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사설을 통해 드디어 촛불시위와 관련해서 "순수"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박근혜가 4월 퇴진을 약속해도 시위가 계속되면 그건 순수한 시위대라 볼 수 없다면서. 2일자 사설 <朴 대통령 '4월 퇴진' 표명하면 국가 위기 고비 넘는다>의 한 대목을 읽어 보시라.

"이제 여당에서 퇴진 당론이 확정된 만큼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움직일 수 없는 일이 됐다...(중략)... 그래도 야당은 공격할 것이고 촛불 시위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시위와 공격은 더 이상 순수한 시민들의 평화적 항의라고 보기 어렵다.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해 대통령이 하야하겠다는데도 멈추지 않는다면 다른 뜻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朴 대통령 '4월 퇴진' 표명하면 국가 위기 고비 넘는다> 중에서)

조만간 박근혜가 언론사 간부들을 불러서 런치타임 형식으로 4차 성명을 준비 중이라는 루머가 떠돌고 있는 와중에 나온 조선일보의 때 아닌 "순수" 타령은 자못 의미심장한 바가 있다. 그것은 박근혜의 4월 퇴진과 연관시켜 그 전의 촛불시위와 그 후의 촛불시위를 '순수와 불순'으로 분리·대립·차별대응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시각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촛불시위는 어느 정도 평가해 줄 수가 있다고 한다. 박근혜의 죄상을 추궁하고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일정량 공헌을 했으므로. 그러나 거기까지다. 박근혜가 4월 퇴진을 약속하면 촛불은 즉시 멈춰야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박근혜 탄핵을 외치고 즉각 퇴진을 요구한다면 그때부터 촛불은 불순한 목적을 가진 폭도들로 매도될 수 있다.

요컨대 촛불은 청와대 바깥에서 타올라 퇴진 협박을 위한 분위기 잡는 것으로만 그쳐야 한다는 논리, 정치권력을 논하는 건 국회에 맡겨야 하고 촛불이 그 선을 넘는 순간 불순한 시위대로 볼 수밖에 없다는 그런 논리다. 조선일보 논리대로 하면, 촛불은 군불때기용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박근혜가 4월 퇴진을 약속하는 순간 그 용도가 다 했으므로 촛불은 더 이상 켜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문을 발표한 29일 밤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철조노조 조합원들과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열고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것은 촛불 입장에서 바꿔 말하면, 시쳇말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온 국민이 11월 12월 그 추운 겨울바람을 이겨내며 한마음으로 촛불을 든 것이 결국 박근혜의 4월 명예퇴진을 위한 것이었던가. 아니, 박근혜와 더불어 청산되어야 마땅한 정치인들과 거기에 부역한 부패언론에 이 나라의 앞날을 맡기자고 그렇게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촛불을 흔들어댔던가.

순수와 불순의 조합은 이전에도 여러 번 차용된 적이 있다. 조선일보는 불의한 권력에 맞선 광주시민을 "불순한 폭도"로 몰았다. 세월호 시위를 가로막을 때도 "순수한 유가족" 운운하며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른 이가 청와대 대변인이었다. 이 모양 순수는 언제나 권력자의 것이었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언제나 불순한 것으로 매도되기 일쑤였다. 기억하는가. 촛불정국에서 담화를 거듭할 때마다 박근혜의 입에서 의미 없이 계속 새어나온 '순수'란 단어를.

이제는 되찾아야 한다. 순수는 국민의 몫이고 불순은 불의한 권력과 언론의 것이다. 그것이 순수와 불순의 올바른 자리매김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것이 헌법의 준엄한 명령이다. 조선일보에게 경고한다. 국민의 권리를 가로채지 말라. 국민이 높이 쳐든 촛불을 이용해서 권력을 농단하려 들지 말라.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단순 명료하다. 박근혜의 즉각 퇴진, 그걸 거부하면 탄핵하는 것이다. 범죄자에게는 '명예로운 퇴진'이 아니라 '법대로 심판'이 어울린다. 4월 퇴진론은 새누리 친박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부패언론들의 야합에서 나온 헛소리일 뿐, 결코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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