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9월 “그린벨트라도 풀어서 주택을 공급하고 싶다.”라는 말했다. 그러자 “서울 근교에는 말만 그린벨트이지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쓸모없는 땅으로 방치되어 있는 비닐벨트가 많다.”, “집 없는 사람에게는 그린벨트는 분노의 숲이다.”, “그린벨트는 성역일 수 없다”, “서울 도심서 25㎞내에 비닐벨트에 아파트를 대량공급하겠다.” 등등 장관들이 앞 다퉈 그린벨트 무용론을 늘어놓더니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그린벨트는 법률용어가 아니다. 개발제한구역을 편의상 그렇게 부르다보니 푸른 숲이 우거진 땅으로 오해가 생긴 것이다. 주무장관조차 그 뜻을 잘 모르니 무식한 소리인줄 모른다. 실제 지정 당시 임야는 58.89%이고 나머지는 농경지 27.9%, 대지 및 잡종지 13.6%였다. 개발제한구역은 지난 1971년부터 35개시, 35개군에 걸쳐 전국토의 5.5%에 해당하는 면적에 시행되어 왔다. 그 구역 안에서는 건축물의 건축,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등이 엄격히 규제된다. 그 까닭에 재산피해가 적지 않아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 서울신문 9월1일자 6면

개발제한구역의 주목적은 도시와 도시, 도시와 농촌 사이에 녹색의 완충지대를 설치해 도시의 무계획한 외연확장을 막아서 도시주변에 자연경관을 보존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시의 광역화로 인해 도시와 도시가 맞붙는 도시의 집합(conurbation)을 억제하자는 취지다. 녹지보존은 부차적이다. 서울의 확장과 그린벨트 파괴에 따른 위성도시의 팽창으로 말미암아 수도권은 서울을 중심축으로 거대도시(megacity)로 변모한다. 행정구역으로는 무슨 시, 무슨 시로 나눠지지만 서로 붙어 거대한 하나의 도시로 되어 가는 꼴이다.

수도권의 이상비대는 도시문제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킨다. 사건-사고가 대형화하고 각종 범죄도 날로 흉포화-지능화하고 있다. 교통, 주택, 급수, 취업, 공해, 교육, 물가 등등 그 밖의 도시문제가 날로 심각해져 여기서 발생하는 시회비용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교통문제만 보자. 88올림픽 당시 교통체증과 이에 따른 대기오염을 크게 걱정했다. 그해 12월말 전국차량대수가 200만대를 돌파했다. 지금은 서울 차량만도 300만대이다. 이러니 길을 아무리 내고 넓혀도 교통체증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주택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 이유로 도시의 집합을 억제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도입한 것이다.

그린벨트를 떠나서도 비닐하우스가 있다면 그곳은 농지다. 그린벨트가 아니라 비닐벨트니까 헐어내고 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개발제한구역의 근본취지를 모르는 소리다. 비닐하우스만 있는 쓸데없는 땅이라고 말하는데 농업의 가치를 무시하고 농업을 천시하는 발언이다. 농지도 농지법이 다른 용도로의 이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데 마구 헐어내도 되는가? 수도권에 사시사철 신선한 채소류를 공급하는 곳이 바로 이 비닐하우스이다. 식량자급률이 25%에 불과한 나라에서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망각하니 이런 소리를 예사로 안다.

전세파동이 나자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를 더욱 세게 밀어붙일 기세다. 왜 전세파동이 일어났는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지금 서울에서는 36개 뉴타운을 비롯해 247개 지역에서 재개발-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다. 전세공급은 한정되었는데 멀쩡한 집을 마구 헐어내니 전세수요가 폭발한 것이다. 폭등세를 보이는 전세파동이 진앙지인 서울 중심부를 벗어나 변두리로 변두리로 확산되더니 이제는 경기도 일원으로 파급되는 양상이다. 원주민을 쫓아내는 방식인 뉴타운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집권기간 내내 전세파동이 진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린벨트를 허물어 물량작전을 편들 돈이 없으면 집을 못 산다. 무계획한 물량폭탄이 집값 거품을 터트리면 금융위기를 촉발한다.

김대중 정권이 2002년 그린벨트 절단수술을 강행했다. 2020년까지 무려 342㎢를 풀기로 했는데 그 중 222㎢가 이미 해제된 상태다. 수도권은 124㎢ 중에서 98㎢가 풀렸다. 그 때 풀릴만한 지역은 모두 풀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2020년까지 최대 308.2㎢를 추가로 해제하기로 했다. 여의도(2.95㎢)의 104배에 해당하는 녹지를 없애겠다는 소리다. 여기에다 주택과 연구-산업단지를 짓겠다고 한다. 이것은 그린벨트에 내린 사망선고이다. 그린벨트를 회색지대로 만들면서 무슨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말인가? ‘고탄소 회색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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