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9월 3일 집권 후 2년여 만에 처음 치른 개각에서 정운찬 서울대 교수를 차기 총리로 기용할 예정이다. 이번 개각은 지식경제부, 노동부, 법무부, 국방부, 여성부 등 6개 장관직도 물갈이 하여 일부 개각의 성격을 갖지만, 사실상 총리도 바꾸는 개각이어서 오히려 1차 전면 개각에 가깝다.

▲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내정 소감을 밝히기 위해 교수연구실을 나서고 있다.ⓒ오마이뉴스 유성호
정운찬 총리 내정에 대해 청와대는 변화와 개혁을 몰고 올 인물로 소개했지만 정당들은 다소 견해를 달리한다. 정치권의 반응을 보면, 청와대와 마찬가지로‘국민통합형’(한나라당), 그러나 ‘추진력 의심’(자유선진당), 한편 다른 야당은‘어울리지 않는 조합’(민주당), ‘핫바지 노릇’(민주노동당), 과거 ‘구여권 대선후보 물망’(진보신당)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정당들의 촌평이란 사실 들어볼 필요도 없이, 여당은 긍정적 지지, 야당은 부정적 내지 회의적인 비판을 보인다는 것은 정치권의 공식이다.

정운찬 본인은 이날 기자와의 대담에서 이명박의 경제철학이 마음에 들어 참여하기로 했으며, 자신은 원칙과 정도를 지켜 사회적 갈등 해소와 서민 정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그가 정부의 시장개입을 지지하고 있어 성장주의자인 경제각료들과 화합이 될지 의심하고 있다.

정운찬은 한국은행 출신으로 경제학 교수 경력이 있어 지난번 한은 총재로도 물망에 올랐으며 무엇보다도 정치가로 변신해 권력에 도전하는 인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그의 이런 정치지향은 지난번 제 17대 대통령 선거 때 열린우리당의 구애를 받았지만 그 해 4월에 포기하는 기자회견을 할 때부터 드러났다. 당시 그가 이명박처럼 대선에 나갈 만한 조직과 자금만 있었더라면 선뜻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파와 계보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조직과 자금이 뒷받침 되어야 했을 것이지만, 그가 충청도 출신이라는 지역적 특징은 아마도 그의 입신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성장주의 경제각료와 화합될지 의문

그러나 정운찬 역시 한국 정치권에서 출세 하기에 적합한 기회주의자라는 점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이제 수구세력 하의 국무총리직를 선택함으로써 정통 보수 정치인으로 입신할 기회를 잡았다. 그가 이번 선택으로 분명히 포기해야 하는 것은 그에게 국회의원이나 대선 출마의 기회를 주고자 대기 상태에 있었던 보수개혁파인 민주당과 민생민주정치 세력과의 결합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최대한 얼마나 발휘할 것인가에 따라서 개혁파 설득은 가능할 것이다.

정운찬 총리 후보는 한나라당이 이야기하듯이 친서민 인물은 결코 아니다. 정치계가 쓰는 친서민이라는 비계급적 용어보다는 오히려 친노동자, 친민중이라는 말이 역사적 차원에서 맞는 용어인데, 정운찬은 결코 친노동적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 집권세력인 한나라당과 정치적으로 무난한 관계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용산 철거민 학살 사건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나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 구제 조치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민중억압사건에 직접 연루되거나 그것을 규탄하고 시위를 하던 노동자∙시민의 즉각 석방과 같은 인권 원상회복 조치는 정운찬이 꿈도 못 꿀 대책이 될 것이다.

▲ 경향신문 9월4일자 4면
향후 정운찬이 할 수 있는 사회통합의 최대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죽으면서 이른바 ‘최후의 말씀’이라고 박지원 의원이 전한 민주대연합 – 이것은 물론 보수개혁대연합이다 – 세력과의 관계를 조정하는 기능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토대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하는 보수 정치권은 이제 상호경쟁의 틀 내에서 화합하자는 ‘보수대연합’을 완성시키는 일이 정운찬의 어깨에 걸렸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대연합 구도는 이미 이명박이 결심한 바 있는 중도실용노선과 아주 잘 맞는 구도이다. 그러나 이명박 수구진영 내에는 평화적이라기 보다 폭력적 육감과 본능을 지닌 극우파들이 존재하는데, 그들과의 당내 투쟁에 이명박이 정운찬의 손을 들어 주기로 약속한 것이 이번 총리직 제안이다.

보수대연합의 완성, 정운찬 어깨에 달려?

그가 다음 주 국회청문회를 통과하게 되면, 보수 정치권의 연합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과제만 하더라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후진적인 경제 분야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현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가장 비효율적이고 후진적인 토목 기술이 이용되는 4대강 정비사업을 이제 그만 두어야 할 것이며, 또한 생산자금이 소시민적 아파트 투기로 다시 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고, 부자감세 중심의 세제를 중산층 감세로 뜯어 고쳐야 할 것이며, 선진국 가운데 최대로 취약한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개혁조치 외에 역시 OECD 회원국들 가운데 전체예산대비 혹은 GDP대비 비중이 아주 큰 고질적인 분야로 국방비와 공안행정비를 시급히 줄여 북한과의 유대는 물론 시민으로부터 공안정국이라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는 평화통일 및 민주주의 국가라는 국가브랜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정운찬이 서울대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그가 조순 교수와 공동 집필한 ‘경제학원론’이 한국 경제학계에서는 베스트 셀러로 잘 알려져 있다. 경제학원론의 편編 가운데 가장 짧게 쓴 제 14편 경제체제를 보면, 그의 정치행보를 짐작할 수 있다. 정운찬은 이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 “소련이 붕괴되었다고 해서 사회주의 사상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사회주의 사상은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볕이 비치는 곳에는 항상 그림자가 있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제 5차 개정판, 742쪽).” 그는 경제체제 편을 가장 짧게 할애하였다는 점에서 실용주의자인 동시에, 위의 글을 보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양쪽의 존재적 정당성을 인정하는 점에서 중도주의 입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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