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선생이 홍익대에서도 강의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이에 우석훈 선생은 자기 블로그에 ‘보자보자 하니까 보자기’냐며 사보타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글을 올렸다.

이 기사를 보고 우려되는 점은 한 시간강사의 사상검증이라는 정치적 복선이다.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황지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공통점은? 표적감사 후 물갈이를 했다는 것이다. 적법한 감사였다고 주장하지만, 자기 입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감사하고 사퇴시키는 행위로 읽힌다. 다른 한편으로 자리가 기관장이기 때문에 자기 식구 챙기기 혹은 논공행상의 일환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마음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진중권 선생의 경우는? 자기 식구 시간강사 앉히기? 논공행상 때문이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진보논객의 축출로 이해된다. 한 인기강사의 퇴출을 보면서 걱정되는 것은 외압에 흔들리는 대학의 자율성이다. 연구내용이나 교수능력보다 정치적 성향이 더 중요한 잣대가 될 때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대학의 정신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엉뚱하게 돌아가는 시간강사의 오늘

▲ 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오마이뉴스 유성호
그런데 진중권 선생보다 더 우려되는 기사가 있다. 부산대, 고려대, 영남대 등에서 시간강사들이 대규모 해촉되었다. 해촉된 선생님들이 시위를 하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내면서 문제가 표면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각 대학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아서 그렇지,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시간강사들이 더 많을 것이다.

겉으로 보면 이번 사태는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의 시행여부를 놓고 올 초 여야는 논쟁을 벌였다. ‘100만 해고설’을 주장하며 법 시행 유예를 주장했던 노동부 장관의 ‘절규’와 국책연구소의 비정규직 해고라는 솔선수범에도 불구하고, 4월 국회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올 추경예산으로 1185억 원의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편성하였다.

물론 이 법에는 시간강사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일 뿐이며 본질은 이와 다르다. 일반적으로 노동계에선 정규직 노동조합보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설립과 활동이 더 힘들다. 그런데 대학의 경우 비정규직 교수노조는 합법화되었고, 전국교수노조는 법외단체로 활동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비정규직 보호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시간 강사 중에 박사학위자는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빠져버린 것이다.

물론 노동관계법을 통해서라도 시간강사 문제를 풀어보려 했다는 점은 어느 정도 평가를 해줘야겠다. 그러나 후속 조치들의 미비로 현실은 엉뚱하게 돌아가고 있다. 법해석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르면 박사학위자가 아닌 시간강사가 2년 이상 주 15시간 이상을 강의하는 경우 정규직 혹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한 대학에서 2년 이상 15학점 이상을 강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촉된 시간강사 과목에 수강신청까지 받은 것을 보면 15시간으로 해석했던 것 같다. 아니면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 보호법에 의해 밀려나는 시간강사들

그런데 2학기 개강을 앞두고 대학들이 2003년 비정규직 교수의 퇴직금 관련 소송의 계산법을 적용하면서 얘기가 180도로 바뀌었다. 당시 고등법원은 시간강사의 근로시간을 일반노동시간의 3배로 산정했다. 법원은 수업준비시간을 강의시간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에 근거할 경우 5시간 수업은 15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 따라서 2년 이상 3학점짜리 2과목 이상 가르친 박사학위자가 아닌 시간강사는 정규직 혹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각 대학은 부랴부랴 비정규직 보호법에 해당하는 시간강사들을 ‘예방차원’에서 해촉 통지해 버렸다.

대학 당국에서야 이런저런 이유를 말하겠지만 이처럼 대학이 성급한 조치를 취한 이유는 한마디로 비정규직법에 따라 비학위자를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때 생기는 재정부담을 미리 막자는 것이다. 대학이 내세우는 명분은 더 없이 절묘해 보인다. 박사학위자의 강의수가 줄어들어 역차별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연구실적이야 박사학위자가 더 많겠지만, 교수능력의 경우는 박사학위자가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리고 박사학위 시간강사가 겪는 현실적 어려움은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시간강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상황은 매우 기묘하게 변질된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의 본질은 ‘보따리 장사’로 회자되는 강사제도의 개선 문제인데, 이런 주장을 통해서 시간강사의 지위 개선 문제를 박사학위 강사와 비학위 강사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전환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16개에 이른다는 교수명칭은 일반 노동시장처럼 대학교수의 시장도 고용형태가 다양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학부제 등의 대학구조개혁, 시간강사를 줄이려는 노력, 다양한 교수층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등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교수의 개념에는 시간강사뿐만 아니라 일정한 기간을 계약하고 갱신해야 하는 교수들도 포함되어야 하겠다. 재임용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다시 시간강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약직 교수의 경우 재임용심사라는 최소한의 신분보장장치가 있다. 재임용심사가 부실할 경우 교원소총심사위원회나 행정법원을 통해서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 다만 학계가 좁은 마당인데다 신분이 불안정한 관계로 쉽게 구제신청을 할 수 없는 현실이 문제이다.

그러나 시간강사의 경우는 아예 구제책이 없다. 아마 유일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원거리 이동에 따른 시간표상의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일 게다. 강의가 선물로 여겨지는 풍토에서 시간강사가 강의 과목과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그래서 학기말과 초에는 시간강사에게 어디 어디에서 강의하느냐고 묻는 게 안부인사다. 어디가 아니라 어디 어디다. 비정규직 교수노조에 따르면 시간강의료는 주 4.2시간에 연 487.5만원이다. 생계를 위해선 한 대학의 강의로 부족하기 때문에 이 학교 저 학교로 강의를 다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강의를 하다 해촉통지를 받아도 호소할 방법이 없다.

▲ 한겨레 8월28일자 2면

국가적 차원의 대안이 요구돼야

그렇다면 출구는? 사실상 단기간의 해결책이 잘 안 보인다. 방법은 비정규직 교수들이 노조를 강화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투쟁하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운동의 출발점이 고등교육법 개정운동이다. 비정규직 교수노조는 박정희 정권 때 삭제한 시간강사의 교원지위를 복원시켜 달라고 지속적으로 투쟁해 왔다. 이것은 고등교육법의 개정으로 시간강사 문제가 충분하게 해결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간강사가 비정규직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것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제도개선에는 항상 예산이 필요하다. 개별대학에 강사제도 개선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큰 효과를 얻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시간강사 문제를 풀기위한 교육예산을 신규로 편성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복지예산도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교육예산만 보더라도 유아 및 초중등교육 관련예산이 부족하다. 이 마당에 시간강사제도 개선을 위해 예산을 배정해 달라는 요구가 얼마나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만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게 교육당국의 몫이 아닐까.

현재 국립대 법인화, 사학 법인의 영리사업 허용, 선발권 자유화 등의 일련의 조치를 통해 대학을 시장원리 맞춰 자율화하려는 움직임이 한참이다. 파이가 커져야 분배량이 늘어난다는 관점에서, 시간강사의 문제를 일련의 자율화 조치를 통한 재정확대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련의 자율화 조치는 대학 간, 지역 간 불균형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또 불균형에 따른 시간강사의 신분 또한 양극화 되리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결정적으로 일련의 자율화 조치들 속에 시간강사 문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결국 시간강사의 문제는 비정규직 선생님들이 계속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교수노조가 합법화되어 있지만, 대학의 각 주체 중에서 영향력이 제일 작다. 연구와 강의로 바쁘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국공립대학교수연합회, 한국사립대학교수연합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의 교수단체들이 고등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세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 운동의 방향은 개별대학의 협상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대안을 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철학으로 세상 읽기

모든 생명의 역동성이 자본에 의해 상품화되고 물신화되며 영혼 없는 죽은 생명들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시대의 혼’이자 ‘시대 모순의 반역’일 수밖에 없는 철학적 실천을 꿈꾸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창립 정신을 받아 우리는 이 시대에 철학적으로 개입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시대는 철학적 사유와 성찰, 탐색을 필요로 한다. ‘철학으로 세상 읽기’는 생명의 역동적 힘을 지배의 힘으로 바꾸어 놓으며 지배와 억압, 착취와 굴종을 낳는 이 세상을 철학적으로 사유함으로써 생명의 본래적인 힘과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사유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협력적 지성의 밑알이 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된 철학적인 시대 평론이다.

김원열(한양사이버대) 문성원(부산대) 박준영(한철연 회원) 박지용(동덕여대) 이병수(경남대) 이순웅(숭실대) 이정은(연세대) 전호근(민족의학연구소) 구태환(상지대) 우기동(경희대) 김광호(한철연 회원) 조경란(성공회대) 송석현(방송대) 박종성(건국대) 박영균(서울시립대) 등이 연재한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홈페이지 http://www.hanph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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