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으로는 세종로이다. 그런데 많은 서울시민들이 그곳을 지명인 세종로보다는 광화문이라고 부른다. 세종로에는 한동안 광화문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 정문이다.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2년(1865년) 대원군이 재건했다. 그마저 한국전쟁 때 불타서 1968년 복원되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로 지었고 자리를 조금 잘못 잡았다고 헐어버리고 다시 짓고 있다. 그런데 세종로가 세종광장이 아닌 광화문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종로하면 아름 들이 은행나무들이 떠오른다. 서울 시민과 함께 호흡하며 20세기 정치적 격동을 지켜보며 자란 나무들이다. 정도 615년을 맞았건만 서울에는 어딜 가도 수령 30년이 넘는 가로수가 거의 없다. 수목교체를 핑계로 걸핏하면 가로수를 뽑아내고 길을 넓히는 바람에 나무인들 자리 잡을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세종로에 가면 그 복판에 수령 100년 가까운 노거수(老巨樹) 29그루가 도열해 있어 서울의 정취를 한껏 돋구었다.

▲ 8월 1일 시민에게 첫 선을 보일 광화문 광장.ⓒ오마이뉴스 최재혁

세종로 은행나무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며 서울 시민에게 기쁨을 주었다. 봄에는 싱그러운 신록이, 여름에는 짙은 푸르름이 늠름한 자태를 자랑했다. 가을에는 수만, 수억의 노랑나비 떼가 내려앉은 듯했다가 찬바람이 불면 노란 옷을 벗어버리곤 했다. 그리곤 굴곡 없이 쭉쭉 위로 뻗은 가지를 드러냈다. 눈보라에도 꿋꿋이 버티는 겨울의 나목(裸木)은 흑백사진에 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서울시가 은행나무를 시목(市木)으로 지정했을 터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을 만든다고 그 은행나무들을 몽땅 뽑아냈다. 15그루는 시민열린마당 앞 보도에, 나머지 14그루는 정부중앙청사 앞에 옮겨 심은 것이다. 제 자리를 잃은 탓인지 그 옛날의 자태가 아니다. 서울시가 밝힌 은행나무들을 파낸 이유가 가관이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억누르기 위해서 심었단다. 가로수가 민족정기를 억압했다니 모를 일이다. 그래도 90여년 동안 세종로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주변에 옮겼단다. 봐준다는 소리로 들린다.

은행나무는 빙하기도 지각변동도 견디고 살아남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수종이다. 그래서 화석나무라고 말한다. 꺾꽂이를 해도 뿌리를 내릴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 그 까닭인지 공해에도 강하다. 또 오래 산다. 수명이 1000년이나 된다. 은행나무는 전지를 하지 않아도 비슷 비슷한 모습으로 자라 가로수로 제격이다. 끊임없이 가지를 쳐줘서 모양을 가꾸는 나무와는 다르다. 요즈음 가로수로 각광받는 소나무는 모양도 갖가지고 제멋대로 자라 사람 손이 자주 가야 멋을 가꿀 수 있다.

2년 동안 415억원이나 들여 만들었다는 광장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가로수가 우람하게 도열한 큰 거리(boulevard)를 없앴을 뿐이다. 중앙분리대를 헐어내고 아스팔트 도로를 파내고 돌판으로 뒤덮은 펑 뚫린 공간이 공허감마저 준다. 어디에도 문화적 흔적이 베어나지 않는다. 광장하면 사통팔달로 뚫린 길로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소통, 산책, 휴식하는 공간이어야 할 텐데 사방이 시속 60㎞로 달리는 차도로 갇혀 있다. 광장과 차도를 같은 돌로 깔고 그마저 턱이 낮아 잘 구분되지도 않는다.

세종문화회관을 빼고는 양쪽에 버티고 서있는 건축미라고 없는 볼품없는 사각빌딩과 조화도 규형도 이루지 못한다. 높은 담장 뒤에 숨은 문화관광부 청사와 와 미대사관 건물은 폐쇄감마저 준다. 이순신 장군 동상만이 덩그러니 서 있고 꽃밭을 가꾸는 일손만이 분주하다. 때 늦은 잔염이 맹위를 떨치니 돌판에 반사된 태양열이 더욱 작열하다. 잠시 숨을 돌려 땀 닦을 그늘조차 없다. 날씨가 더워 지금은 어린이들이 분수에 뛰어놀고 꽃밭을 찾는 이도 있다.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이 오면 그 돌판이 더욱 황량해져 누가 찾을지 모르겠다.

청계천은 인공하천이지만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있다. 죽은 하천이 살아난 듯하여 즐거움을 주니 사람들이 찾는다. 아마 이명박 서울 전임 시장이 청계천으로 대망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 뒤를 이어 광화문 광장을 착상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마디로 실패작이다. 은행나무들이 사라진 세종로가 슬프다. 한 세대쯤 지나 은행나무들이 더 무성해 있을 서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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