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라는 공자의 말씀 뜻을 나는 오랫동안 착각했다. 들으면(聞)인데, 드러가면(入)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래선지 내 머리에서 도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가 항상 맴돌고 있었다. 사실 한 직업에서 도에 드는 것은 미뤄 짐작할 일이 많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생 칼날 한번 세우지 않을 만큼 소를 잡는 것에 능숙했던 포정(疱丁)처럼 한 일에 능숙해 도에 드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일을 무협영화를 통해서도 익히 봤다.

비즈니스 관련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물리도록 들었다. 때문에 거창하게 포장한 성공담은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도 광고 전문가를 다룬 책은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책 제목 앞에 ‘인문학’이 붙어서 가방에 넣었고, 퇴근길에 금세 읽어버린 책이 박웅현, 강창래의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알마 간)이다.

▲ 도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박웅현,강창래 지음) 표지
이 책은 ‘TBWA 코리아’라는 외국계 광고회사에서 ECD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박웅현을 인터뷰한 책이다. 책은 이전에 읽은 박원순, 지승호의 ‘희망을 심다’와 비슷한 스타일의 책이다.(나중에 날개 보니 같은 출판사다) 다만 강창래라는 출판전문가가 참여한 이 작업은 구성이나 집중도에서 지승호의 책보다는 성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책은 읽을 만하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가방에 넣었기에 재미없으면 그리 옮겨가야지 생각했는데, 결국 퇴근 길 내내 이 책을 숙독했다.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박웅현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과 다른 점들을 발견해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다른 점은 그는 지금 아주 잘 나가는 ‘광고쟁이’이고, 나는 못나가는 사업가에 저술가라는 점이다. 다르다는 것은 그는 대학시절 광고공모전에서 수상도 해 제일 큰 광고대행사에 입사했던 반면에, 나는 막연한 꿈으로 광고대행사에 지망했다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는 점이다. 또 그는 회사에서 지원해서 폼 나게 미국을 유학했던 반면에 나는 자비로 중국에서 어렵게 공부를 했다는 점 등등. 아무튼 참 많은 점에서 다르다.

그런데 그와 나는 비슷한 점도 많다. 아이큐도 비슷하고, 공부는 좀 한 것도 같았지만 학교에서 그리 특출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 직장 생활 초년병 때는 왕따 같은 느낌을 받은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안 좋은 것만 닮은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그가 그러하듯 인문학을 삶의 바탕으로 두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학창 시절 도올 김용옥을 사숙해서 그의 책을 모두 읽으면서 사유를 확장한 것도 닮았다. 또 책을 좋아하는 것도 닮았고, 이것저것 오만가지 분야에 관심을 쏟는 것도 닮았다. 또 삶은 설득력 있는 논리와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가치관도 닮아 있다. 그래서 많은 공감이 있었고, 배울 점도 있었기에 그의 삶을 자세히 엿본 것 같다.

대학졸업반 때 나는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에 떨어졌지만 매체비평신문의 기자로 입사했다. 그리고 내 출입처 중에는 광고업계도 있어서 광고대행사의 사람들과도 많이 어울렸다. 기자가 된 후 내 첫 인터뷰도 막 광고계 회장이 된 윤기선 제일기획 회장이었고, 광고관련 기자들의 모임에도 잘 어울렸다. 그런데 내가 불민한지 TBWA라는 회사가 눈에 띄지 않았다. 제일기획이나 엘지애드컴, 코래드 같은 인하우스(대기업 등의 계열사로 고정적인 물량을 확보한 회사)가 다수였고, 눈에 띄는 외국계가 몇 개 있었는데, TBWA는 기억에 없다. 그런데 15년여가 지난 지금은 외국계 중에서는 이 회사가 가장 눈에 띄는 회사가 된 것 같다. 어떻든 이 회사의 새로운 동력에는 박웅현이라는 인물이 있지 않을까 싶다.

박웅현은 ‘잘 자, 내 꿈 꿔!’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등의 광고를 기획했다고 한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삼성광고가 있지만 어떻든 그는 KTF광고 등을 만들면서 인간을 광고에 심는데 특출한 능력을 나타냈다. ‘박카스’ 광고의 기회에도 참여했다.

이 책에서 얻을 게 몇 가지 있다. 우선 단순한 기교로 세상에 승부할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기반을 가지고, 사람에 접근하는 이가 오래 동안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그의 광고 항아리에는 사람을 푹 담그고, 주변에는 영화, 문학, 철학 등 갖가지 장(醬)을 부어둔 것 같다. 또 자신의 일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정은 책, 영화, 미술을 가리지 않는 교양이라는 것도 보여준다. 또 현대 대중문화나 유행의 흐름을 관류하는 광고에 관한 정보도 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저러나 광고계 출입할 때 만났던 금강기획의 배우 신애라 닮은 그 처자는 시집 잘 가서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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