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은 없다. KBS의 모델이 BBC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KBS 이사회의 일성도 그것이었다. KBS 구성원들의 인식도 대충 그러하다고 알고 있고, KBS와 관련된 토론회 등 공론의 장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문이 바로 KBS가 BBC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사설도 그러했다. 모두 KBS에게 BBC를 주문했다. 중앙일보는 제목을 아예 “BBC 같은 공정방송 만들겠다.”로 뽑았고, 한겨레는 "흔히들 공영방송의 모델로 영국의 <비비시>(BBC)를 거론한다."고 썼다. BBC라는 구체적 지향을 놓고 KBS의 오늘을 풀이하고 있다. KBS의 진화가 BBC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합의를 이루고 있는데, 그 풀이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우선, 중앙일보를 보자. 중앙일보가 보기에 KBS가 BBC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영혁신이 필요하단다. 일간지들의 아주 오래된 못된 버릇 가운데 하나가 방송사를 일컬으며 무조건 경영혁신이 필요하다고 써대는 버릇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근거도 설명도 없다. 덮어놓고 사장이 바뀌건, 이사회가 바뀌건 가릴 것 없이 틈만 나면 경영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MBC의 문제도 경영이고, KBS의 문제도 경영이란다. 각각의 처한 상황이 다른데, 위기의 양상은 같은가? 아니다. 일간지가 잘못 짚고 있거나 뭔가를 침소봉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 중앙일보 9월3일자 사설

덮어놓고 경영이 문제인가

중앙일보는 2007년 43.1%였던 KBS의 매체 신뢰도는 지난해 29.9%로 추락한 것을 경영 혁신의 핵심 중 하나로 꼽았다. 그것이 이른바 공정성의 회복이란다. 정연주 사장을 우격다짐으로 밀어내고 이병순 낙하산이 투여 된지도 1년이 지났다. 거리에서, 인터넷에서 시민들은 KBS를 '김비서' 혹은 심하게는 '개배스'라는 육두문자로 불러대고 있다. 중앙일보가 인용한 매체 신뢰도 조사의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KBS의 매체 신뢰도가 위기라는 것에 충분히 공감한다. 물론, 포괄적으로 경영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병순 사장이 완장을 찬 이후, 이후의 KBS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하여 비판적 보도에 나서지 않는 것이야 말로 공정성의 위기이고, 경영 감시의 권한을 가진 KBS 이사회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중앙일보의 문제의식도 그것인가?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경영수지 개선과 관련해서 중앙일보는 누적적자를 거론했다. 4년간 1172억 원에 이른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복지 수준은 공기업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경영진과 노조의 담합을 해소해야 한다고 나무랐다. 이사진이 추진 의사를 비친 수신료 인상의 경우, 뼈를 깎는 자구책이 없다면 반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 잠깐, 한겨레의 사설을 보자. 한겨레 사설의 제목은 "부적절한 손병두 KBS 이사장 선출"이다. 중앙일보가 KBS 이사회의 역할과 범위를 지적했다면, 한겨레는 이사장 선출 자제가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손병두 이사장이 적절한 인물이 아니며, 그걸 뻔히 알면서도 그를 선출한 이사들 역시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전 내정설이 있던 상황에서 권력 핵심부와의 교감 의혹을 물었고, 이사장 선출 한 것만 보더라도 새 이사회가 정부나 자본의 개입, 재벌·족벌 언론의 견제로부터 공영방송을 지켜내는 것은 이미 무리임이 드러났다고 썼다.

▲ 한겨레 9월3일자 사설

공정성 실체에 대해 답해야

정권과의 교감, 내정설 속에 KBS 이사들은 삼성을 거쳐 전경련 부회장을 지낸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을 새 KBS 이사장으로 뽑았다. 그는 방송 관련한 아무런 경력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이사회는 거칠 것 없이 늦어도 다음 달 중으로는 경영개선 방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경영개선 방안의 핵심은 무엇보다 공정성의 회복과 경영수지 개선이란다. 다시 경영수지의 경우 수신료가 핵심이다. 공정성의 문제는 결국, 수신료 인상을 관철시키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그래서 묻는다. 과연, 어떤 공정성인가, 공정성의 실체는 무엇이야 말이다.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사설을 버무리면 이미 답은 나왔다. 중앙일보는 매체 신뢰도의 회복을 꼽았고, 한겨레는 '전문성과 책임감 있는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얻은 국민의 신뢰'를 뽑았다. 결국, 같은 얘기가 아닌가. 언론 장악의 일환으로 KBS 떨어진 낙하산을 치워야 되는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그걸 일단 해야 매체 신뢰도도 올라갈 것이고, 국민의 신뢰도 되찾을 수 있을게 아니냔 말이다. 그리하여야 KBS도 BBC 같은 공영방송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일일이 바로 잡아주기도 지친다. 오늘 중앙일보 사설을 쓴 자여 한겨레 사설 좀 꼼꼼히 읽어보라. 말 안 들으면 수신료 쥐고 흔들겠다는 완력 과시할 생각일랑 그만하고, BBC같은 공영방송을 위해 KBS를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을 좀 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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