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29일 방송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에 영어공동번역자로 참가했던 정지민(27)씨가 진실을 밝힌다는 명목으로 책을 낸다고 한다. <조선>, <중앙>, <동아>가 일제히 비중을 두고 책 출간 소식을 전했는데, 아직 시중에 나오지도 않은 무명 필자의 책에 대한 보수언론답지 않은 이례적인 소개라고 하겠다. 그냥 해프닝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다소 상황이 재미 있어서 몇 가지 분석을 제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중앙일보 9월16일자 44면
먼저, 사건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정지민씨의 ‘양심선언’부터 살펴보자. 보도에 따르면, 정씨는 PD수첩에서 제작해서 방영한 문제의 프로그램에 번역가로서 참여했지만, 제작과정 전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씨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정씨는 ‘내부고발자’라기보다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던 방외자의 신분에 지나지 않는다. 제보의 신뢰성에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씨가 적극적으로 본인을 ‘내부고발자’라고 강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왜 방송이 나가기 전에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야 ‘양심선언’을 했는지에 대해 해명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제작과정에 참여는 했지만,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올 수밖에 없다. <중앙>의 기사에 따르면, 정씨는 “2008년 4월 말, 번역 단계에서 상당부분 미국 취재자료의 내용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감수 단계에서는 방송에 들어갈 미국 취재자료의 부분들은 어떤 것들인지” 알았지만, 방송에 들어갈 자막이나 해설, 그리고 구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정씨의 주장을 요약하면, 번역에 참여했기 때문에 취재자료의 내용은 알았지만, 그 내용이 어떻게 편집, 또는 정씨의 표현대로 ‘왜곡’되어서 방송으로 나올지는 전혀 몰랐다는 말이다.

내부고발자가 아닌 정씨가 PD수첩의 왜곡보도문제를 전면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결국 정씨의 주장은 PD수첩의 ‘왜곡보도’라는 것이 번역 문제에 국한한 논란이라는 것을 역으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지금 보수언론이나 검찰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PD수첩이 취재자료를 왜곡했다는 증거는 정씨의 주장을 통해 입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번역과정에 정씨 혼자만 참여한 것도 아니고, 정작 그 자신은 자신의 번역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번역과정에서 취재자료를 모두 보고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PD수첩의 왜곡을 눈치 챌 수 있었다는 듯이 말하지만, 제작과정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정씨가 어떤 방식으로 그 왜곡이 이루어졌는지를 증언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또한 정씨의 주장은 ‘사실’을 ‘가치’와 혼동한다는 점, 더 나아가서 과학적 ‘사실’만을 진실로 여기고 윤리적 ‘가치’를 ‘쓸모없는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한국 사회의 주류의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말처럼, 이 세상에 불편부당한 과학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이 곧 가치를 생산하는 경우는 없다고 아인슈타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말하자면 정씨는 자신의 주장을 모든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운 절대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처럼 간주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와 같은 무균성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씨 본인도 자신의 행위를 ‘윤리적’으로 정의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사회적인 수치”라는 발언 자체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 조선일보 9월16일자 2면
저명한 미국의 다윈주의자인 피터 싱어의 말처럼, 과학적 사실이 선악의 판단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전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그 진리는 인간에 대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해프닝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정씨가 주장하는 ‘팩트’라기보다, 그것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씨는 PD수첩의 보도가 ‘사회적 의의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무리하게 광우병을 그리려는 발상을 한 순간 PD수첩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제기하고 주입시킨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당연히 의의도 없다”고 일축했는데, 이런 논리야말로 사실과 가치를 혼동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씨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국가와 사회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입증해야한다. 그러나 정씨의 발언은 이것을 입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발언 자체가 자율적인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상식적 원칙을 무시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씨의 주장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한국 사회의 시청자들이 PD수첩의 정보에 대해 아무런 판단력을 갖지 못한 채 ‘세뇌’나 당하는 수동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신의 편견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얼빠진 엘리트주의가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어왔다는 걸 감안한다면, 정씨의 주장이 ‘어떤 윤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정씨의 주장을 듣고 있으면, 결국 작년의 촛불이 모두 PD수첩의 왜곡보도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또한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촛불이 한창 타오를 때 보수언론들조차 ‘민주주의’를 운운하면서 찬사를 보냈다는 사실을 정씨는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지금 보수언론들이 정씨를 이용해서 PD수첩을 때리는 까닭은 광우병이나 왜곡보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대립관계가 격렬해진 것은 미디어법으로 인한 것이지 촛불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씨가 알 까닭이 없다. <중앙>만 해도 촛불보도에서 <한겨레><경향>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였다. 이런 원죄가 있으니 어떻게 촛불과 광우병을 문제 삼아서 PD수첩을 걸고넘어질 수 있겠는가. 때맞춰 멋모르는 정씨가 나서서 대신 역할을 해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것이다. 몰상식이 상식을 능가하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고 하지만, 명문대학을 나온 유능한 인재라는 정씨가 이 정도이니, 이명박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갈망하는 그 한국 사회의 선진화는 언제쯤 가능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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