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2일 한나라당이 날치기 기도한 신문법․방송법 개악안은, 하루 전인 7월21일 한나라당이 의원총회에서 결의한 최종안이 아니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요구로 생색내기 차원에서 포함된 매체합산 점유율 30%, 미디어다양성위원회 설치 등이 포함된 수정안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지난해 12월부터 고집해온 원안이라는 것이다. 물론, 수정안이나 원안이나 '오십보 백보'이다. 매체합산점유율 규제는 속빈 강정이고, 미디어다양성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장의 사조직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차는 위법․위헌인데 그 절차의 결과물은 무효는 아니다'는 헌법재판소의 10월29일 엽기적인 결정과 관련지어 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무엇보다, '무효는 아닌, 그렇다고 유효하다고 할 수 없는' 결과물이 원안이냐, 수정안이냐는 블랙 코미디가 새롭게 불거진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게 아니다. '절차는 위법․위헌인데 결과물은 무효가 아니다'는 엽기 총론이 나오는 과정에서 일부 헌법재판관들이 펼친 말장난의 적나라한 밑천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월29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언론법 등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선고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엽기 각론 1 '3분, 방송법 질의․토론하기에 충분', '대리투표 수가 과반에 영향 못주면 괜찮다'

말장난의 장본인들은 이강국(소장), 김희옥, 민형기, 목영준 재판관 등 4명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들 4명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 판결의 중간에서 판을 흔드는 재판관이라는 의미에서 'swinger'라고 부른다고 한다. 판을 흔드는 중대한 구실을 한 이들 4명의 논리는 엽기 총론을 뒷받침하는 '엽기 각론'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장 이강국씨, 재판관 김희옥씨는 질의․토론 절차가 생략된 것에 대해 신문법에서는 위법으로 심의표결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방송법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왜 이런 갈지자 행보를 보였는지에 대해 헌재 결정문을 보면, 가장 결정적인 요건의 하나가 법안 내용이 국회 회의 진행 시스템에 입력된 뒤 투표가 시작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게 신문법은 30초였고, 방송법은 3분이었다. 두 재판관은 30초는 질의․토론 절차를 하기에 너무 짧은 반면, 3분은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한나라당이 질의․토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긴 했지만, 야당은 이 "충분한" 3분 동안 질의․토론을 할 수 있었단다. 바로 2분30초의 차이가 이들 재판관의 갈지자의 근거였던 것이다. 거의 애들 장난 하는 수준이다.

엽기 각론 2 '신문법 절차 위반엔 초등학교 산수 적용', '방송법 위법투표엔 헌법상 의사절차 적용'

재판관 민형기․목영준씨는 우아하게도(?) 헌법에 규정된 국회 의사절차를 들먹이며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두 사람은 신문법 처리 과정이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리투표가 있었지만, 투표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이라서(대리투표 확인된 수가 3명이라며) 괜찮다고 했고, 신문법 효력 무효 확인 청구도 기각했다. 30명으로 이뤄진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 18표를 득표한 애가 반장이 됐는데, 대리투표가 2표가 있긴 했지만, 과반인 16표를 넘었기 때문에 반장은 반장이다고 설교한 셈이다. 신문법 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대리투표, 사전투표 등에 대해 헌법에 규정된 국회 의사절차, 투표 원칙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따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방송법의 경우, 이들 두 사람은 일사부재의, 사전투표 등 위법이 저질러져 심의표결권 침해가 이뤄졌다고 인정했다. 그래 놓고서는 방송법 효력 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서는 헌법상 정해진 국회 의사절차는 ‘다수결의 원칙’, ‘회의공개의 원칙’밖에 없는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들 두 재판관은 신문법 처리 과정에서 저질러진 대리투표는 대의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1인 1표에 위배되는지는 판단하지도 않았다. 그래 놓고서는 방송법에서는 헌법상 정해진 국회 의사절차 운운하며 기각한 것이다. 무효 확인 청구를 기각하며 신문법에서는 초등학교 '산수'를 적용했고, 방송법에서는 헌법상의 국회 의사절차를 들이댔다는 얘기다. 산수와 헌법을 넘나드는 과감한 용기를 선보인 셈이다.

‘입법 절차는 위법인데, 입법 결과는 무효가 아니다’는 엽기 총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swinger들의 이런 엽기 각론들이 자리하고 있다. 2분30초 차이로 심의표결권 침해 여부 결정하기, 한 쪽에는 초등학교 산수 적용하기, 다른 쪽에는 헌법상 의사절차 적용하기 등 상식 이하의 갈지자는 누가 봐도 이들 재판관의 깜냥을 의심하게 만든다. 야당이나 여당이나 일방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놓고서, 서로 '답안지'를 돌려보며 자기 답안지를 수정하는 작업을 거친 결과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듯싶다.

그런데 이들 재판관이 '무효는 아니다'며 펼친 이런 엽기 각론들의 논의 대상인 신문법 개악안은 한나라당의 수정안(최종안)이 아니라 원안이란다. 다수결 원칙, 회의 공개 원칙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무효는 아니다'는 엽기 각론의 논의 대상인 방송법 개악안 역시 마찬가지다. 참 "충분한" 3분이었고, 참 편리한 초등학교 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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