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에서 퇴출당한 정수근이 이번에는 KBO에서 무기한 실격처분의 중징계를 받았다. 무기한 선수실격은 기간제한 없이 선수신분을 박탈하는 것으로 영구제명 다음가는 중징계다. 사형 다음 가는 무기징역이나 다름없는 중징계인 것이다. 자연인 정수근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야구선수 정수근의 인생은 당장에 숨은 붙어있어도 살아있지는 못한 처지가 되었다. 정수근으로서는 한 번 받기도 힘든 무기한 실격처분을 두 번이나 받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근데 무기징역을 두 번 받을 수 있나? 이 넌센스의 중심에 KBO가 있다.

허술하고도 원칙 없는 KBO의 행정이 이런 넌센스같은 상황을 만든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8년 7월, 정수근은 만취한 상태에서 경찰관과 시민을 폭행했다. KBO는 이 당시 야구규약 제 145조 3항(마약 및 품위손상행동)을 근거로 정수근에게 내린다. 정수근의 행동이야 백 만 번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선수생명을 빼앗는 중징계를 내릴 일인지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쏟아져 나오는 무책임한 언론보도들과 거센 여론의 폭풍에 휩쓸려 KBO가 원칙없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실 정수근의 행동은 ‘폭력행위 및 처벌에 관한 특별 법률’에 따라 사법기관의 판단을 거쳐 죄값을 치르면 될 문제였다. 아끼고 아껴야할 무시무시한 검을 어설프게 휘둘렀을 때, KBO는 이미 앞으로 발생할 여러 문제들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 연합뉴스의 정수근 관련 보도 ⓒ 연합뉴스 캡처
정수근의 징계 해지 때도 말이 참 많았다. 아무런 원칙 없이 주어진 징계는 해지 또한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흐물흐물 흘러갔다. KBO는 ‘무기한 실격처분’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듯 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서 중징계를 내려야 하는지, 그리고 징계를 풀어줄 때는 또한 어떤 상황과 절차가 필요한지 도통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애시당초 무리한 징계였다면 사후에라도 징계의 완화나 해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왜 무리한 징계를 내렸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으니 여전히 팔랑귀에 의존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이번 사건에 대한 KBO의 결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관계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무시무시한 중징계의 칼을 생각없이 휘둘러 버렸다. 전적이 있는 정수근이라서 미운털이 박혔을 수도 있지만, 전적이 있는 정수근이라도 부당한 처우를 받아서는 안된다. KBO의 어처구니 없는 결정에 정수근을 신고했던 술집종업원조차 당황하여 자기가 착각했었다며 허위신고였음을 인정하고 나섰다. KBO는 재심의 절차를 완화하는 제스쳐를 취하긴 했지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정수근이 잘못을 했고 그에 따라 징계를 해야 한다면 KBO가 확실한 증거와 근거를 가지고 정수근의 잘못을 입증해야한다. 그런데 KBO는 잘못 입증은 커녕 언론에 크게 보도 된 것이 문제라며 그 언론보도의 진위여부는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정수근에게 결백을 스스로 증명하라는 것은, 촛불집회에서 아무나 잡아간 후 네가 무죄인 것을 증명하라고 억지부리는 개념없는 요새 경찰들이나 하는 짓이다. 더군다나 정수근의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는 하나도 내놓지 않은 채 징계를 내린 것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해야하는 무죄추정원칙에도 어긋난다. KBO처럼 무시무시한 결정을 무식하게 내리는 재판관이 있다고 생각하니 무죄추정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 KBO 홈페이지 캡처
올시즌 유난히 KBO의 오락가락 원칙 없는 행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월요일 경기와 더불헤더에 대한 규정이 시즌 중에 갑작스레 바뀌고, 올스타전 출전 엔트리가 갑작스레 한 명이 추가되면서 각 구단의 일정에 차질을 유발하는 등, 전혀 ‘프로’야구 답지 못한 행정으로 팬들과 구단에 원성을 사고 있다. 원칙없는 오락가락 행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팬들과 선수들, 구단들이 지기 마련이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정수근이 잘못한 행위가 있다면 철저히 밝혀서 적절한 수위의 징계를 내리는 최소한의 절차에 대한 원칙을 지켰다면 맥주 두 잔으로 프로야구의 품위가 훼손되는 코메디 같은 논리는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KBO는 또 다시 원칙과 기준없이 결정을 내렸고, 정수근은 선수생활이 끝날 상황에 내몰렸다. 자신들의 결정이 한 인간의 인생을 어떻게 좌지우지 하는지 고려해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씀씀이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제발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일이 처리되기만 바랄 뿐이다. 그냥 모른척하고 살기엔 피해보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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