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필요하십니까? 팍팍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웃음은 필수죠. 현실의 메마름에 지칠 때마다 웃음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갑니다. 하지만 주변에 웃음의 흔적은 미미합니다. 그나마 간신히 찾은 웃음들도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쾌변을 기대하고 열심히 힘을 줬건만, 나오는 건 다이어트에 찌든 도시 커리어 우먼의 굳고 작은 덩어리였을 때 만큼이나 허망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현대인의 유전자는 별 시답지 않은 농담이나 말장난에도 큰 웃음을 느낄 수 있도록 적응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도 우리는 케이블 TV를 수놓는 무수한 농담에 위안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반복 재생산되는 기계적 웃음은 가슴 한 편, 마음의 어둠을 시원하게 씻어내지 못합니다. 때문에 웃긴 웃는데, 가슴은 여전히 답답합니다. 마치 대장에 들러붙은 고기 찌꺼기처럼, 스트레스는 쌓여갑니다. 진정한 웃음이 사라진 인생은 동맥 경화 초기 단계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눈물 흘리며 웃어본 일이 언제던가요. 이런 생각을 할 즈음 그들을 만났습니다.

▲ ⓒ가말쵸바 싸이월드 공식클럽
가말쵸바(Gamarjobat). 한국에선 아직 생소한 이름이지만 뉴욕 브로드웨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 23개국 150곳 이상의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한 세계적인 2인조 코미디언입니다. 그루지야로 ‘안녕하세요’란 의미를 가진 가말쵸바의 공연에 제 몸의 웃음 유전자는 즉각 반응했습니다. 평생 동물원에서 제공해주는 사료만 먹던 사자가 초원 위를 역동적으로 뛰어다니는 톰슨가젤의 싱싱한 허벅다리를 처음으로 맛본 뒤, 몸 안에 잠들어있던 야성의 유전자를 깨워냈듯, 저 역시 가말쵸바의 공연을 통해 퇴화해 가던 싱싱한 웃음 유전자들을 되살려냈습니다.

가말쵸바는 일본 그룹입니다. 물론 일본 말을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사일런트 코미디, 말 그대로 몸으로 언어가 다른 전 세계 모든 인구를 웃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임을 기본으로 다양한 개그를 선보이는데요. 물론 저도 처음엔 잘 알지 못하는 스탠딩 코미디언들의 쇼가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가말쵸바는 등장과 함께 우리의 굳은 안면 근육을 풀어버리고, 딱딱한 껍질에 둘러 쌓여있던 웃음 유전자를 깨워냅니다. 탄탄한 마임 실력을 바탕으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과장된 표정과 행동은 관객들을 한 순간에 서영춘과 이주일의 몸 개그를 보고 환호하던 그 시절로 되돌려놓는데요. 2부로 구성된 공연 중 1부는 ‘가말쵸바 쇼’로 시작합니다. 작은 가방과 그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소품들을 이용한 개그인데, 개그 중 끊임없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웃음을 유발합니다. 특별한 내용은 없지만, 이들의 내공을 가장 확실히 맛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들이 제공하는 무지막지한 웃음은 분명 가말쵸바의 두 멤버, 케치와 히로폰의 표정에서 비롯됩니다. 둘의 표정은 웃음에 인색한 사람이라도 무표정으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코믹한데요. 아내는 그런 표정을 두고 감칠맛이 난다고 표현합니다. 입이 당기게 만드는 음식물을 두고 보통 감칠맛이 난다고 하는데, 아내는 자꾸 시선을 끄는 얼굴이나 표정을 두고 ‘감칠맛 나는 얼굴이야’란 표현을 씁니다. 일반적으로 아내는 1.얼굴 표정의 변화가 심하며-화나고 즐겁고의 변화가 확실한 2.그러면서 인상이 좋고 3.개구쟁이의 익살이 숨어있는 사람의 얼굴을 감칠 난다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가말쵸바 2인조의 얼굴입니다. 이들의 표정은 과연 감칠맛의 극치입니다. 때문에 가만히 있거나 평범한 행동을 해도 웃길 것 같은 두 사람이 무대 위에서 정교하고 과장된 코미디를 선보인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대기업 CEO도 분명 그들의 공연 앞에선 콧물과 코딱지를 간식 삼아 먹던 코흘리개 시절로 돌아가 천진난만하게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 ⓒ가말쵸바 싸이월드 공식클럽
1부에선 가말쵸바 쇼가 끝나면 3개 정도의 소품 공연이 등장합니다. 웃음의 강도면 에서는 가말쵸바 쇼에 비해 낮을지 모르나,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나 마임의 수준은 상당히 고급스럽습니다. 더 나아가 2부에서 펼쳐질 대작을 맛보기 위한 좋은 전체 요리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요. 바로 가말쵸바 공연의 핵심은 2부에서 이어지는 ‘시티 오브 라이트’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동명 영화를 가말쵸바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인데요. 소시민들의 안쓰러운 삶을 소재로 삼은 만큼 전체적인 이야기는 따뜻하고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은 잔잔한 이야기의 뼈대는 유지한 채, 곳곳에 가말쵸바식 개그를 선보이는 데서 드러납니다. 2부의 메인 공연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오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아버지 귀도는 비극적인 우리네 인생 속에서 즐거움을 뽑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선보입니다. 이런 귀도의 모습이야말로 아마도 카뮈가 말한, 부조리한 신에게 정면으로 도전한 시지프스의 현대 버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매일 매일 우리가 겪는 삶은 희극과 비극이 뒤섞여 있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와 흡사합니다. 문을 잠그는 장치가 고장 난 낡은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던 여대생 A의 이야깁니다. A는 혹여나 누군가가 실수로 문을 열까 걱정하며 손으로 문을 꼭 잡고 일을 보고 있었는데요. 바로 그 때! 청소 아주머니가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며 갑자기 문을 화들짝 열어버렸다면, 그 때 아주머니가 들고 있는 호스에선 시원한 물이 변기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면, 더 나아가 휑한 아랫도리에선 역시나 시원하게 배변 활동이 진행 중이었다면,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던 그 순간, 아주머니와 A가 함께 했던 약 3초간의 시간은 비극일까요 희극일까요. 똥을 누는 원초적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였다는 점에선 수치스러운 비극이겠지만, 동시에 낡은 화장실을 추억한다면 그보다 더 유쾌한 희극이 있을까요.

또 다른 얘기도 있습니다. 목욕탕의 수질 검사를 위해 몰래 욕탕에 들어가 검사용 통에 욕탕 물을 담던 기자 B. 하지만 링거 통처럼 생긴 이상한 통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을 담는 모습은 눈에 띄기 마련. 분노한 목욕탕 주인은 그에게 다가와 뭐하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기자 B는 링거 통처럼 생긴 검사용 통으로 중요 부위를 가린 채 해명을 하기 시작했는데, 옷을 벗어서일까요. 파란 팬티를 입은 목욕탕 주인 앞에서 한 없이 작아져서인지, 아니면 장시간에 걸친 욕탕 물 수거 작업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B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링거 통으로 중요 부위를 계속 가린 채 연방 사과를 하는 기자 B. 그는 이 장면을 고된 업무가 가져온 밥벌이의 비극이라 생각하겠지만, 벌거벗은 B가 링거 통처럼 생긴 통을 들고 쩔쩔 메는 상황을 상상하는 친구들에겐 그 보다 더 희극적인 상황이 어디 있을까요. 신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도 유머를 곳곳에 숨겨놓았고, 때문에 가끔 어떤 웃음은 펑펑 쏟아내는 눈물보다 더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 ⓒ가말쵸바 싸이월드 공식클럽
가말쵸바의 ‘시티 오브 라이츠’는 바로 웃음에 담긴 여대생A와 기자B의 페이소스를 절묘하게 뽑아냅니다. 눈 먼 여자와 가진 것 없는 남자와의 사랑. 애인의 눈을 뜨게 해주기 위해 돈을 모으는 남자. 한 때 가난함을 못 이겨 저질렀던 범죄로 경찰서에 끌려가는 남자. 때문에 여자의 눈을 뜨게 해주는 그 순간 여자와 이별을 할 수밖에 없던 남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순애보지만 중요한 건 그 남녀 주인공이 가말쵸바라는 사실. 허리케인 박을 넘어서는 립싱크 코미디부터, 영화 속 익숙한 편집 방식을 흉내 낸 그들의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차량 추격 신을 능가하는 가말쵸바식 추격 신까지. 안타까운 이야기를 보면서도 쉴 새 없이 웃게 됩니다. 그리고 웃음과 슬픔이 눈물과 콧물처럼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는 현실을 텅 빈 무대 위에 재현해낸 그들의 퍼포먼스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들의 상상력과 상상력 위에 형성된 거대한 웃음의 성을 바라보고 있자니, 박수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 때 바보처럼 망가지는 그들의 머리 뒤로 광채가 떠오릅니다. 코미디언은 그 어떤 아티스트 못지않은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그들은 바로 웃음을 예술로 승화시킨 장인(匠人)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케치가 유창한 한국말로 이야기합니다. ‘마임은 상상력을 갖고 봐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굳어버린 우리의 상상력을 끄집어내고, 그 상상력 위에서 쉴 새 없이 웃게 해준 그들이 그래서 더욱 고맙습니다. 당신도 지금 웃음이 필요하십니까. 그럼 바로 가말쵸바를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책, 영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는 부지런한 블로거, ‘알스카토’입니다. (http://blog.naver.com/haine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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