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근거로 편성권이 경영권에 포함된다고 주장합니까?"

▲ 방문진 차기환 이사ⓒ권순택
한나라당이 추천한 김광동, 차기환 이사는 지난 8월27일 방문진 업무보고 과정에서 MBC노조가 경영진의 고유권한인 인사권과 편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구체적으로, 차 이사는 보도국장에 대한 기자들의 불신임 투표가 보장돼 있는데, 이것이 경영권의 핵심을 이루는 인사권과 편성권 침해라고 했다. 노조에게 불신임 권한을 주는 게 공정방송 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김 이사는 노사 동수로 공정방송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한 것을 예로 꼽았다.

공영방송의 업무보고 자리는 합의되지 않은 이론을 가지고 정치공세를 펴는 곳이 아니다. 차 이사는 경영권은 경영진의 고유 권한이고, 인사권과 편성권이 경영권의 핵심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이 아니다. 자기 기업체를 관리 운영하는 권리라고 할 수 있는 경영권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처럼 헌법에 보장돼 있는 기본권도 아닐뿐더러, 법률상으로 독립된 명확한 개념의 권리도 아니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이 경영권에 인사권이 포함되는 것은 분명하다.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편성권까지 경영권에 포함되는지는 합의된 바 없다. 편성권은 경영진(또는 발행인)과 편성 종사자 사이의 이른바 '내적 언론 자유'와 관련되는 사안이다. 방송에서 내적 언론 자유에 해당하는 편성권이 경영진의 경영권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방송법상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다. 방송법은 방송사업자, 이를 대표하는 사장에게 외부의 간섭에 대해 편집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며,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편집규약을 제정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방송법 제4조 제3항, 제4항). 사장이 편성권을 갖는다는 식으로 결코 해석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이와 관련해 차 이사는 지난 8월31일 평화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독일 연방재판소의 경우에도 언론 기업의 경우에는 근로자들의 경영 참여에 대해 상당히 제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도 그러하니, MBC노조가 행사하는 노사 동수의 공정방송협의회 구성, 국장 불신임 제도 등은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차기환, 독일 신문 사례를 한국의 방송에 적용시켜

결론부터 말하면 차 이사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말하는 언론 기업은 '방송'이 아니다. '신문'이다. 1979년 11월 판결은 "발행인이 신문의 경향을 설정하고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며 이 권한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제도의 적용에서 예외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발행인이 경향을 설정하는 권한을 갖는 매체는 방송이 아니라 신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중요한 전제가 있다. "국가로부터 독립되고, 그 경향, 정치적 색채 또는 세계관적 기본 입장에서 상호 경쟁하는 상대적 다수의 독자적인 신문제작물의 존재"가 그것이다. 곧 신문시장에서 여론 다양성이 보장되는 전제 아래서만 신문 발행인의 경향 설정권이 인정된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신문시장에서 여론 다양성 유지는 국가의 책무라는 것이다.

이는 2006년 6월29일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내린 신문법 결정에서도 확인된 내용이다. “신문기업의 경향보호라는 것을 청구인(조선일보와 동아일보)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신문의 독과점 또는 집중화현상과 경향보호가 결합할 경우 정치적 의견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체제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개별 신문기업이 각자의 경향보호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신문의 다양성 확보가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고 할 것이다. 신문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적절한 규율은 경향보호와 모순된다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신문의 공적 기능과 책임, 신문의 다양성 보장에 관련된 입법규율들이 그 자체로 경향보호에 위배된다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변호사 출신인 차 이사가 독일에서 신문에 적용되는 이런 논리를, 그것도 신문시장의 여론 다양성 보장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이런 논리를 한국의 방송에, 그것도 MBC노조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명백한 의도적 왜곡에 해당한다.

▲ 지난 8월11일 오전, 방문진 이사들이 임시 이사회를 준비하고 있다.ⓒ송선영

왜곡대로라면 KBS, SBS도 문제

아울러, 방송의 내적 언론 자유에 해당하는 편성권이 경영권의 일부로서 경영진의 권한이라는 주장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신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헌재는 2006년 6월29일 신문법 관련 결정에서 "(신문기업 내부에서 발행인과 편집종사자의 관계를 규율하는 이른바 ‘신문의 내적 자유’와 관련해) 편집의 자유에 대한 국가적․외부적 침해는 연혁적으로도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인정되었던 반면에, 발행인과 편집인의 관계에 관하여는 국내ㆍ외를 막론하고 이론상이나 실정법상 아직 그 법적 논의가 정리되지 않은 채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방송사 내부의 내적 언론 자유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는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자율적으로 구현하면 되는 문제에 해당한다. 그것은 결국 협의와 합의의 과정의 산물이다. KBS나 MBC, 그리고 SBS의 경우에도 편집의 자율성을 지켜내기 위해 보도국장 등에 대한 편집종사자들의 중간평가나 신임투표가 노사 합의로 제도화해온 것이다. 아울러, MBC가 운영하고 있는 노사 동수의 공정방송협의회가 인사권, 편성권 침해에 해당한다면, 이는 KBS나 SBS도 마찬가지다. KBS 역시 노사 동수의 공정방송위원회를, SBS도 노사 동수의 공정방송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방문진에서 한나라당 추천 이사들이 정치 공세 차원에서 펼치는 자의적인 인사권, 편성권 침해 논리에 대해 방송사 편집종사자들이 함께 대응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동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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