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는 집안은 가지 나무에도 수박이 열린다고 했던가? 잘 되는 집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가구 배치나 집안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생활 풍수 얘기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그것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과 지역사회를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17년 전쯤, 지방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오전 마감을 서두르고 있는데 중년의 한 여성이 문화부 기자를 찾아왔다. 한 눈에도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이었다. J대학의 무용과 교수라고 소개한 그분은 자신이 소속된 대학의 무용과를 알리고 싶다며 용기를 내어 무작정 신문사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제 막 신설된 무용학과에 자신을 포함 세 명의 교수가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후배 교수들이 너무 열심히 일을 한다, 주임 교수로서 후배 교수들의 실력도 알리고 우리 학과를 홍보하고 싶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기억된다.

▲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김사은 PD

지금이야 대학의 학생 유치 전쟁이 치열하지만 당시만 해도 대학교수가 자신이 아닌 (당시에도 교수 가운데 일부 정계진출을 꿈꾸고 있는 분들은 언론사를 드나들며 기반 다지기에 공을 들이는 분들도 있었다) 학과를 위해 홍보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 교수님은 물론 현대무용과 발레를 전공한 다른 두 분도 알게 되었다. 이력이 화려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 대학에 무용과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공연을 앞두고 계획도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문화면 기사로서 충분히 기사로서 가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모든 보도자료를 이메일로 주고받지만 ‘보도자료’ 쓰는 법도 익숙치 않고 변변한 자료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일일이 발로 뛰며 홍보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편집국 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그 교수님의 진지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당시 학과장이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분명 이 학과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학과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그 교수님의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정성은 상대방을 감동시킨다.

지역에서 로컬방송을 제작하면서 끊임없이 ‘지역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게 내 역할의 하나다. 라디오 방송을 홍보의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노출시키다보니 팩스나 이메일, 각종 우편물을 통해 뉴스 밸류를 결정하는 일 또한 내 몫이다. 어느 경우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어느 때는 ‘아이템’이 없어 헤맨다. 다정하고 개인적인 ‘편지’보다 내용만 확인하고 급 삭제해야 하는 이메일 속에서도 옥석을 가리고 ‘진정성’을 찾아내야 한다.

희한하게 이메일로 전달되는 ‘보도자료’ 가운데도 정보원의 정성이 감지되는 메일이 있다. 제일 반가운(?) 보도자료는 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 일하는 최가영씨의 메일이다. 가영씨는 상대를 가리지않고 친근하게 접근하여 미소작렬케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 가영입니다. 오랜만이죠. 아, 뭔가 저에게도 부지런한 시간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어쩐지.. 요새는.. 쫌... 훗~’ 이런 식으로 편지를 시작한다. 웃음이 먼저 묻어난다. 그리고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첨부파일에 대한 간단한 개요를 설명해주니 보도자료에 대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친구의 접근법 때문에 어느 때는 나와의 관계가 대단히 끈끈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치 1대1로 대화하고 있는 듯한, 전형적인 ‘라디오의 친근함’ 기법이다. 기분 좋은 메일을 읽고 삭제하기가 미안하여 한 두 번 나도 같은 화법으로 짤막한 답을 보내준 적도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홍보팀도 무지하게 성실하다. 국제영화제 기간뿐 아니라 일년 내내 사업을 벌이고 알리고 추진한다.

지난번 지역매체 홍보 실무를 맡았던 박선씨와도 정이 많이 들었다. 그녀의 보도자료 메일은 겸손하고 성실함이 묻어난다. 전북대학교 홍보팀도 끈끈한 조직력이 느껴진다. 보도자료 자체만으로도 기사거리로 충분한 스토리텔링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언론사의 기능을 꿰뚫어보면서도 월권은 하지 않는 듯’한 이미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성원들이 보통 내공이 아니다. 전주소리축제조직위원회의 소식도 흥미롭게 받아보았는데, 신종플루 때문에 행사 자체가 전면 취소되어 나 또한 아쉬움이 많다. 창의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의 홍보는 선뜻 큰 점수를 주기가 쉽지 않다. “그 정도 규모면 당연히 이 정도는 되어야지" 싶은 기대치가 높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전북도청의 홍보기획은 명쾌하고 깔끔하다는 점에서 한표 던지고 싶다.

방송 준비를 위해 자치단체의 홍보창구를 거칠 때가 많은데 (전적으로 개인적으로 메일을 수신하는 나의 입장에서)도내 시 단위에서는 익산시 비전홍보팀 박경희실무관을 칭찬하고 싶다. 일처리가 매우 빠르고 명확하다. 심심산골로 꼽히는 무주군의 홍보를 담당하는 임선희씨는 개인적으로 한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무주의 숨은 일꾼이다. 인구 3만도 되지않는 좁은(?) 지역 사회에서 매일 하루 두 건 이상의 기사를 발굴해서 제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소소한 ’우리동네 이야기‘도 올라온다. 이 가운데는 방송 소재로도 건질 내용이 꽤 있다.

’보도자료‘는 공급자가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기를 원하며 보내는 자료들이고 이러한 홍보행위는 기관장이나 단체장의 의지, 역량이 십분 반영되기도 한다. 홍보를 강화할수록 아웃풋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언론사 입장에서 이런 보도자료가 모두 수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자료를 받아보는 입장에서 느끼는 점은 ’잘되는 집안‘일수록 담당자들이 ’성실하고 정성스럽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고 즐겁고 정성스럽게 공들여서 행하는 것, 그 본연의 자세가 충분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홍보 대상자가 기자가 됐든 방송사 피디가 됐든 설령 지나가는 관광객이라 할지라도 똑 같은 자세로 정성스럽게 대할 것이다. (그들이 홍보부서가 아닌 타 부서에서 업무를 추진해도 이와 같은 자세를 견지할 것이라 확신한다.)

반면 ‘안되는 집안은 여전히 안된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곳은 십중팔구 조직원들 조차 책임감도 없고 성의도 없다. 접근을 불쾌하게 여기고 냉담하게 대한다. 홍보담당자가 자기 지역, 자기 조직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한마디로 희망이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내가 속한 곳이 문제가 있다고 치자. 나 같으면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해 더 좋은 소식, 더 훈훈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홍보를 통해 널리 알려서 지역 주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 같다. 17년 전 신문사 편집국 문을 두드린 무용과 교수님처럼 말이다.

잘되는 집을 더욱 잘되게 하는 것도, 안되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결국 집안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되도록 잘되는 것은 더욱 잘되게, 안되는 것도 잘되게 도와줘야 하는 것이 지역 방송의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되기에 안 된다고 낙담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안 되는 것도 잘 될 수 있다. 그대가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움직인다면”

정성을 쏟는 것 만큼 확실한 묘약도 없을 것이다. 정성에 천지도 감복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스레 구하면 반드시 그것을 얻는다(잡보장경 中)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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