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3단독 문성관 판사 심리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다룬 MBC <PD수첩>의 명예훼손과 관련한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오후 2시부터 밤10시까지 약 8시간동안 이어진 이날 공판은, 광우병편 번역 및 감수 작업에 참여한 정지민씨가 검찰 쪽 증인으로, 당시 보조작가였던 이연희씨가 <PD수첩>쪽 증인으로 나와 대질신문을 하는 등 팽팽한 긴장속에 진행됐다.

정지민씨와 이연희씨는 방송 편집을 위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었음에도 주장이 크게 엇갈렸다. 또 ‘미국 여성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로빈 빈슨)가 인터뷰 중 언급한 ‘CJD’(크로이츠펠트야콥병) 부분이 최종 방송에서 ‘vCJD(인간광우병)’으로 바뀌었다’ 등을 언급하며 평소 “PD수첩이 왜곡했다”는 주장을 편 정지민씨가 맡았던 번역 중 일부 대목도 논란이 됐다.

▲ 2008년 7월15일 방송된 MBC PD수첩 'PD수첩 진실을 왜곡했는가?' 화면 캡처
◇ 정지민 번역 두고 공방

지난해 <PD수첩> 방송이 나간 뒤, 검찰과 조중동은 ‘PD수첩의 왜곡’의 대표적 사례로,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PD수첩>과 인터뷰한 내용의 최초 번역본에는 “MRI 촬영 결과에 따르면, 우리 딸이 CJD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라고 명시 돼 있는데 편집구성안에는 ‘CJD’ 부분이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으로 바뀌었고, 이후 최종방송에는 ‘vCJD(인간광우병)’으로 바뀐 점을 꼽았다. 정지민씨도 최근 출간한 자신의 책과 카페 등에서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CJD라고 했는데 방송은 vCJD라고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공판에서는 아레사 빈슨 어머니가 ‘vCJD(인간광우병)’이라고 언급한 부분을 정씨가 오히려 CJD(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라고 번역한 부분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PD수첩> 변호인단은 방송에 나가지 않은 아레사빈슨 어머니 인터뷰 동영상을 공개하며,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아레사빈슨 어머니는 ‘MRI 결과 vCJD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받았습니다’라는 취지로 ‘a variant of CJD’라고 말했으나 정씨는 이를 vCJD가 아닌 CJD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이에 대해 “여러 CJD 중에서 vCJD라고 단정할 수 없기에 올바른 진의를 전하기 위해 ‘CJD의 일종’으로 번역해 CJD라고 했다”고 해명했다. <PD수첩> 쪽 김형태 변호사는 “양보해서 정지민씨 같이 생각한다 하더라도, CJD의 일종이기에 vCJD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인데도 CJD라고 단정해 번역했다”며 “이는 PD수첩이 왜곡했다고 하는 증인이 오히려 더 큰 왜곡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MBC <W>팀에서 해외 취재 담당 리서처로 일하다 광우병편 방송 과정에 참여한 오 아무개씨도 이날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a variant of CJD’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CJD의 변형으로, 즉 vCJD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PD수첩> 제작진은 ‘CJD를 vCJD로 왜곡했다’는 논란이 일자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CJD와 vCJD(인간광우병)을 계속 혼용해서 쓰고 있으며, CJD를 vCJD라는 취지로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자신이 CJD라고 말한 것은 vCJD(인간광우병)를 의미했다는 사실을 본인이 직접 <PD수첩> 제작진에게 확인해줬다”고 반박한 바 있다.

‘올바른 진의를 전하기 위해 번역했다'는 정씨의 논리대로 <PD수첩> 제작진, 또한 아레사 빈슨 어머니의 취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vCJD(인간광우병)자막을 넣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 2008년 7월15일 방송된 MBC PD수첩 'PD수첩 진실을 왜곡했는가?' 화면 캡처
◇ 번역자 VS 보조작가

‘법정에서 거짓을 말했을 시 위증의 벌을 받겠다’고 증인 선서를 한 정지민씨와 이연희씨의 주장은 크게 갈렸다. 대질신문에서도 이들의 주장은 일치되지 않았고, 평행선을 달렸다.

‘편집 과정에서 이연희씨가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지 않고 자기 쪽으로 가려서 했다’는 정지민씨의 주장에 대해 이연희 씨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작은 책상에 둘이 앉아 작업을 했는데, 노트북을 가운데 놔야 이야기를 해줄 수 있기에 노트북을 가운데 두고 내가 오른손으로 편집기를 만졌다”며 “감수자에게 감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노트북을 왜 내 쪽으로 가렸겠느냐, 그럴 입장이었다면 감수자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suspect’ 단어를 ‘걸렸다’고 번역하지 않았다는 정씨의 주장에 대해선 “정씨가 만든 초벌번역본을 가지고 만든 자막의뢰서에도 ‘걸렸다’고 돼 있었고, 이는 이후 감수 과정에서도 수정되지 않았다”며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 또는 vCJD라는 표현이 있어서 내가 하나만 쓰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정 씨는 ‘그러면 되겠다’고 말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 정지민은 광우병 전문가?

광우병편 영어 번역 및 감수 작업에만 참여한 정지민씨는 이날 공판에서 ‘광우병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식의 논리를 폈으나, 주장이 일관적이지 않았다. 문성관 재판장은 정씨의 주장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물었으며, 정씨를 향해 “알고 있는 것만 대답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 “쓸 데 없는 이야기 하지 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씨는 <PD수첩> 변호인단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식의 질문에 나름의 주장을 이어가긴 했으나,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정씨의 답변이 이어질 때마다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정지민씨는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연희 작가로부터 (번역할)문서를 받고 버니지아 당국이 낸 보도자료와 현지 언론 보도를 찾아봤는데 버지니아 당국의 보도자료나 전문가들은 자신있게 광우병이 아니라는 늬앙스를 띠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레사 빈슨의 사인은 3개월 전 그녀가 받은 위장 수술일거라 생각하게 됐고, 수술 뒤 문제가 생겨 뇌에 영양소가 결핍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나는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고 역사학도로서 자료 판독을 잘하고, 기본적으로 판단을 잘하는 부분이 있어 확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 동영상과 관련해 광우병 걸린 소가 있거나 실제로 도축됐나’라는 검찰의 질문에 그는 “그렇게 볼 수 없다”며 “짧은 시간 안에 다우너소 증상을 보이는 소들은 도축되지 않았고, (1차검사)이후 증상을 보이는 부분들은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영상에 등장한 도축장에서)1차 검사와 2차 검사 사이의 시간이 어떻게 되냐’는 재판장의 질문이 이어지자 “몇 시간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짧은 시간 안에 소들이 광우병 증상을 보일리 없다”고 주장했다.

◇ 검찰 VS 변호인단

▲ 2008년 5월13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 MBC ' PD수첩' '긴급취재-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2' 화면 캡처
이날 공판에서 검찰 쪽은 <PD수첩> 변호인단이 방송되지 않은 미공개 영상(아레사빈슨 어머니 인터뷰, 아레사빈슨 친구 인터뷰)두 개를 공개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 방송 원본 테이프 제출 요구에 불응하면서, 자료를 공개했다는 논리였다.

검찰은 “로빈 빈슨의 인터뷰와 장례식 장면 등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며 (정지민씨의) 번역상 문제를 지적했는데, 제작진은 검찰이 확보하고 있는 취재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때 일체 응하지 않다가 선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며 “(원본) 자료 제출을 왜 안 하냐”고 성토했다.

이에 김형태 변호사는 “그렇다면 검찰은 용산 사건 3천페이지 기록은 왜 안 내놓냐”고 맞받아쳤고, 이에 검찰은 “그게 지금 여기에서 왜 나오냐”며 항의했다. 이 때 방청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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