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간에서는 영화 ‘국가대표’를 좌파 코드로 점철된 영화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이가 변희재다.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그가 이 영화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한 글을 읽었는데, 뭐랄까, 나름의 입장에서 충실히 썼다는데 공감은 하지만, 각론에서 몇몇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변 씨는 자신의 글에서 ‘국가대표’를 한 마디로 국가의 체계를 위협하는 좌파적 코드로 점철된, 그런 터무니없고, 국가의 기강을 뒤엎을 수 있는, 그래서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봐서는 절대로 안 되는, 그 따위의 영화로 해석하엿다[그의 글 “군 면제 받기 위한 국가대표 선수들: 반국가, 반미, 계급갈등 조장 등, 곳곳에 좌파적 감성 배치”(빅뉴스, 2009.08.20)를 참조해보라]. “국가를 부정하고, 국가대표를 군대 면제용 정도로 인식하며, 아무런 스토리의 근거 없이 미국과 한국의 갈등을 조장하고, 끊임없이 계급갈등을 조장”하는 그런 영화로 말이다.

변 씨가 ‘국가대표’를 ‘좌파적 코드’의 영화로 결론지으며 내세웠던 전제가 바로 바로 위의 문장에 잘 드러나 있는데, 그의 글을 다시 논리적으로 배열해보고 난 후 이야기를 진행해보자.

전제1: 영화 ‘국가대표’는 국가를 부정한다.
전제2: 영화 ‘국가대표’는 국가대표를 군대 면제용 정도로 인식한다.
전제3: 영화 ‘국가대표’는 아무런 스토리의 근거 없이 미국과 한국의 갈등을 조장한다.
전제4: 영화 ‘국가대표’는 끊임없이 계급갈등을 조장한다.
결론: 고로, 영화 ‘국가대표’는 국가의 기강을 전복시키는 좌파적 영화다.

이 영화는 국가를 부정하는가? 글쎄…

현상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위해서는 그 현상을 일차원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최소한 이차원, 혹은 삼차원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열렬히 사귀던 커플이 있었는데, 하루는 여자가 남자한테 ‘우리 헤어져’라고 말한다. 일차원적으로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죽일년’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헤어져’라는 말 자체만 놓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차원, 삼차원으로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얘가 왜 이딴 말을 하지? 내가 뭐 잘못했나? 부모님하고 싸웠나?’ 식의 이해를 하려고 한다. 사실, 소통은 이처럼 이차원, 삼차원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할 때 가능한 것이다. 변 씨가 ‘국가대표’를 이해한 방식이 딱 일차원적이다. 그가 제시했던 전제를 중심으로 왜 그런지 살펴보자.

먼저, 그에 따르면, 영화 ‘국가대표’에서는 국가를 부정하는 말이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가령, 자기를 버린 엄마와 관련하여 “Fucking Korea”라고 하는 것이나, 한 웨이터가 “이 놈의 나라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라고 ‘지랄’한 거나. 이것으로 인해 그는 이 영화가 ‘국가를 부정하는’ 아주 못된 영화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언술을 이차원으로 해석해보면, 다 이유가 있다. 그건, 진짜 국가를 욕하는 것이 아닌 날 버린 엄마, 날 내팽개친 협회 등, 그런 미시적인 차원의 ‘비유법’이다. 국가? 그건 상징화 된 그 무엇이다. “Fucking Korea”라고 외친 것도 어떻게 보면 한국이 미워서가 아닌 날 버린 부모, 그리고 이제까지 날 찾지 않았던 내 부모에 대한 한 마디의 절규지, 그걸 ‘국가를 부정하는 그 무엇’으로 볼 것이 아니란 의미다. 대놓고 당사자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소위 ‘만만한’ 국가를 비유해 하는 말일 뿐, 그것이 무슨 국가를 부정하고, 나아가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그 무엇도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일 뿐이다.

국가대표를 군 면피용으로?

또한 변 씨는, 영화 ‘국가대표’의 마지막 스키점프를 앞두고 점프하지 않으려 하는 동생에게 “네가 안 뛰면 내가 군대 가야한단 말야”라고 외친 것을 “국가대표를 군 면제용으로만 인식”한다고 한탄한다. 그런데, 설마 영화를 안 본 것도 아니고, 그건 국가대표 면제용으로 국가대표를 인식하는 차원을 더 밀고 나가, “네가 안 뛰면 내가 군대를 간단 말이야. 그럼 우리 가족은 다 죽어, 임마!”의 차원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의 기승전결을 잘 파악했으면 나오면 안 될 말이다.

이 부분은 국가대표를 단지 군 면피용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돈도, 빽도 없는 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쓰는, 우리 사회의 88만원 세대 그 이하의 자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생존수단으로 생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서글퍼 해야 할 부분이지, 오해할 부분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선수들은 국가대표를 군 면피용으로 생각할까? 그것이 전부는 아닐망정, 그걸 염두에 두지 않는 선수는 단언컨대, 아무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남자는 더더욱 말이다. 선수들 잡고 네 목표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당연히 “국내 1등, 나아가 세계 1등”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국가대표 되는거다. 개인의 영광이자, 가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물어보라. “왜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지?” 여자는 몰라도, 남자는 ‘군 면제’가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군대를 가야할 이들에겐 말이다. 그렇다고 국가대표 되면 군 면제 되나? 그건 아니다. 조건이 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입상해야 한다. 그거, 쉬운 일 아니다. 그 힘든 일 하는데, 그깟 단서 좀 달면 안 될까?

보수파들이 자주 애용하는 스포츠의 국가주의적 담론 역시 같은 차원 아닐까? ‘그대들이 있어 행복했다’라는 문구는 다름 아닌 ‘조중동’이 지난 WBC 경기 후 헤드라인으로 내세운 거다. 그대들이 있어 사회정치적으로 침울했던 우리들은 행복했다인데, 그럼, 그에 대한 일말의 응당이라도 해주어야 하는거 아닌가? 웃긴 건, 거기서 군 면제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태도로 일관하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신해철의 노래처럼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이다.

변 씨는 마치, 국가대표를 하는 선수는 개인적 이해관계가 철저히 배제된 채 ‘운동만 하는 기계’여야만 한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사실 없지만, 변 씨같은 사람들 대부분은 바로 ‘국가대표는 국가의 녹을 먹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대표를 이해하는 건 조금 위험하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국가의 녹을 먹는 모든 공무원들은 개인사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왜? 인간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사상교육을 받은 인간일지라고 개인사, 특히 가족이나 사랑에 있어서는 국가의 그 무엇을 뛰어넘는다. 그게 바로 인간이고, 휴머니즘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대표를 관통하는 코드가 드러난다. 그건, 태극기도, 국가대표도 아닌, 바로 나와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혈육으로서의 ‘가족’이다. 가족주의가 가지는 부정적 측면이 있긴 한데, 정실주의로 발전하지 않는 한, 난 개인적으로 가족주의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사회처럼 사회보장이 미미한 곳에서 믿을 것은 ‘가족 뿐’이라는 심리가 결국 이러한 가족주의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걸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못할 것 아닌가? 국가를 탓해야지. 이 영화 역시 그러한 국가의 대척점에서 가족주의를 그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반미, 계급 갈등 조장?

변 씨는 이 영화에서 나타난 미국 국가대표팀과의 싸움을 ‘반미’코드로 해석한다. 한 마디로 ‘싸워야 할 이유가 없는데’ 싸웠다는 것이다. 그런가? 난 영화를 보면서 ‘저 대목에선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의 차이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싸워야 할 이유가 없이’ 싸운 것이 아닌, ‘싸워야 할 개인사적 이유’가 분명이 플롯 상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자신과 라이벌이었던 자가 다가와 이제는 한국국가대표가 된 주인공에게 ‘낼름’거리는데,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말이다.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국가대표니까 싸워서는 안 된다고? 물론 참아야하겠지만, 영화의 맥락상 그건 싸웠어야 한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국가대표들이 실제로 시합 가서도 사소한 싸움에서 큰 싸움에 이르기까지 소동을 벌이곤 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러한 ‘실재’가 이 영화에 잘 드러났던 것이다. 이걸 ‘반미’로 해석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기상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마지막 대표선수에게 뛰라고 명령하여 다리를 나가게 만든 일본 나가노 올림픽 조직위에겐 ‘반일’의 시선을 보낼 것인가?

변 씨의 또 다른 변. “왜 이 영화는 쓸데없이 계급갈등을 조장하는가?”이다. 주인공(하정우)의 어머니가 한 부잣집의 가정부로 있는데, 그 집 딸이 아주 망나니처럼 그 아줌마를 부려먹고, 못되게 군다. 그 장면을 가지고 ‘계급갈등 조장’이란 해석을 한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 많다. 그건, 영화가 ‘쓸데없이’ 허구를 조장한 것이 아닌, 소위 ‘가진 자’들이 -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 일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일상이란 것이다. 그런 ‘일상’을 ‘계급갈등’으로 몰고 가는 건, 글쎄 관점에 따라선 있을 수 있지만, 분명 오바다.

진짜로 말하고 싶은 건?

변 씨가 불편해하는 이유는 그렇다. 사회적으로 표면화 되면 보수진영에게 조금 불편한 일상의 사실들, 군대에 죽으라고 안 가려 하는 일반인들의 가장 평이한 사고방식이나 엄연히 존재하는 현재 우리사회의 ‘계급불평등’ 등의 사회문제가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

사실, 모든 이들, 특히 가진 자들은 군대 안 가려고 빽을 쓴다. 그게 지금 국민 대다수의 심리적 도식이다. 그런데 이런 도식이 전체적으로 표면화되면 안 되는 거다. 왜? 국가안보가 헤이해지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불륜을 꿈꾸고 희망하면서도 그것을 ‘나 불륜하고 싶어’라고 대놓고 말하면 안 되듯 말이다. 그건 일종의 ‘동의된 금기’다.

그러한 동의된 금기가 영화 ‘국가대표’에서 표면화되었기 때문에 변 씨와 같은 우파들이 불편해하는 것 아닐까?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지지부진한 이유 역시 이러한 ‘국가안보’의 정신이 헤이해질 수 있다는 잠재적 두려움 때문이다. 일전에 이러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자, 보수진영이 한 데 모여 소위 ‘촛불시위’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심리적 도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런 도식을 이 영화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은, 적어도 내 주변의 전통 보수파들(?)은 국가대표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과 내가 국가대표를 보고 나눈 토론의 주제는 바로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인가?"의 문제였다. 과연 이 영화를 통해 스키점프인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는 것인지, 아니면 적어도 다섯 명 밖에 그 등록인구가 없는 스키점프 선수들의 존립을 위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 열을 내야 하는가? 이 영화는 그러한 유치작업에 대한 합리화의 의도를 밑에 깔고 있는가? 등의 논쟁이었다. 최소한 영화가 말하는 기본플롯은 이해하고 논쟁을 하려는 자들이 바로 그런 '전통적인' 보수파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말이다.

변 씨의 입장은 그저, 튀고 싶어, 클릭수를 많이 만끽하고, 밑에 달리는 댓글에 희열을 느끼려는, 단순한 심리에서 시작된 듯 보인다. 최소한의, 국가적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어떠한 시도, 메커니즘, 영향력도 없을 그런 영화를 가지고 '좌파'라는 억지논리를 입히는 그런 시도는 앞으로 - 제 아무리 억지논리를 갖다 붙이더라도 - 지양해야 하는거 아니겠는가?

영화는 영화일 뿐

변 씨는 ‘국가대표’와 ‘우생순’이 스포츠영화가 아니라고 하는데, 맞다. 비록, 내가 영화평론가는 아니지만, 난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영화가 이처럼 ‘스포츠’, ‘음악’, ‘미술’ 등등, 몇몇 범주화로 회귀시켜 나눌 수 없다고 본다. 그 범주를 굳이 나누자면, 난 우리나라의 영화가 ‘한(恨)’의 영화냐, ‘락(樂)’의 영화냐로 봐야 한다고 본다.

왜 우리의 영화는 자꾸 패배자의 인생을 보여주냐고? 나도 그게 불만이다. 왜 자꾸 패배자의 인생, 그리고 슬픔을 안고 영화를 끝내는지. 그게 우리 문화고, 우리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한(限)의 정서를 담지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거북이 달린다’ 류의 영화를 선호한다. 깔끔하잖아? 선이 악을 이긴다는 영화. 이런 차원에서 영화 ‘매치 포인트’는 싫어한다. 악이 선을 이기는 그런 류의 영화. 참고로, 이 영화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는데, “그럼, 세상이 공평할 줄 아셨어요?”라고(분하지만, 인정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류의 영화 싫다고, 변 씨처럼 그렇게 불평하면 되겠나? 그냥 보고, ‘저렇게 끝나는구나’하고 시큰둥하게 넘어가야지. 요즘 유행하는 그런 말 있잖는가? “콩트는 콩트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고. 마찬가지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난 변 씨의 염려처럼 영화 ‘국가대표’가 천 만을 넘어 그 이상의 흥행을 거뒀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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