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1년 황제에 올라 무려 60년간을 재위한 강희제, 아버지의 시대를 개혁한 옹정제((재위 1722∼1735), 그리고 선대의 성과를 완전히 정리했던 건륭제(재위 1735∼95)의 시기를 거친 청나라는 한때 세계 GDP의 35%를 차지하던 초강대국이었다. 현재 초강국대국으로 굴림하고 있는 미국의 GDP도 25% 남짓이니 당시에 청나라의 생산력이 어떠했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청나라가 망하는 데는 불과 50년도 걸리지 않았다. 가경, 도광, 함풍, 동치, 광서제로 이어지는 113년(1795~1908년) 동안, 청나라는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너덜너덜해졌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사실상 종말을 구한다.

▲ 도서 '해저 2만리' 표지
1890년 만수절을 맞은 건륭제는 고두배(叩頭拜 머리를 찧으면서 황제에게 예를 취하는 절)를 하기 싫어하는 영국의 사신에게 아량을 베풀었다. 하지만 건륭제가 불과 반세기 후 아편전쟁(1840~42년)에서 영국군에게 참패를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상 제국의 흥망성쇠는 반복되고 있으며 제국의 패망 또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가 유식하게 미국이 가진 무기의 빼어난 성능과 정보력을 이야기할 수 있듯이 ‘고두배 시비’가 붙은 것을 보았던 건륭제의 당시가 현 시기 초강대국인 미국의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으로 얼마 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토록 강성하던 청나라가 무력하게 서구 열강에게 무너졌을까. 사실 증기기관으로 인한 산업혁명이 서구의 성장 배경이겠지만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읽으면서 당시 중국에는 없었던 상상력의 부재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는 어린 시절 많은 이들에게 상상력을 주던 SF소설의 모범이다. 하지만 그림 등이 잘 정리된 좋은 번역본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정신에서 완벽한 도판과 훌륭한 번역을 갖춘 ‘해저 2만리’를 출간했다. 사실 초등시절 작은 문고본으로 보았던 이 소설이 눈에 들어왔고, 550여 페이지의 양장본 책은 너무 반갑게 읽혔다.

앞서 청나라를 이야기한 것은 줠 베른이 이 소설을 출간한 시간 때문이다. 쥘 베른은 1867년에 ‘그레이트 이스턴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을 방문했고, 2년 후에 ‘해저 2만리’를 출간했다. ‘해저 2만리’를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소설의 내용은 당시 쥘 베른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이 얼마나 커졌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놀라운 것은 이미 운행도 되기 전인 수에즈 운하를 횡단한다는 것을 비롯해 머잖아 가능하게 된 많은 일들을 소설 속에 녹였다는 점이다. 가장 놀라운 대목은 소설의 ‘노틸러스호’가 1954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한 ‘노틸러스호’에 대부분 수용됐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 소설은 괴물체를 찾아 탐사에 떠난 ‘링컨호’에 탑승한 프랑스의 해양학자 아로낙스 박사와 그의 하인 콩세유, 고래잡이 명수인 네드랜드가 괴물체의 습격을 받아 난파된 후 접하게 되는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난파당한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속도의 ‘노틸러스호’에 승선하고 실체가 독특한 삶을 가진 ‘네모 선장’이 이끄는 무국적의 잠수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구속된 삶이 싫은 네드랜드는 언제나 탈춤을 꿈꾸지만 아로낙스 박사는 이 배가 이끄는 거대하고 신비한 여정에 매료된다. 그리고 전 세계 대양을 넘나드는 여정에서 만나는 신비로운 것들을 기록한다. 쥘 베른이 단순한 소설가가 아닌 것은 그의 기록이 여느 박물학자의 기록에 못지않을 만큼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코 소설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의 한 접점에서 창작을 하는 가장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쥘 베른이 ‘해저 2만리’를 출간한 순간, 중국은 아편전쟁으로 뒤처진 자신에 대해 실감을 하게 된다. 임칙서를 비롯한 이들의 용기로는 절대로 서구의 근대화된 무기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임칙서 : 중국 청나라 정치가. 영국 상인들이 소유한 아편을 몰수해 상자를 불태우고, 아편상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등 강경 수단을 써 아편밀수의 근절을 꾀했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 명을 받고 광시순무에 임명되어 부임 도중 병사했다) 물론 이런 자각 이후 북양함대를 육성하려는 시도로 나타나지만 서태후와 광서제의 알력다툼이나 허영으로 청나라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사실상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대한 제국이 멸망한 것이다.

그리고 100년 후인 지금 미국은 오랜 영화에 젖어서 생산력을 잃어버렸고, 반면 중국은 다시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과거의 영화를 찾기 전에 ‘노틸러스호’를 가두었던 남극의 얼음들은 녹아버리고 신비했던 바다는 혼돈 속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는 불안한 상상이 떠오른다.

어떻든 ‘해저 2만리’는 아이들에게 과학적 상식과 꿈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오랜만에 동화 읽던 옛날로 돌아가게 하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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