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 이종욱, 고영민, 김태균, 윤석민, 장원삼, 강민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선수들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부상으로 2009 시즌을 온전히 보내지 못한 선수들이다. 큰부상이 없는 다른 WBC 출전 선수들도 대체로 예년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4할도 못치는 바보’ 김현수와 정근우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대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다.

올시즌 각 부분의 타이틀에 새얼굴이 많이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세대교체가 아니라 WBC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의 부상과 부진을 WBC 후유증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동계훈련과 장기레이스의 페이스 조절이 한 시즌의 성패를 가늠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WBC 출전은 큰무대를 경험한다는 장점을 고려해도 잃는 것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웹사이트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제 2회 WBC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상금으로 각각 3200만원씩 주기로 했다고 한다. 참가선수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금액”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선수들의 권한을 위임받은 선수협은 2009년 야구규약 국가대표팀 운영규정 12조에서 우승 및 준우승에 대한 포상금 규정에도 위배됨을 지적하였다. 이에 KBO는 수입금 200만 달러 중에 100만 달러가 선수들의 몫이며, 세금을 떼고 28명에게 나눠주다 보니 3200만원이 됐다고 해명했다. 선수협은 KBO가 사용한 23억 원의 경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상세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고 KBO는 WBC 당시 고환율 때문에 그렇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구단을 통해서 선수들에게 개별적으로 알리겠다는 KBO의 태도는 오히려 더 많은 의혹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돈 액수와 관련된 진실게임은 언제든지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문제는 단순한 돈 액수가 아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숫자놀음 뒤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먼저 KBO의 원칙없이 오락가락하는 행정이 문제다. 이것은 어쩌면 KBO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병일 수도 있다. 특히 국제대회에서 예상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때, 포상금이나 여타의 격려금 등을 분위기에 휩쓸려 결정하고 그것이 결국은 불씨가 된다. 월드컵이나 WBC 참가 선수들의 병역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의 특혜를 원칙 없이 남발하기 때문에 종목간, 혹은 대회간 차등이 생기면서 출전선수들의 불만이 쌓여가는 것이다. 1회 대회 때 KBO가 지급한 10억원의 포상금에 대해서도 KBO는 “1회 대회 때는 상금이 따로 없어서 상금개념으로 내놓은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때 그 때 기분 내기 식으로 운영을 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웹사이트
포상금과 같은 사후적인 떡고물 외에도 국가대표 선발자체에 대한 고민도 턱없이 부족하다. 프로리그가 있는 축구나 농구도 대표팀 선발이 쉽지 않은 문제다. 갈등은 주로 협회 구단의 대립양상으로 나타난다. 잦은 국가대표 차출은 선수들의 부상이나 경기력 저하와 직간접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프로리그와 국가 간 매치가 활발한 유럽축구의 경우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그에 따라 집행하기 때문에 잡음이 덜 한 편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보자면 프로축구 K리그에 비해서는 국가대표를 선정하고 모집하는 데는 갈등이 덜 한 편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프로야구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각 구단의 장삿속, 혹은 애국심을 등에 업은 여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동조일 뿐이다. 문제의 본질을 찾지 못한다면 폭탄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핵심은 국가대표 선출에 있어서 협회가 사고하는 방식이 개인을 국가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국가주의의 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국심을 무기로 혹은, 병역면제 따위의 달콤한 유혹으로 선수들을 국가대항전에 불러다 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된다. 어느 분야에서든 엘리트의 재능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고 사회에 환원해야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개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더군다나 국가의 일에 개인을 동원할 때는 무척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에서 자신의 의사나 권리가 쉽사리 뭉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로 뽑히는 것이 커다란 영광이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하는 어려운 기회를 갖는 것이 개인에게도 커다란 경험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자기관리가 중요한 프로야구 선수에게 시즌 직전(혹은 시즌 중 올림픽이라고 해도) 국제대회에 참여하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다. 혹은 굉장히 손해보는 일이다. 나의 기쁨을 위해, 국가의 위상을 위해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다.

보통의 경우 이 손해를 감수하게 하는 당근이 금전의 보상이다. WBC 포상금을 둘러싼 문제도 당근의 크기가 가장 큰 쟁점이고, 그 둘레를 KBO의 투명한 경비사용 같은 문제들이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선수들이 만족할만큼 큰 금액을 KBO가 선뜻 내놓는다면 이 문제는 없었던 일처럼 흐지부지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지 않은 미래에, 야구가 아닌 다른 종목에서라도 또 다시 반복될 것이다.

결국 KBO의 포상금지급에 선수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3200만원이 적다는 수치상의 문제가 아니라, 부상과 한 시즌 부진을 무릎 쓰고 참가한 것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상 문제는 돈폭탄만 터뜨려준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제대로 된 보상은 결국 선수 개개인에 대한 보호의 관점이다. 협회가 너무도 당연하게 선수를 지명만 하면 가져다 쓴다는 생각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한다면 아무리 많은 돈으로 포상금을 책정해도 적절한 보상은 끝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 개인(선수)을 국가의 일(국가대항전)에 동원할 때, 국가가 개인에게 갖춰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세워진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KBO를 비롯해 한국 스포츠계가 국가대표 선발과 운영에 있어서 가장 염두 해야 할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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