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규제 완화에다 저금리를 타고 아파트 값이 상승세로 돌아서자 부동산담보대출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다소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자 금리가 들썩거리고 있다. 대량실업과 소득감소로 부채상환 능력이 떨어져 자칫 가계부실이 금융부실로 전이될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가계부채가 697조7,493억원으로 700조원에 육박했다. 가구수로 따지면 평균부채규모가 4,128만원으로 4000만원을 넘어선 셈이다. 이것은 1년 전의 660조3,060억원에 비해 37조4,433억원이 늘어나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세를 나타낸다. 반면에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인 명목국민총가처분소득은 502조797억원에 그쳤다. 갚아야 할 돈이 갚을 수 있는 돈보다 1.39배 많다는 뜻이다. 이것은 작년 동기의 1.32배에 비해 0.07포인트 오른 것으로 사상최고치이다.

▲ 경향신문 9월16일자 17면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4%였는데 가계대출은 7.5% 증가했다. 1∼7월 주택담보대출 증가액만도 22조6,000억원이다. 이것은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던 2006년 같은 기간의 8조6,000억원보다 2.6배나 많은 것이다. 또 가계부채가 1/4분기에는 작년 동기에 비해 6% 증가했는데 2/4분기에는 사상최대인 9%로 높아졌다. 이 보고서는 가계부채가 연말에는 2003년 신용카드 위기사태와 비슷한 위험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경기침체가 가속화하자 작년 10월 5.25%였던 기준금리를 매달 내려 올 2월 2.00%까지 인하했다. 그 후 3월부터 7개월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한국은행이 부동산 투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자 금리인상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대출금리의 기준인 양도성 예금증서(CD)금리가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계는 대출금리가 2/4분기 5.48%에서 4/4분기에는 6%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평균금리가 지난 7월 5.58%로 올라 9개월만에 상승세로 반전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 오르면 이자부담이 3조4,000억원 늘어난다.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의 92%가 변동금리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시중금리의 상승에 따라 대출금리가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또 가계대출은 만기가 짧아 원리금 상환부담이 높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만기가 3년 이내인 대출이 전체의 35.6%이고 10년 이내는 55.5%로 절반을 조금 넘는다. 이미 지난 7월 가계대출 연체율이 0,63%로 6월에 비해 0.04% 상승했고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44%로 0.01%포인트 올랐다.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고용불안이 지속되고 있어 부채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전세파동이 확산되면서 전세자금을 더 마련해야 하는 대출자들이 늘어나 상환능력이 더욱 줄 수 밖에 없다. 상당수의 자영업자들이 가계대출을 영업자금으로 이용한다. 경기침체로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받고 있어 상환능력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현재 자영업자수가 583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06만2,000명에 비해 22만8,000명이나 감소했다.

가계부채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증가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득감소로 가계수지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전세파동이 진정되지 않으면 가계부채의 안정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금리인상은 기존대출의 상환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금리인상보다는 대출억제를 강화해야 한다. 금리인상이 저축과 소비를 감소시켜 내수경기를 더욱 침체시킬 우려도 크다. 금리인상이 가계파산, 신용불량을 양산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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