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카메라' 하면 개그맨 이경규가 떠오릅니다. 1990년대 연예인 한 명이 TV에 나와서 아는지 모르는지 슬쩍 속아 넘어가는 장면을 일요일 저녁 온 식구가 모여 함께 보고는 했죠. 그걸 보면서 참 불편했는데 이상한 점은 불편해 하면서도 꼭 끝까지 봤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어서 불편했던 것인지, 불편해서 재미있었던 것인지 헷갈립니다. 하여튼 사람들의 엿보기 심리, 관음증에 대한 대중의 욕망과 쾌락을 연예인의 사생활과 잘 버무려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오락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MBC '불만제로' 웹사이트 캡처
검찰의 MBC <불만제로> 수사

최근에 검찰이 '몰래카메라'를 수사한다고 합니다. MBC 시사 프로그램인 <불만제로>에서 어떤 유치원이 아이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제공한다고 고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취재과정에서 <불만제로> 제작진 한 명이 유치원 보조교사로 위장취업해 몰래 촬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유치원에서는 "제작진이 인터뷰 거절 의사를 묵살하고 퇴거 요구에 불응한 채 유치원 곳곳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했다"며 지난 4월 경찰에 <불만제로>를 고소했지만 경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검찰은 "고소인이 제작진의 처벌을 강하게 원하고 있고 언론 자유와 개인 사생활의 범위 등을 판단해 볼 여지가 있어 몰래카메라와 관련된 국내외 취재사례와 판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몰래카메라>만큼은 아니지만 한때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도 즐겨보았고 또 거기서도 왠지 모를 불안함과 위태로움을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언론, 그 중에서도 방송이 대단한 권력이라 할 수 있는데 때로는 몰래, 때로는 공공연하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경찰과 검찰처럼 수사를 하고 취조를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다고나 할까요. 처음에는 오리발을 내밀다가 찍어놓은 영상을 들이밀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겠다고 읍소를 하는 업자들을 보며 한편 통쾌하기도 했지만 방송의 위력을 실감하며 어떤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몰래카메라의 원조 격은 1990년대 MBC의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1980년대 보안사(현재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1990년 말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보안사가 정치계, 노동계, 종교계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천3백여 명을 상대로 정치 사찰을 벌였다는 것으로 이 일로 해서 보안사는 기무사로 이름까지 바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근 2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다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기무사가 민주노동당 당원을 비롯해서 문화예술단체까지 미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동영상에 담았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와는 달리 기무사는 물론 거대 신문사와 방송사, 그리고 검찰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엿보기와 엿듣기, 사찰 분야의 대한민국 일인지라 할 수 있는 국정원(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민간인 사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들의 엿보기 심리를 이용한 상업방송의 문제는 물론 심각합니다. 흥행성공-시청률 상승-광고수입 극대화라는 고리에서 움직이는 상업방송의 선정성에는 분명히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공익적 성격을 띠고 있는 시사 프로그램에서의 몰래카메라를 또 다른, 그리고 더 큰 권력인 국가기관이 검찰수사로 통제하려 한다면 거기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정보수집-고발과 폭로-단죄와 처벌이라는 수순을 갖고 있는 국가권력기구의 몰래카메라가 가져다주는 공포가 더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경향신문 9월19일자 8면
국가권력의 엿보기와 엿듣기

몰래카메라와는 다르지만 우리는 도청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것은 불법이고 그 불법도청으로 알게 된 것을 공개하면 처벌받는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은 19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 일어난 '초원복집 사건'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전 법무부장관과 지역 검사장, 경찰청장 등이 한 음식점에서 모여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기로 모의한 것을 국민당 정주영 후보 쪽에서 도청, 세상에 알린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건은 엉뚱하게도 '관권선거 모의'에서 도청 문제로 이동했고 김영삼 후보는 영남표 결집이라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2004년에는 MBC 이상호 기자가 1997년 대선 당시 삼성그룹 고위 임원과 중앙일보 회장이 만나 특정 후보에게 대선자금을 불법적으로 지원하기로 공모한 내용이 담긴 안기부의 도청 테이프를 공개한 '안기부 X파일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도 역시 삼성과 중앙일보라는 재벌과 거대 언론사의 불법 대선자금 논의보다는 불법으로 얻은 것을 증거자료나 수사의 대상으로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독수독과 이론(독이 있는 나무에서 열린 열매는 독이 있다)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설왕설래하다 이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뒤따랐음에도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독수독과 이론은 1937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유래된 말로 수사기관이 술 밀매꾼의 전화를 도청하여 기소한 사건에서 법원은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 발단입니다. 2년 뒤 수사기관이 문제의 도청 내용을 단서로 수사를 벌인 뒤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이 증거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원칙은 독일에서도 적용되었습니다. 1980년의 어느 날 독일 잡지 슈피겔에는 정부 기밀과 관련된 글이 실렸는데 수사기관은 한 언론인을 기밀 유출자로 지목하고 용의선상에 올렸고, 법원의 영장을 받아 도청에 나선 수사기관은 이 언론인이 자신의 누나 집에 기밀 문건을 숨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를 근거로 법원에 기소를 하였지만 독일 재판부는 독수독과 이론을 근거로 증거능력을 부정하였습니다. 이때 독일 법원은 한발 더 나아가서 불법 도청한 대화에서 얻은 증거, 영장 없이 체포한 피의자의 자백에 의한 증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압수한 서류를 통해 수집한 증거 등이 대표적인 독수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 독수의 개념을 넓히기도 합니다.

▲ MBC '불만제로'(유치원 편) 방송 화면 캡처ⓒMBC

이처럼 독수독과 이론은 국가권력기구인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이 고문이나 도청 등 절차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수사하는데 경종을 울린 것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오히려 거대한 권력의 잘못을 은폐하고 유야무야 하는데 편리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들은 법원의 영장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메일을 뒤지고, 도청을 하고, 또는 법원의 영장도 없이 몰래카메라를 찍고 제 맘대로 사찰을 하면서 말이죠.

흥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언론이 그 속성을 자제하지 못하면 3류 찌라시로 전락하듯 공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권력은 조폭이나 양아치와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그래서 “취재과정에서 윤리강령 및 내부규정을 엄격히 준수해서 촬영했고 공익을 목적으로 취재활동을 벌인 점에 비춰볼 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불만제로>의 윤리강령과 내부규정이 궁금한 만큼이나 이를 수사하겠다는 국가권력기구의 윤리강령과 내부규정 또한 궁금합니다.

한 법률가는 “언론기관이 사회비리를 밝히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사용해 취재한 행위는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국가기관이 국가안전을 위해 몰리카메라를 사용해 사찰한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불만제로>를 공권력을 동원하여 수사해야겠다고 하듯 마찬가지로 민간인 사찰을 일삼은 기무사와 국정원에게도 '대충 비슷한 잣대를 대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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