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누렇게 변한 나뭇잎들이 오르내리는 길에 쌓이고 도토리와 밤이 익어 나뭇잎과 함께 떨어집니다.

유난히 산열매가 풍성한 올 가을엔 발걸음만 옮기면 먹을거리를 주워오기 바쁩니다. 옛 어른들 말씀에 따르면 산에 높이 서 있는 참나무가 들판을 내려다보면서 사람들 농사가 잘 안되면 도토리를 많이 매달아 배고픈 백성들 허기를 달랬다고 합니다.

올 해는 산열매도 풍년이고 농사도 풍년이라 합니다. 배고픈 백성이 어딘가 많이 있어 산에도 들판에도 풍년인데 먹을거리를 잘 나눠야지 쌓아두면 썩기 마련입니다.

산열매가 풍성해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집짓기를 서둘러야 합니다. 틈틈이 밤 줍고 도토리 줍는 걸로 만족합니다.

▲ ⓒ지리산

오늘은 흙벽 치는 날입니다. 집짓기에서 ‘흙 벽치는 일’은 집짓기 마무리 단계입니다. 그래선지 계속된 집 공사로 몸은 무겁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운 날입니다.

고향에서 항상 보며 자랐던 붉은빛 황토를 산에서 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나뭇잎이 쌓여 만들어진 부엽토와 돌은 많지만 흙벽으로 쓸 만한 흙은 흔하지 않습니다. 햇볕이 잘 들고 큰 나무들이 없는 언덕으로 흙을 찾아 다녀야 합니다.

집에서 좀 떨어진 곳이지만 지게로 지어 나르면 될 일이니 쓸 만한 흙이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어 나른 흙을 마당에 쌓고 물을 섞어 발로 열심히 밟아 짓이깁니다.

많이 밟을수록 흙이 찰지고 벽에 잘 달라붙기 때문에 흙벽치기는 짓이기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물먹은 흙을 짓이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내 차지입니다.

‘흙 벽치는 일’은 집짓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어엿한 일꾼이 되는 날입니다. 이긴 흙을 날라주면 아내와 아이들이 벽에 흙을 칩니다.

몇 번 이겨서 날라주니 안벽이 금방 흙벽이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흙벽은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바쁜 세상살이에 한 번에 끝나지 않는 일이 거추장스러울지 모르지만 흙벽은 더디게 해야 제 모습이 나옵니다. 흙이 마르면서 갈라지고 틈이 생기기 때문에 초벌 친 흙이 마르면 한번 또 흙을 쳐야 합니다.

오늘은 초벌이지만 흙벽이 만들어지니 집안이 안온한 느낌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벽은 뜨거운 햇볕과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바깥 바람과 햇볕이 넘을 수 없는 선이기 때문에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것만 고집하는 사람을 벽창호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가 봅니다.

집을 짓고 흙벽을 치다보면 햇볕과 바람을 벽으로 막지만 햇볕이 들어올 구멍과 바람이 순환될 구멍을 만들어야 함을 압니다. 햇볕은 항상 따갑기만 한 것이 아니고 바람도 항상 눈보라만이 아닙니다.

햇볕 잘 드는 방향에 창을 내고 드나들 문을 내는 것은 집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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