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동산에서 누군가에게 아들을 납치당한 아버지 대호(고수 분)의 부성애를 담은 이 영화는 스릴러에 루시드 드림, 즉 ‘자각몽’이라는 SF적 요소를 더한다. 자각몽이란 한자 그대로 꿈을 꾸고 있는 당사자가 꿈속에서 이것이 현실이 아닌, 꿈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꾸는 꿈을 뜻한다.

대호가 자각몽에 의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과거 행적을 되돌아보는 자각몽을 반복해서 꾸는 가운데, 과거에서 놓친 기억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대호가 아들이 실종된 당일의 행적을 자각몽을 통해 되돌아봄으로 아들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꿈을 통해 찾고자 하는 거다.

영화 <루시드 드림> 스틸 이미지

통상적인 스릴러였다면 단서를 토대로 사건을 추적하겠지만 ‘루시드 드림’에선 꿈을 토대로 잃어버린 아들의 행방을 추적한다. ‘루시드 드림’은 자각몽을 통해 잃어버린 아들을 추적한다는 참신함에 더해, 타인의 꿈에 꿈을 꾸는 당사자가 개입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도 덧입힌다. ‘드림 인베이전’, 다른 이의 꿈에 들어간다는 개념은 ‘루시드 드림’만의 독창적인 요소는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한 ‘인셉션’에서 이미 제기된 개념이다.

그럼에도 ‘루시드 드림’은 자각몽이라는 참신한 소재를 맛깔나게 살리지 못한 듯하다.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기 위해 사건 당일의 행적을 꿈으로 몇 번씩 되돌아본다는 자각몽의 개념, 다른 이의 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드림 인베이전의 참신함은 오직 주인공이 아들을 찾는다는 목적 하나에만 천착한다. 활용의 폭이 넓은 참신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소진되고 만다.

영화 <루시드 드림> 스틸 이미지

자각몽과 드림 인베이전 묘사 역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식상한 수준에 그친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대호가 자각몽을 처음 꿀 때에는, 대호가 아들을 잃어버렸을 때 놓친 것이 무엇일까 하는 관객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자각몽이 반복될수록 관객은 호기심이 증폭되기보다는 추리의 호기심이 떨어지고 마는, 지적 피로감이 쌓이는 아킬레스건이 된다.

대호는 아들을 잃어버렸기에 공권력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게 당연하지 수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루시드 드림’은 ‘탐정: 더 비기닝’에서 권상우가 저지른 패착을 반복해서 저지른다. 아들을 잃어버린 대호가 형사 방섭(설경구 분)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설정은 권상우가 이전 영화에서 저지른 패착을 재생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각몽이라는 참신한 소재의 스릴러를 기대했지만 ‘루시드 드림’은 ‘인셉션’으로 치면 림보에 빠진 거나 다름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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