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지켜보면서 가자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국무총리 대행체제는 헌법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으니 무시하고 가긴 어려운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각은 무심하다. 그만 두는 국무위원 하나 없다.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가결됐어도 내각은 무관하다는 모양새다.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황교안, 너도 나가!’라고 한목소리로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저마다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사안인데다, ‘너도 안 돼’가 국무총리에서 끝난다는 보장도 없는 게 아니냐는 불확실성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한다. 아무리 대통령제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가결은 내각에 대한 불신임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무겁게 느끼며 국정 공백을 없게 하겠다는 식의 어떠한 언급도 황교안 대행체제는 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국무총리 자체가 법무부장관 시절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물타기 하고 방해했던 것을 포함해 현 정권이 이렇게 망가지는 과정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인사이기도 하다. 야권이 그를 향해 ‘너도 물러나!’라는 말을 겨우 억누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이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요 국무위원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렇다고 해도, 시민들의 반응을 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는 식의 야권의 태도는 온당하지 않아 보인다. 먼저 어떻게 풀어갈지 원칙과 방향을 정하여 시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국민 주권의 원리에 따라 유일하게 정당성과 권위를 가진 기관은 주권자를 대의하는 국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 특히 국회의장과 야권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타당하다. 핵심은 ‘정당성의 정치’이며 내용은 이렇다.

첫째, 황교안 대행체제는 정당성이 취약하고 매우 결핍돼 있다. (탄핵 가결에 따른 대행체제라는) 절차적 정당성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황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내용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둘째,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대한민국에는 대통령과 국회가 있는데,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의 심대한 위반으로 탄핵소추를 당했고, 국회만이 유일하게 정당성과 권위를 갖춘 기관으로 남았다. 국회가 대행체제의 정당성 결핍을 보완할 수밖에 없다.

셋째,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탄핵 심판을 기대하며, 그때까지 국회의장과 여야 정당 대표, 국무총리의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국정을 한시적으로 운영해 가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의 즉각 사퇴와 새 대표의 선출에 들어가야 한다.

넷째, 정당성의 보완이 이뤄지지 않은 채 대행체제가 국내외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려 할 경우 국회는 중대한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헌재의 탄핵 결정 이후 대행체제는 선거관리 내각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야권 각자가 이와 비슷한 단편적인 얘기를 찔끔찔끔 꺼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대통령 탄핵을 가결시킨 핵심 주체로서 향후 정국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시민과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정국 수습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탄핵소추 결정 때까지 보였던 ‘눈치보기’는 이제 끝낼 필요가 있다. 직무정지 되기 직전 대통령은 마지막 인사를 통해 특검 수사와 헌재 심판에서 자신을 보위해줄 인물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는 야권의 모습을 계속 보는 건 이제 식상하다. 지금은 황교안 대행체제에 제자리를 잡아주는 정치력과 주도권을 발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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