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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산업 선진화? 끔찍한 ‘선전’[김석의 미디어 책읽기(40)] 프로파간다 (에드워드 버네이스, 2009)
김석/KBS기자 | 승인 2009.08.17 10:44

1916년 ‘승리 없는 평화(peace without victory)’를 슬로건으로 반전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그때까지 반전 국가였던 미국을 전쟁에 참가시키기로 한다. 그러자 무엇보다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가하고 싶어 하지 않는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연방 선전 기관 ‘연방공보위원회(United States 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이 탄생했다. 조지 크릴(George Creel)이라는 인물이 이끄는 이 위원회는 국민을 선동해 호전적 애국주의에 광분하게 만드는 갖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위원회의 선전 전략은 적중했다. 반독일 정서가 하늘을 찔렀고, 반전 여론은 삽시간에 돌아섰다. 근엄한 표정의 엉클 샘이 마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로 너야!”하는 모습으로 군 입대를 종용하는 모병 포스터 한 장은 수많은 젊은이를 군대로 이끌었다. 히틀러조차도 감탄해마지 않은 결과였다.

   
  ▲ 1차 세계대전 모병 포스터  
 

바로 그 연방공보위원회의 중심인물이었던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가 이 책 <프로파간다>에서 설파한 논리를 아주 단순화해서 이해하면 이렇다. 민주사회에서 여론을 조직하는 사람들은 국가 권력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invisible government)’를 이룬다. 여론을 조직하고 이끄는 것은 설사 그 도구가 잘못 사용될 위험이 있을지라도 질서정연한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분야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달성하려면 선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대의 선전은 기업이나 사상 또는 집단과 대중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건을 새로 만들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끼워 맞추려는 일관된 노력이다. 대중은 선전을 통해 변화와 진보에 길들여진다.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생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현대적 도구라는 점을 직시한다. 이러한 선전을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활용해야 할 책무는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있다. 사회의 진보와 발전은 결국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소수 지식인들의 활발한 선전 활동에 달려 있다.

   
  ▲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버네이스는 선전을 과학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대중심리학의 학문적 성과를 발판으로 프로이트학파와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자양분을 흡수한 그는 베이컨과 피아노를 예로 들어 자신의 선전 심리학을 설파한다. 베이컨이 많이 팔리길 기대하는 보통의 업자라면 “베이컨을 많이 드세요. 가격 싸고, 몸에도 좋고, 여분의 에너지를 비축해줍니다. 베이컨 드세요.”라고 했겠지만, 새로운 업자는 이런 질문부터 던진다. “사람들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누굴까?” 의사들이다. 새로운 업자는 의사들을 찾아가 베이컨 섭취가 몸에 좋다는 얘기를 공개석상에서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람들이 의사에게 의지하려는 심리를 이용한 선전 전략인 셈이다. 피아노 역시 마찬가지다. 피아노의 가격과 성능, 내구성을 강조하는 직접적인 선전 문구는 다른 업체들의 주장과 직간접적으로 충돌한다. 대신 현대의 선전가는 ‘가정 음악실’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실내 장식가와 음악가, 건축가를 동원해 전시회와 음악회를 열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정 음악실이라는 개념을 심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사람들이 선전에 말려 피아노를 산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선택해 제품을 구입한 것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버네이스는 자신이 직접 증명해보인 이런 전략이 모든 분야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면서 “각성된 사익이 근거한 건전한 심리학이 새로운 선전(news propaganda)이라는 개념을 예고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런가하면 버네이스는 선전이 “보이지 않는 정부의 실행 부대”라면서 선전의 도구가 잘못 사용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하게 지적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부상자를 대충 다룬다는 비난에 직면한 후송 병원이 이름을 후송 ‘초소’로 바꾸자 비난 여론이 잠잠해졌다는 일화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추동하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잘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선전에 기만당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다고 믿지 않는 역설. 버네이스의 시대로부터 80여년이 흐른 지금, 달라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연일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도배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선전과 선전 아닌 것을 구별해 낼 재간이 없는 대중은 힘 있는 정부와 기업이 설파하는 교묘한 선전 논리를 곧이곧대로 쉽게 믿어버리고 만다. 소수의 지배 권력은 끊임없이 여론을 조작하고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념과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대중을 압박한다. 4대강 정비계획과 미디어 법 등 정부가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외곬으로 밀어붙인 핵심 정책들이 경제 살리기나 산업 선진화 따위로 그럴싸하게 포장되는 현실은 여론을 조작하고 길들이는 전략으로서의 선전이 작동하는 방식을 십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세월에 풍화되지 않는 고전(古典)의 힘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 프로파간다(에드워드 버네이스, 2009)  

“우리의 노력은 시종일관 교육적이고 유익했다. 쓸데없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간결하게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 점에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내내 조지 크릴의 위원회가 구사한 이 교묘한 이중 논리는 선전이 갖는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 까닭에 촘스키가 구루(guru), 정신적 스승이라 칭한 버네이스를 두고 세간의 평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한 쪽에선 그를 PR의 아버지, PR 산업의 선구자로 치켜세웠지만, 반대쪽에서는 정보조작의 아버지, 과대선전의 왕자, 선전의 교황, 민주주의의 암살자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책의 머리말을 쓴 마크 크리스핀 밀러 뉴욕대 교수는 “선전을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들조차 선전에 쉽게 넘어간다. 버네이스는 그러한 역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 역설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촘스키는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 또한 자명해진다.

김석/KBS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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