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언론보도를 보니 방송‘통제’위원장 최시중씨와 방통위의 행태를 일컬어 ‘엿장수 맘’이라고 꼬집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글쎄, 가위를 들고 가지런하게 엿을 자르며 가위 춤을 추는 엿장수로서는 시퍼런 칼을 들고 마구잡이 칼춤을 추는 방통위와 견주는 것이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비아냥이 자연스럽기까지 한 게 작금의 상황이다.

▲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 ⓒ미디어스
‘엿장수 맘’을 상징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홈쇼핑채널 사업자 추가 선정이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방통위가 9월 중으로 신규 종합편성채널 채널 수, 추가 보도전문채널 수, 선정시준과 자격 등을 발표하며 중소기업 상품만을 위한 홈쇼핑채널 사업자를 추가로 선정하는 계획도 발표하려는 모양이다. 이거야말로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름을 방통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말한다.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채널 추가 계획을 발표하려거든, 롯데홈쇼핑에 대한 승인 취소 또는 이에 상당하는 영업정지 등과 같은 제재를 가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 뒤에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채널을 추가하든지 말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아무런 과거도 없이 역사적 ‘족보’도 없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졌거나 땅에서 불쑥 솟아난 것처럼, 서부영화의 무법자 주인공처럼 구는 최씨와 방통위한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다. 3년 전인 2006년 8월로 돌아가 보자.

그때 롯데쇼핑은 홈쇼핑 사업 진출을 위해 우리홈쇼핑의 지분 53.03%를 4667억원에 인수했다. 우리홈쇼핑은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 채널이었다. 옛 방송위는 같은해 12월 무기명 비밀투표 끝에 롯데쇼핑의 우리홈쇼핑 인수를 승인했다. 언론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홈쇼핑의 재승인 조건까지 뒤집으면서 저지른 폭거였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구렸던’ 탓인지 옛 방송위는 인수 승인 결정을 내리면서 온갖 조건을 주렁주렁 내걸었다. 지역경제와 중소기업 활성화, 해마다 영업이익의 4% 사회 환원, 승인시 100억원 방송발전기금 출연 등이 그것이다.

상식 있는 독자들은 눈치 챘을 것이다. 방통위가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채널 사업자 추가 선정 운운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롯데쇼핑의 우리홈쇼핑 인수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방통위의 중소기업 홈쇼핑 채널 추가 선정 계획은, ‘지역경제와 중소기업 활성화’라는 롯데쇼핑의 인수 승인 조건이 이행되지 않았음을 고백한 것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인수 승인 조건을 위반할 경우 이에 걸맞은 행정처분은 방송법에 나와 있다. 롯데홈쇼핑(옛 우리홈쇼핑) 채널의 재승인을 취소하거나 최대 6개월까지 영업정지 명령을 내리는 게 그것이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롯데홈쇼핑에게 ‘지역경제와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요구하고,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건너뛰어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 채널 추가 선정 운운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뱉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지사지’ 해 보면, 롯데홈쇼핑으로선 방통위의 중소기업 홈쇼핑채널 추가 선정 계획이 그 자체로 날벼락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홈쇼핑 인수 이후 지금까지 방통위로부터 인수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라거나 하는 식의 권고나 제재를 단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는데, 갑자기 ‘롯데쇼핑의 우리홈쇼핑 인수는 실패’라는 진단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롯데홈쇼핑 스스로 구린 게 없다면 제대로 항의할 것이고, 아니면 가슴만 쓸어내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 구린 게 없다 해도, 서슬 시퍼런 망나니 칼춤을 추는 방통위한데 항의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말이다.

아니, 롯데홈쇼핑은 ‘배째라 초식’을 펴고 있을 수도 있다. 믿는 구석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종합편성채널에 진출하기 위해 한 족벌신문과 컨소시엄 구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정에 비춰보면, ‘방통위가 우리를 손 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자체 판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재를 가한다고 하면, 컨소시엄 구성을 안 할 수도 있다고 슬쩍 발을 빼도 된다. 종합편성채널 런칭에 ‘올인’하고 있는 방통위로서는 종합편성채널에 돈 대겠다는 든든한 ‘전주’를 잃는 게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망나니 칼춤이 상징하는 무리한 방통위의 ‘행정’이, 정치권력과 기업권력이 결탁하는 이런 크로니(정실)를 빚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라지만, 워낙 엽기적인 일들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시절이니 그 누가 알겠는가?

※ 이번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의 칼럼은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발행하는 방송기술저널 23일자에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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