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의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디어법 관련하여 방송3사 모두 민주당의 움직임을 앞서 전하고 있다. 장외투쟁에 돌입한 민주당 관련 소식을 전하고, 한나라당의 대응을 전하는 식이다. 비록, 예고된 것일지라도 한나라당이 당황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잃은 상황은 몇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직권상정은 상상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리수였다. 한나라당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마땅한 일이라고 할 극렬 지지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지지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최대한의 무리수인 직권상정을 하고 강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내야 했던, 최소한도 해내지 못하는 오합지졸의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훼손시키지 말았어야 할 것들까지 난도질했다. 일사부재의 원칙이 깨졌고, 사사오입 수준의 부정투표가 자행됐다. 그리곤 오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정국 주도권을 되찾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고? 간단하다. 아둔하기 때문이다.

흔한, 표현으로 '당정청'이라고 쓴다. 누가 뭐래도 정국을 주도해 갈수 있는, 가는 주체들이다. 오늘(27일) 아침 당정청이 움직임을 보면 그야말로 한심스럽다. 뭐에 홀린 듯 지독한 반복 뿐이다.

먼저, 정이다. 오늘 오전 7시 30분 경찰은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자택에서 긴급체포했다. 별다른 과정을 밟지 않고, 곧장 체포했다. 촛불도, 미네르바 때도 정부는 경찰을 앞세워 줄곧 울고 싶은 사람 뺨을 치는 극악한 짓을 통치란 이름으로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아마도 최상재 위원장에게 국회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적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곧이어 청이 바톤을 넘겨받았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있었다. 20회 특집으로 KBS 민경욱 앵커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당일 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특유의 뜬구름 잡는 화법으로 현안에 뭉게구름만 피워댔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당이다.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은 오늘 오전 있었던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당을 싸잡아 구시대정치의 퇴행적 유물로 비하했다. 반 경제세력으로 칭하며, 재야세력의 볼모라는 표현까지 사용하였다. 어차피 회군할 수밖에 없을 테니 한나라당은 민생의 바다로 몸을 던지자고 했다.

아시다시피 미디어법의 후폭풍 정국이다. 폭풍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두렵다. 다만, 두려움에 맞서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 당정청의 모습은 두려움에 영혼을 잠식당한 부잡스러움 그 자체이다. 잠식된 영혼의 단면이 며칠도 안 되어 몽땅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아예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허장성세의 우왕좌왕이 또 시작됐다.

▲ 중앙일보 7월 25일자 35면 김상택 만평.

상황을 며칠 전으로 돌려보자. 미디어법이 날치기 되자마자 조중동은 미디어법을 묻었다. 오늘자(27일) 신문에서 아예 미디어법을 지워버린 조선일보나 7월 25일자 중앙일보 김상택 만평을 보면 조중동의 전략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렇게 조중동 특혜 논란을 묻었고, 과정의 적법성을 묻었고, 내용의 정당함을 묻었다. 직권상정을 종용할 때도 그랬지만, 직권상정 이후에도 일사 분란했다.

한나라당이 아둔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미디어법 날치기를 여러 층위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정치적 운명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날치기를 통해 비로소 정권과 조중동이 완연한 운명공동체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생각보다 훨씬 단순 무식하여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간단하게 뜻하는 바를 이룬 조중동의 입장에서 이제 이번 정권의 부침은 큰 의미가 없다. 여론의 손실을 최소화하며, 그럭저럭 해야 할 일들만 하며, 시간이 흐르기만 하면 그 뿐이다. 가뜩이나 모든 것이 무효화 될 지도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서 절대, 사고를 치면 안 된다.

그런데, 어쩌랴? 날치기의 안도감이 채 복부에도 미치기도 전인 오늘 벌써 동시다발로 사고를 쳐대고 있다. 최상재 위원장을 긴급체포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래가지고는 조중동의 바램대로 미디어법을 프레임 밖에 묻을 도리가 없다. 검경이 얼마나 언론노조를 개코로 보고, 미디어법 처리에 반대하는 다수를 우습게 여기는지만 백일하에 우스워질 뿐이다. 당장에 현업 언론인의 상징과도 같은 이를 체포하며 공안의 이미지가 한층 강렬해졌고, 여론의 다양성과 미디어 산업의 성장을 위한다는 그나마의 선전마저 언론장악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게 생겼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수 있는데, 그 이유마저 세계가 어쩌구저쩌구, IT산업이 발전을 많이 했네 하는 수준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아예 발언을 않는 편이 나았다. 단언하건데, 대통령은 미디어법을 잘 모른다. 둘러댈 것 없다. 오늘 라디오 연설은 대놓고 '나는 잘 몰라요'를 고백하는 자리였을 뿐이었다. 각론을 모르니 총론을 말하고, 의미를 모르니 추상으로 퉁 친 것이다.

장광근 사무총장의 발언은 결정적이다. 한나라당이 세상만사를 인식하는 방법과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지역구에 나가보니 민주당 비난여론이 다수라고 했다. 그가 누굴 만났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는 것이야말로 전세대가 가장 혐오하는 꼰대가 세상을 해석하는 아전인수의 전형이다. 덧붙여 이제는 민생을 살려야 할 때라고 했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덧붙이며 '극렬 재야세력의 볼모'라는 표현으로 반대세력 전체를 싸잡았다. 섬뜩하기만 한 진부한 레토릭이다. 한 마디로 한심하다. 깔끔한 외모에, 한나라당내 전략가로 일컬어지는 장광근 사무총장의 세계관이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재야세력!'에서 구르고 있다.

정국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조중동의 전략은 나름 치밀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미 몇 개의 카드를 던져보기도 했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사태를 연착륙시키기 위한 과정도 무리없이 진행시키고 있다. 문제는 기관사이다. 당정청 말이다. 성난 멧돼지만큼 거칠고, 쓰나미처럼 난폭하다. 당황하면, 내 편 네 편 가리지 못하고 일단 들이받고 덮쳐버린다. 미디어법이 날치기되는 장면을 보며 누군가의 가슴들에 맺힌 멍울만큼은 아니겠지만, 조중동의 속내에도 쓰린 한 모금의 신물은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조중동이 정국주도권을 되찾아 줄 요량을 고민하는 사이를 못 참고 당정청이 합심하여 정국을 더욱 벼랑으로 끌어내렸다. 이 정부는 양껏 밀어주기엔 너무 무식하고, 그렇다고 통제하기엔 너무 막무가내인 세력이라고 쓰고 싶지만... 한나라당과 함께 하기에 그들은 너무 무능력하고 솔직히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 외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뵌다고 다그치려니 너무 큰 걸 받았다. 닥치고 가만히 있으려니 남은 3년 6개월이 너무 길어 보인다. 서늘하게 돌아보면, 막상 받긴 받았는데, 언제 도착할지 과연 쓸 수나 있을 런지 확실한 계산이 서는 것도 아니다. 지상파 가입은 유예되었고, 종편에 진출하며 태워버리기엔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의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그러 길래 묵시록은 함부로 고치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에 촛불이 일지는 않을 테고, 휴가인파 역시 줄어들지 않을 테지만, 운명을 합쳤다고 하여 예정된 멸망의 역사가 뒤바뀔 런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요행에 기대 운명을 뒤엎은 자들에게, 닥칠 시험이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으로 가혹하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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