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국 한나라당 미디어특위장 ⓒ여의도통신
“협상 차원에서 상황 논리에 말려들었다. 자괴감이 든다. 앞으로 다가올 콘텐츠 시대를 한국이 이끌어 갈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지난 6년간 정말 많은 토론과 논의를 거쳤다. 그런데 왜 정치적인 논리로 바뀌어야 하느냐. 당초 원안이 지고지선한 것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많은 전문가 의견에 해외 사례까지 고려해 최선의 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수정안이 실질적인 투자와 참여를 유도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의 주인공이 누군고 하니, 정병국 의원이다.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병국 의원은 한나라당 미디어법 최종안에 대해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래도 법적 장벽은 허문 것 아니냐”라며 아쉬움을 달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미디어법’ 하면 생각나는 인물을 꼽아보라. 아마도 나경원 의원이 앞서 떠오를 것이다. 또는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날치기 당시 총대를 멘 나 의원이니 그럴 듯도 하다. 그러나 작년 12월 한나라당이 7대 미디어관련법 개정안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 중심에는 늘 정병국 의원이 있었더랬다.

미디어법으로 당 내 탄탄대로 걷던 정병국

한나라당에는 ‘미디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약칭 미디어특위)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조직의 위원장 역시 정병국 의원이었다. 그리고 미디어특위에서는 지난 12월 3일 이윽고 ‘신문법’ ‘방송법’ ‘IPTV법’ ‘언론중재법’ ‘정보통신망법’ ‘전파법’ ‘디지털전환법’ 등 이렇게 7대 미디어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기에 이른다. 물론 발의하면서 연내 처리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했다. 주요한 법안에 대한 한나라당 내 대단한 권위의 자리에 있었던 이가 정병국 의원이었단 말이다.

이것이 작년 12월 상황이다. 법률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도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정병국 의원이었다. 때문에 정 의원은 전국언론노조와 미디어행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선정한 ‘언론5적’ 중 단연 1순위를 기록했다.

▲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주최로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언론장악법 반대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한나라당 언론장악 7대 악법의 주범', '언론장악 5대 주역'으로 선정한 나경원, 정병국, 홍준표, 고흥길, 진성호 의원의 사진을 들고 이들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여의도통신
수많은 TV와 라디오 인터뷰에서의 섭외 1순위 역시 정 의원이었던 것은 당연지사. 그는 MBC <100분토론>에 나와 “그동안 매체간 막혀있던 칸막이는 필요 없게 됐다. 변화하는 시대흐름에 맞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한나라당을 대표해서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탄탄대로를 걸어오던 정병국 의원 앞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월.

한나라당의 ‘7대 미디어 법안’이 전 국민적인 반대여론에 부딪힌 것. 그리고 국회 본회의장 역시 민주당과 야당에 먼저 빼앗겨버렸고 끝내 한나라당이 주장한 ‘연내처리’는 불발됐다. 정병국 의원 무산된 즉시 “2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당내에서는 이미 정병국 의원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전면에 나섰던 것만큼 도마에 오르는 것 역시 한 순간. 그때부터였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관련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정병국 추락과 동시, 새로이 등장한 ‘나경원’과 ‘고흥길’

미디어법 관련 새로운 인물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소속 고흥길 문방위원장과 나경원 의원이 그들이다. 고 위원장은 2월 임시국회 당시 자신이 맡고 있는 상임위에서 미디어법안을 직권상정해버렸다. “미디어법 등 22개 법안을…”이라며 ‘상정합니다’라는 말도 없이 그리고 법안명칭도 읽지 않고 기습적으로. 그렇게 미디어법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한 고흥길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직권상정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며 미디어법 본회의 처리를 진전시켜나가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다.

▲ 25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흥길 위원장이 "국회법 제77조에 의해 방송법 등 22개 법안을 일괄상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의사봉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여의도통신
물론 미디어법이 6월 임시국회로 회기가 넘어갔지만 정병국 의원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돋보이는 활약임엔 틀림없다. 이때부터 그러니까 미디어법을 6월 임시국회로 넘기면서부터 정 의원이 미디어법 전면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6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 내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는 나경원 의원. 그는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로써 전면에 등장한다. 지난해 12월 정 의원에게 가려져 있던 것을 상기해보면 2월 임시국회와 6월 임시국회로 넘어오면서 미디어법 관련한 당내 입지를 넓혀온 측면이 강하다. 나 의원은 대화 협상 기한을 못 박으며 ‘직권상정’을 들이대 야당을 협상테이블에 앉게 만드는 활약을 보였다. 물론 한나라당은 무엇이 못마땅했는지 22일 이 또한 일방적인 ‘협상파기’ 선언과 동시에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고 날치기해버렸는지는 진정(?)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7월 22일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미디어법은 그야말로 날치기 당했다. 여기에서 정병국 의원은 찬성이란 ‘표를 던지는 것’으로의 역할에 만족해야만 했다. 정작 미디어법의 판을 깐 장본인이 정 의원이라고 본다면 참으로 초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미디어법 손 뗀(?) 정병국 의원을 찾아서~

그렇다면 현재 정 의원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보니 정병국 의원은 ‘서민행복한나라추진본부’ 위원장으로 계신다. 그야말로 듣보잡 본부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그냥 ‘한직’일 뿐이다. 아직 활약이 미약할 뿐 아니라 ‘한나라당에서 서민이란 이름을 달고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어떤 서민정책을 펼 것인지에 대해 ‘홍보’하는 본부의 장으로 가 있었더라면 한직이라고까지는 생각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정병국 의원은 ‘왜’, ‘진정’ 미디어법 1선에서 물러나야했는가.

익명 처리를 요구한 모 정당 관계자는 “정병국 의원이 너무 무리하게 과잉 충성해 지상파 방송까지 깡그리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무리수를 두었기 때문에 아웃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중동에게 필요한 것은 지상파 방송보다는 종편이기 때문에 이것이라도 우선적으로 빨리 처리해줬어야 하는데 ‘지상파까지’라는 과욕을 부렸다는 말이다. 덧붙여 이 소식통에 따르면 “이후 청와대는 나경원 의원과 고흥길 위원장에게 다이렉트로 미디어법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정당 소식통은 단지 ‘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그 소문에 대한 정황상 근거들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21일 민주당과의 마지막 협상에 등장한 한나라당 의원은 나경원 의원과 고흥길 위원장이었다. 나경원 의원은 둘째 치고 전문가 커터로 고흥길 위원장이 등장한 것은 의외라는 평가다.

또한 <경향신문>은 23일자 기사에서 “마지막 협상에서 사전규제 장치로 ‘구독점유율 17%로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중앙·조선도 꼭 들어가야 한다’며 강력 반발”한 사람이 고흥길 문방위원장(중앙일보 출신)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한나라당의 본회의 날치기 통과는 조중동에게 방송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 7월 23일자 경향신문 6면 '청기획, 한나라 연출, 조중동 출신 의원들 '총대'' 기사 중
실제로 이번 국회에서 날치기된 법안은 정병국 의원이 제기했던 7대 미디어법안과는 큰 차이가 있다.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빠진 것을 물론, ‘딱’ 대기업과 신문 그리고 외국자본이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에 진입할 수 있는 법안들만 통과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정병국 의원이 미디어법안에서 손을 떼고 한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는 조중동에게 ‘팽’ 당해서란 말인가?

또 그렇다면 나경원 의원과 고흥길 위원장 역시 안심할 단계는 아닌 듯. ‘재투표’와 ‘대리투표’ 논란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 여부에 따라 또 다음 회기로 넘어가면 조중동의 방송진출이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또 그렇다면 정병국 의원의 사례는 양심을 버리고 누구의 등에 타 위로 좀더 오래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고자 애쓰는 정치인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는지.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한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언론이 독과점으로 가서는 안된다. 지상파 자체도 독과점으로 인해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문과 같이 겸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2007년 12월 <평화방송>에서 정병국 의원의 발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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