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들 한다. 지난 12일 <조선일보>에 의해 전국 2200여개 고등학교의 수능점수 성적순위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지면을 통해 “1994년 수능이 시작된 이래 고교별 성적이 외부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진정 궁금하지 않은가. <조선일보>가 ‘처음’이라고까지 강조하며 밝혀낸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기사를 보자.

“수능성적이 좋은 학교들 중 상위권은 대부분 외국어고와 자사고가 차지했다.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의 평균점을 합산해보면, 대원외고가 401.63점으로 가장 높았고, 민족사관고, 한국외대부속외고, 한영외고, 명덕외고, 대구외고, 대일외고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일반고 중에서는 충남의 비평준화 고교인 한일고등학교가 가장 높았는데, 전체 학교 중에서는 8번째였다.”<2009년 10월 12일자 조선일보 1면 ‘수능 국영수 대원외고 1위, 민사고 2위’기사 중>

▲ 12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기사를 읽고 첫 드는 생각. ‘솔직히 공공연하게 다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단지 저들 특목고와 자사고들의 정확한 수능 점수를 몰랐을 뿐이고, 저들 학교간의 순위만 몰랐을 뿐이지 저 고교들이 상위를 차지할 것이란 정도는 큰 관심이 없었다하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정보 아닌가라고 대수롭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조선일보>가 과연 이 사실을 몰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조선일보>는 13일자 지면에서 “어렴풋하게 알던 학교 성적이 공개됨으로써 올해부터 시행되는 서울지역 ‘고교 선택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고까지 했다. 또한 “고교평준화제도 시행 35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학력 격차만 더 키운 것이 아니냐”고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고교평준화제도 등에 대한 변화(그동안의 논조를 볼 때 아마도 ‘폐지’를 이야기하는 듯) 등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한겨레>는 13일자 사설을 통해 “무엇보다 교과부와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 그리고 조선일보가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겨레>, “교과부, 조의원, 조선일보 제정신인가?”

<한겨레>는 “조 의원은 교과부에 연구 목적으로 쓰겠다고 약속하고 이 자료를 받아선 조선일보에 넘겼다. 교과부는 이런 사태를 우려했으면서도 공개 의원의 양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둘러댄다. 조선일보는 교과부가 코드로 표시한 학교명을 복원하는 정도의 ‘연구’를 한 결과를 제대로 된 분석도 없이 대서특필했다”면서 “이제 성적 공개로 파생되는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들 삼자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험을 통해 이미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확보한 학교가 좋은 성적을 낼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라면서 “그런데도 특목고나 자사고의 선발효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결과만으로만 줄세우기를 했다”고 문제를 삼았다. 그리곤 “그렇지 않아도 과열돼 문제가 되고 있는 특목고 입시를 부추기고, 평준화 제도를 뿌리부터 흔들려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되는 행태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어 학교 간 격차가 심한 것은 ‘평준화 탓’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가 경기도 내 9개 중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의 학업성취도를 분석해서 평준화 지역의 학업성취도 신장률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더 높고, 학생 간 편차도 작음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육당국이 해야 할 일은 ‘평준화 해체’가 아니라 ‘낙후학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좀 더 강하게 “사교육의 진원지이자 학교 서열화, 고교 등급제 등 한국 교육 파행의 원천인 특목고부터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10월 13일자 한겨레 사설

고교 수능 성적 공개 본질 피해간 <경향신문>

그에 반해 <경향신문>은 <조선일보>보도의 본질적인 문제를 짚지 못하는 아쉬움을 보였다.

13일자 <경향신문>은 “상위 30개 고교 가운데 외고가 21곳 포함돼 ‘외고=입시기관’이란 통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제고 2곳, 자사고 3곳 등을 포함할 경우 특목고가 30곳 중 26곳을 차지해 외고 등의 설립취지가 ‘어학영재 양성’이 아닌 ‘명문대 입학’이란 것이 입증됐다”고 평가할 뿐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대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사설에서도 역시 “이번 고교 서열 공개는 국회의원의 양식을 의심케 하는 조 의원과 무책임·무원칙한 교과부의 합작품인 셈”이라며 “공개에는 책임이 따른다. 고교 서열 공표로 인해 초래할 부작용에 대해 교과부와 조 의원은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가”라고만 물을 뿐이다. 그 속에서 그 책임을 교과부와 조 의원에게만 돌렸다.

<조선일보>는 분명한 고교 수능 성적 공개에 대한 책임 주체다. 일어날 파장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개한 저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이런 <조선일보>의 행태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내지 못했다. 결국 <조선일보>가 꼬박 이틀을 고생해서 고교 간 코드를 붙여 서열을 공개한 본질을 읽어내지 못한 셈이다.

▲ 10월 13일자 경향신문 사설

<조선일보>, 학원서 ‘우리아이 대원외고 보내기’반 만들어지길 원한 건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조선일보, 고교서열화로 노리는 게 뭔가’라는 성명을 내고 “조선일보가 학교별 수능 점수를 공개한 것은 성적에 따라 학교의 서열을 매기는 반교육적 행태일 뿐 아니라, ‘고교 서열화’를 공공연하게 만들어 공교육의 근간인 평준화와 ‘3불제도’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12일자 <조선일보>는 1면에서 이화여대 박정수 교수의 말을 인용해 “학교별 수능성적 공개로 학부모와 학생들 입장에서는 매우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됐다”며 “같은 시도의 학교 사이에서조차 심각한 학력 격차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과연 학부모들이 얻은 유용한 정보는 뭘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아이 SKY대를 보내려면 반드시 특목고․자사고로 보내야 하는 구나’ 정도가 아닐까? 학원에서는 <조선일보>의 유용한 정보 덕에 ‘우리 아이 대원외고 보내기’ 반을 따로 편성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가. 자신을 1등신문이라 주장하는 <조선일보>의 작품, 조선일보는 맘에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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