근이 득점에 성공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엎치락뒤치락하며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던 살얼음판 승부는 이정현이 1대1 돌파를 통해 절묘한 골밑 레이업을 성공하면서 마무리가 된다. 작전타임 때 본인이 책임지고 1대1 공격을 하겠다던 이정현은 자신의 말을 스스로 지켰고, 2차전에서 이관희와의 충돌로 인해 본의 아니게 팀 사기에 영향을 미쳤던 미안함을 우승 결승골로 통쾌하게 되갚았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승부 속에 잠실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농구팬들은 모처럼 농구대잔치 시절의 짜릿함을 느꼈을 것이다. 6차전 당일 프로농구를 주관하는 KBL은 밀실행정을 통해 졸속으로 김영기 회장 연임을 결정하는 수준 낮은 구태를 연출했다. 모처럼 KBL의 열기가 되살아날만한 기미가 보일 때마다 KBL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였다. 입장관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왜 그런지는 밖에서는 다 알고 있다. KBL 수뇌부만 빼고 말이다.

이번 챔피언 결정전처럼 수준 높은 승부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미되면 KBL의 인기는 충분히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늘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는 KBL이 바뀌지 않는 이상 별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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