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최저기온 영하 5도로 올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한 16일 낮 12경,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계약직지부 조합원 30여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정규직 해고주범 이병순은 각성하라' '국민의 방송 KBS, 비정규직 일괄해고' 등의 피켓이 그들 앞에 놓여있었으며, 그들 곁에는 10여명의 청경들이 서있었다.

▲ 서울 여의도 KBS본관 건너편에 설치된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의 플래카드. ⓒ곽상아

▲ 16일 낮 12경,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는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조합원 30여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곽상아
이날 KBS본관 앞에서는 신임 사장후보자 중 한명인 홍미라 계약직지부장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으나 홍 지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3일 KBS측과의 교섭결렬로 총력투쟁을 선포한 홍 지부장은 조합원 7명과 함께 KBS본관 안의 민주광장에서 4일째 철야농성을 진행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교섭이 결렬된 13일 오전, 당초 계약직지부원 50여명이 KBS본관 로비에서 농성을 벌였으나 청경이 이들을 강제로 끌어낸 탓에 홍 지부장을 비롯한 8명만 남은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취재하러 온 기자들까지 막는 KBS

이날도 청경들은 KBS본관 정문 앞에서 일일이 신분과 용건 등을 확인한 후 출입을 허락했다. 평소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던 본관 로비에 계약직지부 조합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더군다나 청경들은 이 문제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까지 막아섰다.

▲ 서울 여의도 KBS본관 로비에서 4일째 철야농성중인 계약직지부 조합원들. ⓒPD저널
한 조합원은 "우리가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청경들이 지난 13일부터 본관 앞을 지키고 있다. 우리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데 우리만 막는다"며 "우리 문제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까지 막는다"고 말했다.

KBS 안전관리팀 관계자는 기자들을 향해 "홍보팀을 통해서 (출입기자인지) 확인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기자들은 "취재방해"라며 항의했으나, 청경들은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 출입통제 탓에 한 기자가 본관 내부의 상황을 유리문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곽상아
덕분에 출입등록이 돼 있지 않은 몇몇 기자들은 KBS본관 안의 상황을 유리문을 통해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본관 안에서 철야농성 중이던 한 조합원이 잠시 문이 열린 틈을 타 "사진이라도 대신 찍어주겠다"며 기자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으나 즉각 청경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결국 이날 기자회견은 당사자인 홍 지부장이 없는 채 진행됐다. KBS계약직 지부는 "사추위의 홍미라 후보 추천이 단순한 구색맞추기용이 아닌 공영방송의 가치와 지향점에 대한 진정성있는 고민과 숙의, 공론화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며 "홍미라 후보가 꿈꾸는 공영방송은 세상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그동안 소외되어 온 계층을 보듬고자 하는 방송"이라고 밝혔다.

계약직지부는 KBS가 구현해야 할 7대 가치로 △국가와 시장권력으로부터의 독립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배려와 인간 존중을 통한 '휴머니티'의 구현 △자유로운 조직과 창의적인 문화, 독창적인 콘텐츠를 통한 '크리에이티브' 구현 △다양성 구현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하는 최고의 품질 구현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 도시와 시골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사회문화적 '녹색' 혁명 △정의, 성실, 공정에 대한 '책임' 경영 구현 등을 제시했다.

"KBS노조, 비정규직 문제 해결 앞장서달라"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KBS노조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 ⓒPD저널
윤해숙 KBS계약직지부 부지부장은 "그동안 공간 문제 등에서 도움을 준 KBS노조에 감사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정규직이 나서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촉구했다.

그는 "국민이 수신료를 내는 이유는 KBS가 이 사회의 소외된 곳까지도 두루 살펴보라는 뜻인데, 내부에서부터 사회적 약자들을 잘라낸다면 과연 KBS는 시민들 앞에 당당할 수 있겠느냐. 이병순 사장이 연임하면 곧 정규직에도 '경영효율'이라는 이름의 구조조정이 들이닥칠 것"이라며 "공영방송 사수투쟁에는 사장선임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 KBS본관 정문에는 '정치 독립적 사장 선임'을 촉구하는 KBS노동조합의 피켓이 붙어 있었다. ⓒ곽상아

▲ 기자회견 직후 본관 진입을 시도한 조합원들과 이를 제지하는 청경들 사이에서 몸싸움이 일어났다. ⓒPD저널
기자회견 직후 조합원 30여명은 "우리들의 일터다. 들어가게 해달라" "계약직도 직원"이라며 본관진입을 시도했으나 청경들의 제지로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관계자들은 청경에 의해 끌려나오는 등 몸싸움이 10여분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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