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진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사퇴를 놓고 “여당측 위원들이 ‘정치심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청와대가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박명진 전 방통심의위원장

방통심의위는 5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위원회 출범 후 1년여 동안 거의 과반에 달하는 위원들이 교체됨에 따라 위원회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박 위원장이) 지난 7월 31일자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5일 열린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서는 내부 파업과 위원들간의 불화 등 ‘조직 불안정에 대한 책임과 독단정 운영’을 이유로 발의된 불신임안이 찬성 5표, 반대 1표, 기권 1표로 가결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이후 개인적 이유 등을 들어 박천일·정종섭·박정호·김규칠 위원이 사퇴한 데 이어 박 전 위원장까지 사퇴함으로써 손태규 부위원장을 제외한 정부여당 추천 6인중 5인이 물갈이된 셈이다.

“위원장과 일한 경험 없는 ‘교체’ 위원들이 왜 불신임 찬성?”

이를 놓고 ‘내부 불협화음’과 별도로 박 전 위원장의 사퇴가 ‘청와대의 의중’이 실린 결정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방통심의위 관계자 A씨는 “최근 교체된 여당측 위원 4명은 활동한 지 적게는 1~2개월에서 최장 4개월밖에 안됐다. 박명진 위원장과 일해본 경험이 적은 이들이 ‘조직불안정과 독단적 운영’을 이유로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불신임안에 찬성한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이는 그들을 추천한 정부여당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 B씨도 “불신임안에서는 반대와 기권이 각각 1표씩 있었지만, ‘위원장을 그만두라’는 완곡한 표현인 재호선안에 대해서는 여당측 위원 전원이 찬성했다. 과연 위원들이 개인적 견해로 찬성표를 던졌겠느냐”라고 되물으며 박 전 위원장이 한차례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번복한 2월 상황을 거론했다. B씨는 “지난 2월 박 위원장이 임기를 2년3개월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을 때, 청와대는 곧바로 ‘후임인사를 결정하겠다’고 밝혔고 후임인사까지(이진강 전 대한변협 회장)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청와대도 언제든 사퇴를 받을 용의가 있었던 것”이라며 “당시부터 여당측 위원 6명을 모두 물갈이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이후 실제로 자의든 타의든 여당 위원들이 그만뒀다”고 밝혔다.

여야 비율이 6대3인 방통심의위는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에 대해 중징계인 ‘시청자 사과’ 조치를 결정하는 등 지난 1년간 ‘정치심의’ ‘편파심의’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정부여당으로선 여당측 위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가져왔다는 얘기다.

▲ 2008년 7월 16일, 방통심의위는 서울 목동 방송회관 19층 대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MBC 광우병 보도에 대해 중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 조치를 결정했다. ⓒ송선영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는 가장 낮은 수준의 법정 제재인 ‘주의’ 조치를 받은 MBC <100토론>의 ‘시청자 의견 조작’건이다. 보수성향 언론단체인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이 심의를 요청한 이 문제에 대해 당시 방통심의위는 제작진이 즉각 사과방송을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점 등을 감안해 합의를 통해 ‘주의’ 조치를 결정했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상식적 결정이었지만 정부여당이 보기엔 여당 위원들이 야당 위원들에 휘둘린 것으로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회의에서 대통령 몫으로 추천된 전용진 위원(박정호 위원 교체·정보통신연구진흥원 지재권 센터장)은 합의 직전까지 중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끝까지 버티려했던 위원장…청와대 사퇴종용 가능성”

또, 방통심의위가 5일 보도자료를 통해 “7월 31일자로 박 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힌 것과 달리 박 전 위원장은 불신임안이 상정된 5일 전체회의에서 사퇴 의사를 전혀 내비치지 않았으며 끝까지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박 위원장이 만약 7월 31일 사표를 제출했다면 (사표가 제출된 이후인) 5일 전체회의에서 불신임안이 상정됐겠느냐. 심의위원들은 박 위원장의 사표 제출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위원장은 끝까지 버티려했으나 (청와대로부터) 사퇴를 종용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박 위원장이 진짜로 7월 31일 사표를 제출했다면 모욕적인 불신임안이 상정되기 전에 조용히 사퇴했을 것”이라며 “박 위원장은 위원장직을 유지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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