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9일. 골프장 캐디(경기보조원)에 대하여 대단히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판결이 선고되었다. 다름 아니라 수원지방법원이 경기보조원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전향적인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1996년 7월30일, 경기보조원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하였고(선고 95누13432 판결), 그 이후 하급심 법원도 그러한 대법원 판결을 좇아 경기보조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는 당해 경기보조원의 구체적인 근무태양, 사용자의 지휘감독의 정도 등을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고 골프장 캐디라고 하면 바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이 되었다. 그 결과 경기보조원은 골프장 사용자가 해고 등 부당한 징계를 해도 이를 구제받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수원지방법원은 ‘골프장 캐디도 근로자다’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판결로 확인함으로써 위와 같은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골프장 캐디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전제 위에서 성립한, 부당한 기존의 법질서를 깨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A회사의 경기보조원 제명 사건

▲ 한겨레 10월6일자 10면
행정부 산하의 공기업으로 골프장을 운영하는 A회사는 경기보조원 B가 경기보조업무를 하면서 경기지연 등의 문제를 일으키자 이를 빌미로 그 경기보조원을 제명처분을 하였다. 그 골프장의 경기보조원을 조직대상으로 하여 설립된 A회사 노조의 조합원들은 이러한 조치에 대해 항의하는 글을 A회사를 감독하는 국가기관의 인터넷에 집단적으로 게시했다. 그리고 A회사 골프장 내에서 집단적으로 디보트(내장객이 골프장 이용 후 패인 잔디를 보수하는 작업)룰 실시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자 A회사는 위와 같은 행위가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어 52명에 대하여 출장유보처분(경기보조원은 골프장에 나가 내장객에 대한 경기보조업무를 하는 사람들인데, 그와 같이 골프장에 나가 업무를 보는 것을 출장이라 한다)을 내렸다. 그 후 노조의 간부인 경기보조원 3명은 출장유보처분을 받은 다수의 경기보조원을 관리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무단결장을 하자 A회사는 3명에 대해서도 제명처분을 하였다.

무기한 출장유보처분을 받은 39명과 제명처분을 받은 4명은 A회사를 피고로 부당징계무효확인청구를 수원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원고들은 그 소송에서 이와 같은 징계의 무효확인을 받기 위해서 그 전제사실로서 위와 같이 징계를 받은 사람들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주장하였고, 담당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43명의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임을 확인한 후, 그 징계처분이 근로기준법 제23조가 정한 정당한 이유가 없는 부당징계이므로 모두 무효라는 내용의 원고 전부승소판결을 선고하였던 것이다.

이번 판결의 함의와 판결의 파장

우리 사회에서 기간제근로자, 파견근로자, 특수형태근로자 등 비정규직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된지 오래다. 주시하다시피 가까이는 금년 상반기에 집단적으로 계약해지를 당한 택배기사의 문제가 있었고, 멀리는 화물연대의 집단적인 운송거부가 있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의식하고 2007년 12월14일 특수형태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이 사망, 부상 등의 재해를 당한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25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를 신설했다. 그 법률은 2008년 7월1일부터 시행되어 골프장 캐디들도 업무 수행 중에 당한 부상 등을 업무상 재해(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그러한 입법은 상당히 불완전하게 되어 다수의 특수형태근로자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일반적 근로자는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가 당연히 산업재해보험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음에 반해, 골프장 캐디 등 특수형태근로자는 자신들이 원하지 않으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적용받지 않도록 신청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위 법률은 적용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많은 골프장 사업주들이 그와 같은 ‘적용제외 신청조항’을 악용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없도록 골프장 캐디들로 하여금 적용제외 신청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경기보조원을 비롯한 상당수의 특수형태근로자가 울며 겨자먹기로 취업을 위해서, 또는 고용 유지를 위해서 그러한 요구를 수용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특례조항에 따른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판결로 위와 같은 법의 맹점을 이용한 골프장 사업주들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제외 신청으로 인한 문제점은 근원적으로 시정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왜냐하면 경기보조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으면 위와 같은 특례 적항을 통하지 않고 바로 일반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산재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프장 사업주들이 골프장 캐디들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근로자임을 악용하여 부당하게 해고하거나 징계를 내려도 이에 대하여 현행법 아래에서는 구제받기가 거의 불가능한데, 위와 같은 판결로 인하여 그러한 문제도 상당 부분 시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요컨대 이번 판결은 경기보조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님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연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 수집이 중요

그러나 위와 같이 본 판결이 지니는 상당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본 판결의 한계도 존재한다.

첫째, 당연하게도 위 A회사가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경기보조원이 근로자라는 판결이지, 전국 각지에 있는 골프장의 경기보조원 모두가 근로자라는 판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본 소송의 원고들은 자신들의 경우 96년도 판례가 말하는, 골프장 캐디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근거가 적용되지 않는 사안이므로 원고들은 마땅히 경기보조원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고, 그러한 주장을 법원이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승소판결을 한 측면이 강하다. 요컨대, 위 96년 대법원 판결을 적용받지 않기 위해 원고들은 자신들의 경우 위 96년도 판례 사안과 다르다는 우회로를 설정하였고, 그 결과 승소에 이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둘째, 본 사건에서 경기보조원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받은 것은 그에 대한 충분한 입증이 가능하였다는 것에 거의 전적으로 기인한다. 당사자주의와 변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민사소송에서는 진실이 어떻든 간에 증거로써 입증을 못하면 패소하기 마련인바, 본 소송에서는 경기보조원이 근로자라는 점을 1000쪽이 넘는 많은 증거로써 입증을 하였기에 승소가 가능하였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충분한 입증이 가능하지 않으면 다른 소송에서는 여전히 경기보조원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본 소송의 원고들은 모집채용 과정에 회사가 관여한 사정, 경기보조원 직무교육에 회사가 관여한 사정, 회사 직원이 점호를 통한 업무지시 하달하는 사정, 경기보조원이 출장하는 동안에 캐디마스터 등 회사 직원의 업무지시를 받은 사정, 회사는 경기보조원에게 적용되는 복무규율인 경기보조원수칙을 제정하였고 그에 따라 회사 캐디마스터는 경기보조원을 징계하는 사정, 캐디피가 임금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족한 사정 등을 충분히 입증하여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른 소송에서는 경기보조원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노조가 없는 관계로 개별 경기보조원이 소송을 주도하고 증거를 수집하다 보니 근로자성에 대한 입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패소한 측면이 크다. 다른 골프장과는 달리, 위 A회사가 운영하는 골프장에는 노조가 설립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근로자임을 입증할 수 있는 많은 증거를 수집하여 이를 본 소송의 증거로 제출하였다. 그것이 본 소송의 승패를 가른 열쇠였다. 이 점에서 우리는 사업장에 노조가 존재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수원지방법원 담당재판부에 감사와 경의

대법원은 근로형태가 전형적인 근로에서 탈피하여 파견근로, 특수형태근로, 호출․용역근로, 재택근로 등 다양화되는 시대상을 좇아 다음과 같은 점에서 종전의 판례의 태도를 바꾼 새로운 판례(대법원 2006년 12월7일.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를 내놓음으로써 근로자성 판단에 관한 선도판례이자 모범적인 기준으로 평가되는 1994년 12월9일 선고 94다22859 판결을 실질적으로 변경해 가고 있다.

즉, 대법원은 ①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요하지 않고 상당한 지휘·감독을 필요로 한다는 점 ② 대법원은 노무제공자가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등 노무제공자의 독립사업자성에 대한 판단요소가 근로자성 판단의 새로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 ③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 사용자가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큰 판단요소는 근로자성 판단의 실질적인 판단기준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함으로써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향후 전원합의체판결로 위와 같이 변화하고 있는 판례를 경기보조원에 대한 근로자성을 판단에 적용함으로써 위 96년도 판례를 폐기하고 경기보조원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임을 확인하는 새로운 판결을 선고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기보조원이 지금까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받아온 ‘불이익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하는, 법적 보호를 부여하는 문을 활짝 열어 제쳐야만 한다.

그리고 전국 각지의 골프장에는 경기보조원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많은 노조가 설립되어야 한다. 이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노조의 존재가 경기보조원의 권리구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본 소송의 교훈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규직 근로자로 조직된 노조가 그 조직 범위를 경기보조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나, 경기보조원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노조가 설립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전자의 방법을 위해서는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열린 마음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경기보조원도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인정받았으므로, 일반적인 근로자가 부당해고 기간 동안에 받을 수 있는 급여를 소급임금(back pay)으로 지급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로 소급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일반 근로자들의 경우 일정하게 정해진 임금이 있는 반면, 본 사안의 경기보조원의 경우 월 또는 1주간 등 일정기간 동안 정해진 임금은 없고 출장할 때마다 받은 9만원이 전부이고, 그것도 출장횟수가 월단위로 일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하여 본 사안의 골프장 캐디의 경우 과연 소급임금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는다. 이에 대한 합리적인 방법은 향후 항소심(본 소송의 1심에서는 소급임금을 별도로 청구하지 않음) 또는 별도의 소급임금 청구소송에서 정해질 것이다.

끝으로이 자리를 빌어 본 소송을 수행한 필자의 기대 이상으로 인권옹호적이며 사회 약자에 대한 애정 어린 판결을 선고한 수원지방법원 담당재판부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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