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8시,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층 후문. ‘날치기 사장 선임 규탄집회’를 위해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노종면) 노조원 80여명이 모였다. 이들이 “사원들이 불신임했다 배석규는 물러가라”를 외치고 있던 그 때, 배석규 사장 선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은 난과 화분 등이 잇따라 YTN으로 배달됐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외부에서 ‘축하’ 화환을 보내고 있었지만, 정작 내부 구성원들은 ‘반대’ 의사를 보내고 있었다.

앞서, 지난 9일 오전 YTN이사회는 8명의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배석규 당시 사장 직무대행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에 대해 YTN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나아가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날치기 이사회가 얼치기 사장을 만들었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 12일 오전 8시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층 후문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날치기 사장 선임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YTN노조

마이크를 잡은 노종면 지부장은 YTN이사회를 향해 “배석규씨를 사장으로 만들라는 정권의 지령을 충실히 수행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전 KDN 전도봉 사장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장 선임과 관련해 투명한 공모 절차를 밟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본능을 거스르지 못하고 정권이 시키는 데로 했다. YTN의 사장은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여론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배석규씨는 대주주 이사들의 동의하에 허울뿐인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노조원들을 향해 “이기는 싸움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회사 쪽과 진행될 단체교섭 시 갖게 되는 노조의 ‘합법적인 파업권’을 통해 배석규 사장을 무력화시키고, 몰아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해고자 복직 투쟁 판결 직후, 권력의 지령대로 이에 항소하는 시점에 파업 깃발을 새우고 YTN 1층 로비를 가득 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YTN을 상대로 진행 중인 해고 무효 소송에 대해 법원이 ‘무효’ 판결을 냈음에도, 회사가 이에 불복해 ‘항소’를 할 경우, 파업을 하겠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집회에 참석한 노조원들도 배석규 사장에 대한 반대의 뜻을 밝혔다.

한 노조원은 “배석규씨가 사장이 됐는데, 회사를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을 잘 못 잤다”며 “10여년 전, 6개월 째 월급 받지 못하면서 그렇게 지켜온 회사를 우리들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12일 오전 8시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층 후문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날치기 사장 선임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YTN노조

배석규 “노조, 결코 적대시하지 않을 것”

이날 오전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배석규 사장은 취임 인사말을 통해 노사문제를 ‘가장 중요한 현안’이라고 언급하며, 노조를 결코 적대시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깊은 상처로 얼룩진 우리의 노사관계는 모두의 아픔이고 불행”이라면서도 “우선 노조가 경영의 주체가 되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 회사의 발전과 조직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노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면 상생의 매듭이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상황에서는 회사도 충분히 유연성을 갖고 노조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기강의 확립은 노사 모두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 행동하는 데서 출발한다. 법과 사규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숱하게 난무하는 언어폭력과 외부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어떤 공격도 나를 흔들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 사회를 보던 박진수 노조원은 노조원들을 향해 “배석규씨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배 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으로 있었던 지난 두 달여 동안 YTN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보도국장 일방 교체, <돌발영상> 팀장 대기발령, 앵커 교체, 보도국 기자 지역 발령 등 잇따른 강경 조치로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배 사장의 말대로, YTN의 노사 관계는 깊은 상처로 얼룩져있다. 이번 사장 선임을 계기로 깊은 상처로 얼룩진 노사 관계가 잘 풀릴 수 있을지, 내부 구성원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구성원들이 희망과 용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지난 두 달여 동안 YTN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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