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정치인뿐이겠는가. 맘대로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항상 양지에서, 오르막을 오르며 생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류 공통의 아주 보편타당한 이기심이다. 하지만 어디 그런 인생이 있겠는가. 모두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어떤 정치인도 항상 양지에서 오르막의 흐름으로 경력을 이어갈 순 없다.

특히나 '대운'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오르막은커녕,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리막과 음지의 연속에서 비운과 시련의 쓴 국물을 삼켜야 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곱절은 길다. 그러다가, 대운이라는 것이 그렇듯, 순간엔 알 수 없고 돌이켜봐야 알게 되는 어느 한 순간이,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듯 극적인 순간으로 치환되고, 때마침 그때 내리막과 음지에서 익힌 삶의 지혜들이 발휘되어, 비로써 강렬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일 테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여의도통신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보'라고 불렸던 노무현의 이력이 그랬고, '인동초'에 비유되었던 DJ의 정치 역정도 그랬다. MB 역시 따지고 보면, 정치인으로서의 행보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화'에 가까웠던 그의 청장년 시절과 비교하자면 서울시장이 되기 전까지 정치라는 경험은 다른 노년들이 그러한 것처럼 인생의 내리막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박근혜, 그는 어떠한가? 그는 이 보편타당의 법칙에서 이탈해있다. 물론, 떼어 놓은 당상이라 여겼을지 모를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고, 아주 먼 과거에는 한나라당의 주류들에게 밀려 탈당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경선 패배와 사소한 정당의 드나듦을 근거로 그의 정치에도 분명 내리막이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보건데, 그는 분명히 그리고 여전히 지속적인 오르막의 흐름에서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현존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이한 정치인이 분명하다.

왜일까? 사과는 떨어지고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보편타당의 세계이건만 어찌하여 그는 다르단 말인가. 질문은 던져보고, 의문을 품어봐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무릇 누구라도 한번 쯤 내리막의 비탈길에서 오로지 생존과 회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불우(!)한 경험들의 연대감으로 여야 가릴 것 없는 직업적 유대를 갖는 법인데, 어찌하여 박근혜만은 정치인의 숙명과 같은 그 가혹함에서 비껴서 있는 것인지 말이다.

혹자들은 어릴 적 어머니와 아버지를 잇달아 불우하게 여윈 그의 특별한 현대사적 경험을 말한다. 맞다. 그의 그 경험치가 '선거의 달인', '근혜 불패'의 신화를 만든 힘이었다. 박정희가 아닌 박정희가 통치했던 시대와 특별한 정서적 유대를 갖고 있는 세대들에게 그는 자신의 호시절을 불러일으키는 낭만의 아이콘이다. '우리 애가 근혜 보다 몇 살이 많더라' 혹은 '내가 박지만보다 몇 살 어리다'로 세대가 규정되는 이들에게 박근혜의 현대사적 경험은 곧 각각의 인생들이 사회적 연령을 먹어가던 기억과도 같다. 사람은 대개 불우했건, 부당했건 상관없이 과거에 대하여 미움보단 그리움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근혜 불패'의 신화는 없다. 그가 여전히 선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겠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이다. 집권당이 된 한나라당의 실정을 그가 환기하는 이미지가 모조리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근혜 불패' 신화의 재현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그가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친박'이라고 하는 박근혜 팬덤층이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온 상황이 그녀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이유겠지만, 그 속내에는 영남을 제외하곤 그녀의 실질 영향력이 과거와 갖지 않다는 사실 관계의 확인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패 신화'의 중단을 박근혜의 내리막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오름세의 주춤함이라곤 할 순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세다. 정국의 주요한 쟁점이 퍼덕일 때마다 언론은 그에게서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미디어법이 처리될 때고 그랬고, 최근의 세종시 문제에서도 그렇다. 이때마다 그는 예전의 '수첩공주'에서 별로 진전된 것이 없는 '원칙'과 '원론'을 벗어나지 않는 신비주의 전략 같기도 한 애매모호함을 취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해가는 고도의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미디어법 처리 국면에서 그는 직권상정을 반대하는 것 같기도 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대세에 따랐다. 이미지에 약간의 손상을 입었지만, 모두들 그러려니 했다. 그는 여전히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치인이다. 이후 한 동안 언론의 프레임에서 사라졌던 그가 다시 등장한 것은 세종시 문제였다.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세종시 문제에 대한 원칙, 국민과의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원론을 제기함으로써 한나라당은 물론 보수 진영 전체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녕, 그는 세종시를 막을까? 아니면, 반대 같기도 한 일련의 제스쳐들을 취하다가 그냥 따를까? 장담하건데, 바로 여기가 그가 비로써 마주하게 될 첫 번째 정치적 갈림길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미디어법의 경우 그의 입장에선 사변적인 문제, 일거양득이 가능한 노림수였다. MB의 안대로 되더라도 자신의 집권 가능성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고, MB와 달리 자신이 민주주의의 절차와 사회적 다원성의 중요성에 대해 다른 감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시는 다르다. 이건 그의 집권 가능성과 바로 직결된 문제인데다 시기적으로도 매우 좋지 않다.

장황하게 써내려 왔지만 결국, 박근혜를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인으로 만든 힘의 근원은 박정희의 딸이라고 하는 가계와 원칙과 원론을 앞세우는 시의적절한(?) 전략이었다. 시기적으로 박정희의 친일 행각이 대중적으로 공개됐다. 언론은 친일파 명단을 전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 외 몇 명이라고 쓰고 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거리낌 없이 그의 손을 마주 잡아 주었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제 그와의 악수에서 역사의식과 사회적 올바름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환기하게 될 것이다. 그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더군다나 박정희가 친일파라는 것을 아예 몰랐던 부지기수의 사람들에게 이번 일은 매우 선명한 기억으로 각인될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수도권의 한나라당 지지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향후 그의 집권에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세종시이다. 수도권에서 접전 혹은 대등한 열세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고, 어차피 호남에선 어렵다고 한다면 충청권은 그에게 사활이 걸린 영토다. 이명박-정운찬의 세종시 수정론은 결국, 박근혜의 집권 가능성을 봉쇄하겠다는 계획에 다름 아니다.

결국, 박근혜에게 세종시는 오르막과 양지만을 영위해 온 그의 정치 인생을 본격적으로 되묻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존재를 건 반대를 하기엔 당장에 걷게 될 내리막이 두렵고, 그렇다고 존재를 걸지 않는 반대만 한 경우엔 집권이라고 하는 대운이 영영 멀어져 가지 않을까 초조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석연치 않은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요 며칠 세종시 문제에 대한 정운찬 총리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그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선택의 시간을 예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도 같기도 반대인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의 어두웠던 과거까지 폭로되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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