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에 회오리바람, 아니 ‘총선거’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일본 전체가 정신적으로 초토화 된 느낌이다. 이번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119의석을 얻어, 308의석을 획득한 만년 야당이었던 민주당에게 54년 만에 제1당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를 두고 일본언론은 ‘역사적인 정권교체’라고 표현한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 언론은 이미 선거공시일(8월18일) 이전부터 이 같은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것이다. 선거일이 정해진 그 이튿날부터 일본언론은 각 지역 르포를 통해 유권자들의 지지성향을 분석했고, 거의 모든 언론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민주당 300석 획득가능성 높아’라고 일제히 해드라인을 뽑아 보도했다. 그리고 이 같은 예측은 민주당의 308석 획득으로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그렇다면 일본유권자들은 왜 1당 독재라고 규정될 때까지 변치 않고 지지했던 자민당으로부터 등을 돌렸을까? 그 해답을 7월 22일자 아사히신문 특집이 말해주고 있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각 분야의 유명인사들에게 ‘중의원해산에 어떤 명칭을 붙이면 좋겠는가’를 물었다. 가장 많이 나온 명칭이 ‘미안해’, ‘면목없다’, ‘자민당이 손들었다’, ‘얼굴 없는 해산’, ‘포기해산’이었다.

▲ 경향신문 9월1일자 5면

정확한 예측 조사로 정권 교체 예측

특히 자민당의 지략가로 전 간사장이었던 노장 노나카씨는 자민당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자포자기의 무력감에서 가능한 해산이다. 정치의 한 시기를 담당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허무하다. 자민당은 파벌정치의 한계가 왔다.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붕괴되어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자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또 은퇴도 자민당원으로서 끝맺음을 했던 노장 노나카씨가, 자신의 입으로 자민당이 붕괴되어 가고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저널리스트 우에스기씨는 “아소 수상이 자신의 실정과 지지추락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는 대국민 기자회견(7월21일)을 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회견이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타로 등 일련의 수상들은 ‘권력 투쟁에 익숙하지 않고, 인기에만 연연하는 약한 체질의 전형적인 세습2,3세 들’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계속 릴레이식으로 권력을 잡으면서 자민당의 약체화를 가속시켰다”고 우에스기씨는 아사히신문에서 비판했다.

그런가하면 우익성향의, 자민당의 대변지로까지 불리는 1천만부의 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아사히는 800만부)도 연속여론조사를 통해 자민당이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를 수치로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8월 4-6일에 실시한 중의원총선거 전국여론조사(전화방식)에서 투표예정 정당은 민주당 41%, 자민당 24%, 8월 7일 조사에서는 민주당 42%, 자민당 23%로 나왔다고 전했다.

수상에 적합한 인물비교에서도 민주당의 하토야마 대표가 47%(전회 40%), 아소 타로 수상이 22%(전회 22%)였다. 자민당 내각지지율도 69%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지지한다고 대답한 유권자는 21.6%에 불과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보도했다.

이쯤 되면 결과는 뻔하다. 총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일본언론에서는 정권교체를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했고, 8월 18일 선거공시일 이후에는 전국 각 지역 르포를 통해 유권자들의 의견을 채증하는 것으로 정권교체 검증(?) 기사를 내보냈다.

▲ 일본 요미우리 신문 웹사이트 메인페이지 캡처ⓒwww.yomiuri.co.jp

우익성향의 요미우리도 자민당 몰락 과정 다뤄

“홋카이도는 겨우 한 사람 정도 살아남을 것 같고, 관서 아래지방에는 3분의 2가 민주당 지지 입니다. 도쿄는 자민당 지지자들을 아예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선거 하루 전에 아사히신문 기자가 말한 내용이다.

결과는 일본언론이 예상한 그대로 나왔다. 하지만 비록 예상하기는 했지만 막상 개표가 시작되고 엄청난 차이로 민주당의 압승이 드러나자, 일본기자들도 지극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래도 ‘설마 설마’ 했는데 실제 상황이 된 것이다.

때문에 8월 30일 저녁 이후, 일본방송사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예정대로 NHK-TV와 민방들이 개표상황을 시시각각으로 생중계하기 시작했고, 페이퍼 신문들은 자민당과 민주당에 자사기자들을 단체로 투입하여, 당락에 따라 급변하는 의원들의 표정을 전하기에 바빴다.

그중 단연 돋보인 것이 방송사인 마이니치신문 계열의 TBS-TV와 TV 아사히. TBS는 실시간으로 이메일통신을 통해 자막으로 시청자들의 의견을 개표실황중계와 함께 그대로 전했고, 아사히신문 계열의 TV 아사히는 정치평론가와 현직 의원들을 대거 출연시켜, 시시각각 전해지는 개표중간결과 내용에 대한 분석과 토론을 병행하는 생방송을 내보냈다.

이번 일본의 총선거는 54년만의 ‘역사적인 정권교체’라는 화두를 던지며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켰지만, 하지만 선거전과는 달리 현재 일본언론은 예전의 언론기질로 돌아가 냉정기류로 돌아서고 있다.

바로 어제(31일)까지만 해도 ‘자민지배에 종지부(마이니치신문)’ ‘자민 55년째의 낙일(요미우리신문)’ ‘민주정권이행에 착수(아사히신문)’ ‘민주정권 착수(도쿄 신문)’ ‘민주, 정권이행에 착수(닛케이신문)’하는 내용으로 1면 톱뉴스를 장식하더니, 오늘(9월1일) 신문에서는 한 귀퉁이로 밀려났다.

▲ 한겨레신문 9월1일자 1면
냉정을 찾기 시작한 일본언론

아사히신문은 1면 중앙상단에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사진을 싣고, 민주당이 사민당과 국민신당 등에 연립타진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한편, 그 아래에는 ‘오자와 지배 경계도’라는 제목을 뽑아 앞으로 구성될 하토야마 신내각과 오자와 정당체제를 비교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오자와 민주당 대표대행은 이번 총선거에서 선거 전략의 귀재답게 자신이 낙점한 정치신인 후보자들을 대거 출마시켜, 1백명 이상을 당선시킨 ‘오자와 칠드런’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요미우리신문은 묘한 뉘앙스의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1면 전체에 걸쳐 민주당정권에 대한 특집기사로 도배를 하면서도 내용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우선 제목만 보더라도 ‘인사는 하토야마 한사람이 결정’한다고 톱뉴스로 뽑고, 그 옆 중앙에는 <다큐멘터리 정권교대>라는 란을 만들어 민주당과 자민당 본부의 표정을 전하는 것인데도, 제목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처럼 다소 부정적으로 ‘민주의 핵심 <국가전략국> 오자와씨 잘 몰라’라고 달았다. 내용 또한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와 오자와 대표대행의 발언을 비교 미묘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썼다.

한편 도쿄신문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선심성 경기부양인가 이념의 달성인가’ 라는 톱 제목을 달고, 민주당 정권 이후 일본국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지를 ‘안심의 실현이 키’라는 중간 제목으로, 민주당이 발표한 국민생활정책에 대한 실현 가능성 여부를 짚어보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이렇듯 이번 일본의 총선거에서 일본언론은 비교적 냉정하고 객관적이면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예측 보도를 했다. 아마도 이 같은 정확한 예측보도는, 기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유권자들의 체감온도를 정확히 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 정책, 인사, 리더쉽 검증 돌입

하지만 선거는 끝났다. 그런 만큼 일본언론의 태도도 선거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하루 만에 수권정당이 되어버린 민주당에 대한 보도의 톤이 눈에 띄게 엄격해지고 강해졌다. 하토야마 대표나 오자와, 오카다, 간 나오토 민주당 간부들에 대한 질문내용도, 과거에는 ‘가정법’ 상 부드러웠지만 이제는 추궁하듯 질문 톤도 강해졌다.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내용에 대한 질문을 할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육하원칙에 의해 언제 어디서 어떤 정책으로 어떻게 국민들을 위해 정치를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벌써부터 따지는 형태로 질문 톤이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언론은 벌써부터 민주당에 대한 정책, 인사, 리더쉽 등에 대한 검증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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