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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시민혁명의 결실을 거두자[윤석규의 공감정치]
윤석규 공감정치연구소 소장 | 승인 2016.12.30 10:05

한 해가 저문다. 우리 국민 모두 우리의 집단적 성취를 자랑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후일의 역사가들은 2016년을 시민혁명의 한 해로 기록할 것이다. 역사가 2016년 11월 만을 기억할 지라도 무릇 모든 혁명은 일회적이지 않다. 무수히 누적된 사건의 축적물이다. 연말 광화문을 채웠던 '이게 나라인가'라는 한탄은 이미 2014년 세월호의 참극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총선에서 뭇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야권이 승리한 것도 중요한 전조였다.

'재벌도 공범이다. 재벌도 구속하라'는 구호는 매우 놀랍다. 돌이켜보면 87년 6월 항쟁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자 6월 항쟁의 주역들은 항쟁의 에너지를 한국사회 개혁을 위한 힘으로 전환시키지 못했다. 정치적 주도권은 기성정당에 빼앗겨버렸다. 새 헌법을 만드는데도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변화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동자대투쟁이 이어지면서 노동운동이 성장했고, 노동자들의 삶이 크게 향상되긴 했지만. 이에 비해 2016년 시민혁명의 사회경제적 인식은 처음부터 분명하다.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 특권과 부패의 핵심에 재벌이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민혁명은 영원히 미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작금의 시민혁명은 선명한 사회경제적 인식에 비해 정치권력에 대한 성찰이 상대적으로 모호하다. 박근혜의 퇴진만을 되뇌고 있다. 물론 탄핵안의 헌재 판결이 남아있고, 헌재의 평소 행실로 볼 때 헌재가 민의를 배반할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지 못한다.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하도록 압박하는 일은 그것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의문은 박근혜 퇴진이 시민혁명의 최종목표가 아닐진대 궁극적으로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탄핵안 인용결정이 나오고, 60일 만에 후다닥 새 대통령을 뽑으면 정치권력의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까?

정치 영역에서 시민혁명의 최종 목표는 제2의 박근혜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박근혜를 낳은 권력구조와 정치체제를 바꾸고, 박근혜를 옹립한 수구기득권세력을 청산하는 일이다.  

연합뉴스

촛불이 켜질 때마다 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노랫말 삼은 노래를 불렀다. 2016년 시민혁명은 바로 이 국민주권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진정한 공화국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우리 국민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왕을 뽑은 것이 아니라 우두머리 일꾼을 뽑았을 뿐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어리석고 무능한 주제에 마치 제왕처럼 국민위에 군림했다. 비단 박근혜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대통령은 모두 엄청난 권력을 가진 제왕처럼 행동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유의 소탈함 때문에 종종 사람만 바뀌면 달라질 것이라는 착시를 일으킨다. 그러나 개인의 특성과 관계없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제도는 예외 없이 부패를 낳았고, 시장권력에 쉽게 포획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문제점을 잘 알게 된 노 대통령 스스로 제왕적 권력의 분산을 주장했다.    

공화국이란 왕을 죽이는 나라다. 프랑스 혁명의 주역인 프랑스 민중은 왕의 목을 쳤다. 유시민은 "우리 마음 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고 했다. 우리가 '신민'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되려면 우리 마음 속에 남아있는 왕을 죽여야 한다는 말이다. 혹시 지금의 왕을 몰아내고 다른 왕을 세우려 한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혁명은 왕이라는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혁명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상호 적대적인 양당제하에서는 서로 설득하고 합의하기 위한 토론이 큰 의미가 없다. 제대로 된 토론을 한 마디도 못하는 수첩공주도 얼마든지 정당의 리더가 될 수 있다.

다당제와 합의제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박근혜같은 정치지도자가 탄생할 수 없다.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신4당체제가 등장했다. 새누리당을 제외하면 야당이 200석이 넘는다. 여러 개혁입법을 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 87년 6월 항쟁 후에 성립한 4당체제가 실제로 많은 것을 이룬 선례가 있다. 그러나 단순다수제인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4당체제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독일식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는 진보와 경쟁 및 협력관계를 가지면 된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박근혜를 옹립한 수구세력은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하는 것이 옳다. 마치 전후 독일에서 나치세력에게 했던 것처럼. 그 대상은 새누리당, 재벌, 정치검찰, 보수언론, 안보상업주의 세력, 일부 사이비 지식인 등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권을 강제로 빼앗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이 연대해서 무력화시키면 된다. 새누리당을 탈당해 개혁보수신당을 결성한 비박계에 대한 일부의 가혹한 평가를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분노가 능사는 아니다.

시민혁명은 결국 개헌이든 입법이든 기존의 제도를 고치고, 새로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4.19 혁명의 실패를 논하면서 "정권의 옮겨짐이 있었을 뿐이지 그 정권 행사의 밑이 되는 제도를 바로 잡는데 이르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새해엔 할 일이 참 많다.

윤석규 공감정치연구소 소장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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