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부를 찍겠다고 하셨습니다. 협상시한 연장은 무의미하다 하셨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찌되었건, 모든 협상과 논의가 법안 통과를 전제호 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담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까? 국회의 공전과 파행, 심화되는 갈등을 막기위해 '직권상정'을 선택하면 공전과 파행이 사라지고 갈등이 순화될까요?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아실텝니다. 민주당은 '직권상정'하면 의원직 총사퇴를 공언했습니다. 국회 안에 머물던 공전, 파행, 갈등은 사회 전체로 확대 심화될 것입니다. 의장님의 선택 이후에 말입니다.

미디어관계법 그 중 방송법의 요체가 '기존 세력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세력이 진출할 수 있도록 얼마나, 어떻게 진입장벽을 낮출 것인가'의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의장님의 그 한 마디에 왜 더 협상을 해야 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야 하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중재안까지 제출하셨다던 의장님조차 미디어 관계법을 잘 모릅니다. 의장님의 시각은 미디어의 다양한 속성 중 산업적 측면에 대해 약간 이해하고 나머지는 정파적 특수 관계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의장님은 국회가 극단적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나무랐지만, 의장님 역시 그 굴레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아 보입니다.

여야가 '6월 임시국회 표결처리'를 약속했다는 의장님의 말씀 역시 다분히 치우쳐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6월 임시국회 표결처리에 이르는 숱한 과정상에 문제는 차치하고 오로지 결구에 해당하는 한 문장만으로 모든 것을 덮겠다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최우선적으로 배격해야 하는 원리인 다수의 횡포를 옹호하는 태도입니다.

▲ 김형오 국회의장 ⓒ민중의소리
외롭고 불가피하다고 하셨습니다. 여야 강경파에게 책임을 물으며 동시에 고유 권한으로 논쟁을 종결시키려니 무참하다고도 하셨습니다. 흔한 말로 '비겁한 변명'입니다. 외롭지 않으셔도 됩니다. 불가피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의회 민주주의의 원리를 훼손하지 않으시려거든, 여야 온건파가 여야 강경파를 더 설득할 수 있도록, 다소 껄끄럽더라도 여야 강경파가 서로를 충분히 탐색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 의장님의 역할이 있다면 계속 자리를 펴는 겁니다. 한나라당 강경파와 박근혜 안의 중재 정도로 자리를 펼만큼 펴봤다는 착각을 버리시는 겁니다.

저 역시 단언합니다. 불과 몇 년 후 이 논쟁과 대치를 돌이켜보면, 얼마나 우매하고 편향적인 논의였는지 부끄러워질 텝니다. 다분히 근시안적인 미디어의 산업적 구분과 속성을 지렛대로 삼아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미디어의 다양성을 소수 신문 사주에게 넘기려 했던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었는지 성찰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부디, 오늘을 무사히 넘기십시오. 알게 모르게 의장님을 향해 진행되어 왔을 강도 높은 압박의 정도가 얼마나 개인을 외롭게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겠지만, 헤어려볼 수 있겠다도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로가 되시면 안 됩니다. 의장님은 그저 의사봉을 두드릴 수 있는 볼모 일 뿐입니다. 무엇을 꿈꾸시고, 또 어느 자리에 갈지 모르지만 오늘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한다면 개인의 명예는 물론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오점으로 남게 되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여야가 저 나름의 이해관계로 설령 국회를 풍비박산으로 만든다고 해도 태산처럼 위엄을 지켜 섣부른 행동을 삼가시길 당부 드립니다.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지평이 보입니다. 생각 여하에 따라 협의와 합의라고 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새로운 징표를 향해 디딤돌을 놓는 지평적 제안을 내놓으실 수도 있겠다도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제가 첩첩이고, 남북관계의 경색이 가파릅니다. 산적한 현안을 두고 오로지 미디어 법에만 매달리는 국회의 모습을 한 번 더 준엄하게 나무라십시오. 우선 미디어 법부터 처리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국회를 섣불리 정상화시키겠다는 망상을 접으시고, 그냥 그대로 두십시오. 외람된 말씀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의장님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권한에 대해 훗날 의장님은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습니다. 의장님은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고, 질책을 감당할 자격이 되지도 않습니다. 부디, 책임지지 못할 일을 저지르고 보는 시간을 맞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하 김형오 국회의장 성명 전문

저는 오늘 미디어 관계법을 국회법 절차에 따라 본회의 표결에 부치려 합니다. 더 이상의 협상시간 연장은 무의미해졌고, 이제는 미디어법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할 때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미디어 관계법이 우리 사회에서 논의된 지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여야에게는 충분한 협상과 타협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관계법이 국회에 제출된 후에도 지난 7개월여 동안 제대로 된 논의 한번 못한 채 극단적 자기주장에 얽매어 결국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습니다. 끊임 없이 협상을 종용했고, 인내를 갖고 합의를 기다렸으며, 중재안까지 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의 협상시간은 국회의 공전과 파행을 연장하고, 갈등을 심화 증폭시키는 것 외엔 의미를 부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디어 관계법 그 중 방송법은, 기존 세력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세력이 진출할 수 있도록 얼마나, 어떻게 진입장벽을 낮출 것인가가 요체입니다. 또한 이것이 우리 사회 도처에 있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새롭게 진출하려는 세력 간의 갈등을 푸는 핵심이며, 방송법은 그 시금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하고 조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우리 국회는 극단적 이해관계자들의 대변자처럼 되었기 때문에 한 치의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미디어관계법은 마냥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또한 여야는 지난 3월 미디어법에 대해 '6월 임시국회 표결처리'를 국민 앞에 약속했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의장으로서는 국회의원의 절대과반 이상이 처리를 요구하는 법안을 법절차에 따라 표결에 부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의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외롭고 불가피하게 내리게 된 오늘의 결단에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책임을 지겠습니다. 국민의 질책을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우리 정치권이 이런 문제 하나조차 해결하지 못해 입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결국엔 국회의장이 나서서 의장의 고유권한으로 논쟁을 종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상황이 참담하기만 합니다.

높고 통 큰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여야의 지도부, 개별적 헌법기관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의정에 임하지 못한 국회의원, 그리고 양심에 따른 소신을 관철하지 못한 온건파 모두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특히 협상을 진전시킬 수 없도록 몰아간 여야의 소수 강경파는 이 사태를 유발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단언합니다. 불과 몇 년 후 오늘의 이 논쟁과 대치를 돌이켜 보면, 얼마나 부질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수준에 우리가 매몰돼 있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미디어산업의 눈부신 발전과 국제적 경쟁 현실에 조금이라도 눈을 돌린다면 이처럼 소모적 논쟁에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회의 표결에 부칠 법안은 4건으로, 미디어관계법 3건(방송법, 신문법, IPTV법)은 지난 3월 심사기간이 이미 지정되었던 것입니다. 그 중 방송법은 의회 다수파의 최대 양보안을 수정안으로 해 처리하겠습니다. 금융업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규제완화안을 담은 금융지주회사법은 정무위원회에서 수정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법안을 부의토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야는 표결 직전 최후의 순간까지도 협상의 끈을 놓지 말기를 거듭 촉구합니다. 그러나 결국 여야가 한발짝씩도 물러서지 못해 타협을 이루지 못한다면 표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재차 밝힙니다.

안보와 경제 위기 등 산적한 국가적 현안 속에 수재마저 겹쳐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국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또다시 보여드리게 되어 한없이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리 국회를 정상화시키고 끝없이 계속되는 소모적 논쟁을 종결하기 위해, 결코 바라지 않았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이런 조치를 부득이하게 내리게 된 점 널리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2009년 7월 22일
국회의장 김형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