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타미플루 좀 처방해주세요. 저는 정말 신종플루가 맞아요. 9월 1일부터 이렇게 아파요. 구토도 하고요. 정말 저는 신종플루거든요. 그러니 제발 타미플루 좀 주세요."

한 아줌마의 목소리를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의 앞에 마스크를 쓰고 앉은 의사는 "자신이 신종플루라 단정하지 마세요. 의사는 저입니다"라고 되받아쳤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소름이 돋을 만큼 간절했고, 두려움이 가득했다.

타미플루를 달라며 애원하던 그녀

얼마 전 주말 엄마가 고열에 시달린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엄마는 열이 많이 난다며 이야기했고, 아빠는 해열제를 약국에서 사왔다. 문득 걱정부터 앞섰다. '음, 고열이라.' 요즘 때가 때인지라 신종플루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일요일이라 근처 약국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인터넷에서 거점 약국을 찾았다. 우선 열부터 재봐야 하는 데, 집에는 체온계가 없었다. 약국에 전화해서 일단 체온계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요즘 체온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소문을 들었던 터라, "그나마 수온 체온계만 있네요"라는 약사의 말이 의아하진 않았다. 일단 약국에서 '수온체온계'라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38.9도. 생각보다 높았다. 내일 날이 밝으면 병원에 함께 가자며 일단 집을 나섰다. 동생에게도 단단히 엄마의 체온을 점검하라고 해두었다.

▲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오마이뉴스 유성호
다음 날, 엄마는 생각보다 빨리 병원에 혼자 다녀왔고, "거점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엄마와 함께 동네 거점 병원에 갔다. 병원 정문 옆에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에는 '발열환자 접수'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접수를 하고 "외래환자 진료 이후 선생님께서 내려오실 겁니다"라는 말을 듣고 박스 안에 앉아 있는데 적잖은 시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한 참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의사가 왔다. 한 명씩 박스 한켠으로 의사를 만나러 들어갔다. 엄마의 차례는 두 번째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정말, 신종플루일까?' '빨리 약 처방 받으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오락가락 했다. 물론 치사율이 낮다 하더라도 '신종플루가 아니었으면'하는 바람은 기본이었다. 헌데 그건 엄마의 바로 앞, 마스크를 한 아줌마가 의사를 만나러 들어가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신종플루에 걸렸다면서 의사에게 내내 '타미플루!'를 처방해달라며 매달렸다. 꽤나 절박했다. 의사가 그녀에게 판단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타미플루'만이 필요했다. 한 달 동안 발열증상과 구토에 시달렸다는 그녀는 대학병원까지 찾아가면서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면 분명 '신종플루'에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주장을 의사 앞에서 늘어놓았다. 의사의 말투는 꽤나 피곤해 보였다. "제가 50명이나 되는 신종플루 감염자를 봤어요. 그런데 아줌마는 그렇게 확진하기 어려워요" '의사'라는 전문성 있는 명함을 보여줬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신종플루'다. 무조건 '타미플루'를 달라고 애원했다.

신종플루, 공포는 잔인한 4월에 시작되다

기억나는가 신종플루 아니 돼지독감이 처음 우리 곁에 왔던 때 말이다. 지난 4월 13일 멕시코 오하카주에서 처음 발견된 돼지독감은 멕시코 내에서 급속히 번지면서 보름도 채 되지 않아 81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놀랬다. 모두가. 미디어는 “멕시코발 돼지독감이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며 떠들었다. ‘바이러스의 진앙지 멕시코’, ‘영화 속 바이러스의 현실화’ 등의 타이틀 기사들이 인터넷에서 쏟아졌다. “‘돼지독감’ 전세계 확산 공포”(서울신문, 4월 27일) “멕시코발 패닉 세계 확산”(동아일보, 4월 27일) “키스도 악수도 무섭다…‘공포의 멕시코’”(한겨레, 4월 27일), “‘돼지 인플루엔자’ 비상 걸린 지구촌… 멕시코 국경 넘어 美도 공포”(국민일보, 4월 27일) “'돼지독감' 급속 확산/"중국 대륙 강타 땐 최대 700만명 사망"”(세계일보, 4월 28일) 등 일간지도 들썩했다. 방송뉴스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적 유행병’이 될, 당시 ‘돼지독감’에 대해 미디어는 진원지인 멕시코의 소식을 중점으로 전했다.

인접국가인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그리고 점차 아시아로 확대되는 동안 ‘돼지독감’은 ‘멕시코독감’이라 했다가 ‘SI(swine influenza·SI)'로 불렸다가 최근 신종인플루엔자, 즉 ’신종플루‘로 최종 작명됐다. 그 사이 한국에서도 8월 15일 첫 사망자 발생 이후 현재까지 11명이 신종플루로 사망했다. 더욱이 잠시 주춤했던 신종플루의 공포는 8월과 9월 사망자가 집중하면서 또 다시 부각됐고, 교육청에서는 아이들의 감염 예방을 위해 등교하는 초등학생의 귀에 체온계를 꽂았다. 손을 씻자는 슬로건은 버스를 비롯하여 동네 곳곳에 설치됐다. 덕분에 체온계는 품귀현상으로 5배가량 가격이 상승했으며, 세정효과가 있는 제품들은 불티나게 팔렸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신비의 묘약이 되어버린 타미플루

이런 와중에 ‘타미플루’는 어느덧 신비의 묘약이 됐다. 신종플루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동시에 등장한 ‘타미플루’는 사실상 신종플루의 유일한 치료제로 알려져 있다. 결국 신종플루의 확산, 그리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묘약인 타미플루의 확보는 ‘돼지독감’의 공포에 감연된 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질병관리본부도 240만 명분의 타미플루와 리렌자를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견해를 보인다.”(동아일보, “멕시코발 돼지독감 비상 / 돼지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어떻게 감염되나”, 4월 27일) 하여간 정부는 신종플루 치료제를 부지런히 확보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국민들을 안심시키고자 했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낯선 질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신비의 묘약인 타미플루를 손에 쥐어야만 안심되는 현상을 낳고 말았다. 매점매석도 횡행한다고 하는데, 지난 6월 HSBC은행은 직원과 가족의 명의로 환자의 직접적인 진찰 없이 총 1978건, 1만 9780알의 타미플루를 발급받았다고 한다. 약국에서는 이를 일괄 송부 받아 환자의 방문 없이 조제하여 HSBC은행으로 배송했다. 2만 알에 가까운 타미플루를 챙긴 HSBC은행은 해외출장을 떠나는 직원들에게 예방 차원에서 타미플루를 지급했다고 한다. 지난 9월 11일과 15일에는 각각 강남구의회와 밀양시의회 의원들이 해외출장을 가면서 보건소로부터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신종플루 감염자도 아니면서 비상약 챙기듯 타미플루를 짐가방에 챙겨 넣은 것이다.

국감 기간에 드러난 타미플루의 과잉 혹은 사재기 사례는 더욱 노골적이다. 원희목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타미플루 처방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의 한 의료기관에서는 1인에게 456개의 타미플루를 처방했다. 이는 법용량의 45배 이상 되는 양이다. 대구 중구와 충남 천안시 서북구에서도 개인에게 각각 150개와 127.6개의 타미플루가 처방됐다. 안홍준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게 받은 올 5월과 6월 타미플루 처방 상위 30위 약국 현황 자료에 의하면, 상위 30위에 서울 강남구와 종로구가 각각 5곳, 성남과 분당구가 2곳 등 잘사는 동네와 특정지역 중심으로 타미플루가 집중 처방됐고 한다. 안홍준 의원은 “소득 수준이 높은 곳 중심으로, 소위 ‘부자들, 잘사는 곳’ 중심으로 처방되어 문제가 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했고, 타미플루를 원했다

이해가 되는가? 공포가 확산되고 또 이를 예방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방식 말이다. 신종플루는 공포, 더욱이 확인되지 않은 공포였다. 돼지독감에서 신종플루로 이어지는 동안 모든 것이 일관성 있게 전달되지 않았고, 멕시코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미디어는 그저 전 세계가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게 그 날 병원에서 만난 그 여성도 이미 신종플루 그 자체가 아닌 까닭 모를 공포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해 주술처럼 ‘타미플루’만 외치고 있었다. 그녀의 나약함을 탓해 무엇하리. 누구는 타미플루 사재기를 하고, 누구는 ‘명함’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공포를 예방하는 신비의 묘약을 처방받는 상황에서 행여나 내가 꼭 필요한 순간 타미플루를 얻을 수 없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행여 궁금할 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해 한 마디만 덧붙인다. 엄마는 3일 후 신종플루 음성반응을 보였다는 연락을 병원에서 받았고, 예방 차원으로 처방받았던 타미플루는 5알이 고스란히 집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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