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뿌듯한 몸만큼이나 하늘이 무겁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잔뜩 물먹은 구름이 산중턱에 걸려있습니다.

지난주에 갑자기 추워지면서 눈이 내려 올 해는 겨울이 빨리 오는가 싶어 난로 들이고 마음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이틀 추위가 찾아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날이 이어져 가을을 공짜로 얻은 기분입니다.

이틀 추위에 온 동네 감이 모두 얼어 올해는 곶감농사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랫마을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칠십 평생 동안 입동 전에 감이 얼기는 올해가 처음이라 하십니다.

줄줄이 매달린 곶감이 풍경으로도 아름답지만 생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올 가을 농사를 망쳤으니 모두들 허탈해 합니다. 밤낮으로 아이들과 둘러앉아 감을 깎느라 하루하루가 바쁠 때인데 감을 깎지 못해 한가한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아이들 감 깎는 실력이 늘어 올해는 곶감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는데 아이들 부려먹을 생각부터 한 죄를 들켰나봅니다.

지난 겨울 지나고 부쩍 키 자란 큰 녀석 보면서, 산에서 땔나무 끌어 내려오고 쪼갠 장작 나르는 걸 보면서, 감 깎는 모양새가 지난해와 달라짐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랐음을 느낍니다.

올해부터는 자기들 방 불도 땝니다. 불 때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불쏘시개를 손도끼로 만들어야 합니다. 처음 잡는 손도끼로 장작을 쪼개려니 잘 안되는지 몇 번 짜증도 내고 힘들어 하더니 이제는 제법 익숙합니다.

만들어진 불쏘시개는 불붙이기 좋고 공기가 잘 들어가게 걸쳐져야 합니다. 이 간단한 이치가 불붙이는데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빠가 어떻게 불을 붙이는지 몇 번을 지켜본 다음 아이들이 터득했습니다. 불쏘시개에 불이 잘 붙으면 굵은 장작을 아궁이 가득 넣어 화력을 높입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일입니다.

처음 몇 번은 아이들이 불 때는 아궁이를 몰래 가서 살피곤 했는데 지금은 아주 익숙한 솜씨로 불을 지피기 때문에 굳이 살피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처음 불붙일 때 마음 뿌듯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짜증내고 몇 번을 실패하고 불붙이기를 성공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그렇게 삶을 배워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조그만 불꽃에서 시작하듯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 성공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배우리라 생각했습니다.

실패를 반복하면서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고 실패 속에 성공의 열쇠가 있다는 걸 배울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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