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출한 판결이다. 어제(9/24) 헌법재판소는 야간 옥외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부득이한 경우 관할 경찰서장의 허가를 받도록 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감히 말하건대, 헌재가 오랜만에 사회적으로 밥값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간단치 않을 것이다. 복면 집시법을 만들어 논 한나라당이 과연 어떤 기상천외한 '편'법안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러니까 어제 판결 이전의 한국 사회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세계인권선언 제18조)가 있되, 낮에만 있었다. 안진걸(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이 청원하여 헌재가 무효를 선언한 무시무시한 법 규정은 이러하다.

▲ 2004년 5월 28일 저녁 6시에 개최된 첫번째 야간 불복종 집회

"누구든지 일출시간전, 일몰시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 하여 주최자가 질서 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서장은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일출시간전, 일몰시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

어떤가? 읽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는가? "누구든지....아니 된다"가 특히나 무시무시하다. 관할 경찰서장이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허용할 수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개인의 자유를 관리하겠다는 국가의 배포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흡사, 절대왕정 시대, 저잣거리의 민초를 다루던 실록의 한 구절 같기도 하다.

경찰이 은혜를 베풀어야 집회를 할 수 있는 것인데, 단지 은혜를 받지 않고 단지 촛불을 들었단 이유만으로 사지가 들려 연행되고,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자발적 세금을 국고에 기부해왔던 것이다. 헌재가 위헌 판결이 아닌 헌법 불일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었으니, 앞으로 6개월은 또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수억 원에 달하는 비자발적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궁리해봐야겠다.

이번에 헌법 불일치 판결이 난 야간집회 금지 조항은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남다른 법 조항이기도 하다.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개악안이 시행 될 무렵 단체 활동가로 <개악 집시법 대응 연석회의>의 실무팀의 일원이었다. 워낙 문제가 많은 개악안이라 쟁점도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것과 집회의 소음을 규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야간집회 금지는 어제 헌법 불일치 판결이 난 바로 그 조항이고, 소음규제는 주간 80데시벨, 야간 70데시벨, 그리고 학교와 주거지역은 주간 65데시벨, 야간 60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낼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워낙 개념을 상실한 내용이어서 정교해야할 필요도 없었다. 대응 논리는 간단한 것이었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원천적 권리인데 밤낮을 가려 그 허용권한을 경찰이 갖는 것이 가당치 않다는 것, 그리고 도시는 원래 시끄러운데 소음을 이유로 집회를 규제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낮에는 시내 소음을 측정하러 다녔고, 밤에는 모여 어찌 집회를 할까 궁리했었다. 선택은 하나, 불복종이었다.

▲ 첫번째 야간 불복종 집회 당시, '민주깡통'이라 명명된 경찰의 깡통 로봇 침탈 장면

야간에 집회를 하겠노라고, 호기롭게 보도 자료를 뿌렸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덩치 큰 단체들에 참여를 요청했고, 막 개장했던 시청광장에서 일몰 이후에 집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시청광장에 잔디를 깔아 사용을 허가제로 운영하기로 한 문제까지 겹치며 관심은 뜨거웠다. 그 집회는 야간집회 금지 방침 이후 첫 불복종 집회이자, 시청 광장에 잔디가 깔린 후 개최되는 첫 번째 집회이기도 했다.

시간이 닥쳐올수록 고민스러워졌다. 요구를 위한 형식으로서의 집회가 아니라 집회 그 자체를 위한 집회였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조직의 참여가 필수적이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민주노총은 언제나 그런 사회적 연대에 미지근하다.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아니 한다는 강박에 영혼이 잠식돼 갔었다.

집회 당일이 돼서야 고작 생각해 낸 것이 거창하게 말하자면 '트랜스포머', 그냥 소박하게는 소박하게 우람한 깡통 로봇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알루미늄 페인트 통에 집회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믿음과 소망들을 예쁘게 담아 팔 다리 몸통을 얼기설기 이어 사람 키보다 몸통 하나가 큰 로봇을 급조(!)해 냈다.

문제는 그 로봇의 이동이었다. 당시 사무실이 서대문역 근처였는데, 집회 장소인 시청 광장까지 그것을 이동시킬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가서 조립을 했어야 했는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미리 조립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상상 가능한 모든 방법들에 대한 난상토론 끝에 그 로봇을 결국 리어카에 뉘이고 팔 다리 몸통을 사람들이 단단히 부여잡는 원시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실로 웅장한 출정이었다. 마침, 비도 약간 뿌리던 날이었다.(로봇에 우비를 입히자는 의견도 있었다.)

근 한 시간여를 아스팔트의 굴곡과 사투한 끝에 로봇을 시청광장에 도착시킬 수 있었다. 당시의 감격이란... 더욱 놀라운 것은 정말 새까맣게 모여 있던 전경들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빛의 속도로 장비를 갖추고 진짜 '트랜스포머'했다. 흔한, 집회 용어로 고착, 로봇은 시청역 출구 앞에 고착 당했다.

정겨운 입씨름이 이어졌다. 정보과 형사는 대체 저것이 무엇이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보면 모르느냐고, 로봇 아니냐고.' 대답했다. 그러길래 저걸, 뭐에 쓸 거냐고 물었다. 집회장에 세워 둘 거라 답했다. 형사는 어이없어 했다. 왜 그러느냐고, 솔직히 말씀을 해주셔야 협조를 해줄 것이 아니냐고 푸념했다. 협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보는 그대로라고 고착을 당해 답답한 노릇일 뿐이라고 맞받았다. 고착된 로봇을 중심으로 시위를 하러 왔다기 보단 로봇을 운반하러 온 이들은 고착당하고 그 전경들 사이로 사다리를 대고 기자들이 셔터를 터뜨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6시간 넘자 전경 지휘관이 압수하란 고함을 쳤다. 우뢰성과 함께 전경들이 달려들어 로봇을 뺏으려 했다. 순식간에 로봇은 해체되고 유례없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2004년 5월 28일, 야간집회 금지에 불복종하는 역사적인 첫 집회에서 벌어진 이른바 '민주깡통 탈취' 사건이었다. 왜 민주깡통이냐고? 깡통 운반의 역사적 책무를 맡아 엉겁결에 로봇 사수대가 된 어느 활동가가 경찰이 덥치자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경찰이 민주주의를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깡통을 지켜내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킵시다!"

5년 전의 일이다. 그 이전이라고 야간집회가 자유스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 우리가 했던 모든 촛불집회는 자의적으로 불법으로 규정됐다. 법의 허술함을 파고들어 이후 야간에 '문화제' 형식의 집회들이 숱하게 개최되었지만 경찰은 해산 방송을 하고, 집회 주최 측에 불법 집회 개최 혐의를 씌어왔다.

이번 판결의 의미와 내용적 분석을 여러 각도, 층위에서 할 수 있겠지만 그 결정적 이치는 결국 민주주의의 원리에 관한 것일 테다. 2004년 참여정부가 집시법을 개악할 때도 그러했지만, 특정한 정치적 필요에 따라 개인들의 권리를 제약하거나 특정한 정서적 편향을 근거로 민주주의 일반 원리를 부정할 순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광장의 성장과 참여 민주주의의 제도화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수준이 87년 헌법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밤에 집회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이 까마득하다. 여전히 특정한 장소들에서는 집회를 할 수 없고, 집회의 자유가 도로교통법에 묶여있기도 하다. 유령들의 집회가 실제 중요한 집회를 제압하기도 하고, 집회 그 자체가 까닭 없이 불허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집회라는 사회적 형식에 대한 공격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쓰다 보니 걸출한 판결을 두고 실증적 분석이 아닌 애먼 넋두리를 하고 만 것은 간만에 든 묘한 쾌감때문으로 이해해달라. 우리가 언제쯤 민주주의라는 것의 온전한 실체를 비교급 없이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가야 아직 가야 끝내 이렇게 가야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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