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뉴스룸> 앵커브리핑의 제목은 ‘여리박빙...어려운 말 쓰지 맙시다’였다. 그렇게 어려운 말이라고 하기 어려운 ‘여리박빙’이라는 말에 손석희 앵커가 발끈한 이유는 나라가, 국민이 처한 지독한 현실적 고통을 어려운 말로 슬쩍 둔화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왜곡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기에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

길게 때로는 지루하게도 느껴지는 탄핵국면도 이제는 정말 판결의 시점에 다가서고 있다. 그와 함께 문재인 독주의 대선판도에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바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반기문, 황교안을 거쳐 조기대선이 막 시동을 걸려는 시점에 급부상한 안희정 지사의 존재감은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과 비교되는 민주당 경선의 막강한 다크호스로 몸집을 키웠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그러나 새누리당과의 대연정, 이명박, 박근혜 정부 정책의 계승 등으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늘어가며 인기와 함께 안티가 동시에 증가하는 중이다. 그러던 차에 어쩌면 안희정 돌풍이 허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선의’ 논란이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선의 논란으로 종일 뜨거웠던 안희정 지사가 하필이면 <뉴스룸> 대선주자 대담에 나오기로 예정이 돼있었다. 본래는 대연정 문제를 집중 질의를 하려고 했다던 손석희 앵커는 대신 따끈따끈한 이슈인 선의 논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꽤나 긴 두 사람의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그런데 듣는 귀를 의심해야 했다. 도대체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들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자주 등장해서 마치 선의가 아니라 이것이 오늘 대담의 주제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통섭’이라는 단어로 인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물론 사전적 의미로 단순하게 해석될 단어는 아니었다. 뉴스가 끝나고 한참을 더 뒤적거린 뒤에야 이 통섭이라는 단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떤 의미로든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은 다시금 번역기의 필요성을 불쾌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통섭을 여기서 논할 자리는 아니다. 또한 <뉴스룸>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제 다시 말하고 싶다. 지난해 11월의 앵커브리핑의 제목 그대로 말이다.

“통섭? 어려운 말 쓰지 맙시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그냥 실수였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면 안 됐을까? 적어도 통섭이라는 낯설고 어려운 말이 필요한 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해의 겨울을 통째로 광장에서 보내야 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은 그것은 통섭 따위는 또한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11월 그날의 앵커브리핑에는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심상치 않았던 부분이 또 있었다.

“여리박빙, 장막 뒤에 가려진 여인과 그 무리들이 시민들이 부여한 권한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두르는 사이, 대한민국의 보통사람들은 일찌감치 살얼음판 위에 있었으며 그것이 선의로 포장되는 동안 그 살얼음판은 더욱 얇아져 왔다는 것”

안희정 지사는 알아야 했다. 자신이 말한 선의라는 말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소신 정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 꽁꽁 얼어붙은 날에도 광장을 지켜야만 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배신의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말이다.

이날 안희정 지사가 선곡해온 <뉴스룸>의 앤딩음악은 제임스 테일러의 'You've Got A Friend'였다. 이후 안희정 지사에게 어떤 친구들이 생길지 참 궁금한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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