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꼭 거쳐가야 할 관문 같은 소설이다. 수업시간에 교수는 1964년 10월 ‘사상계’에 이 소설을 발표한 후 김승옥이 마치 무림의 절대 고수가 된 것처럼 말했다. 거기에 77년 ‘이상문학상’을 만들때 김승옥을 초대 수상자로 만들기 위해 ‘서울의 달빛 0장’을 쓰게 했다는 말까지 더해지면 그의 존재는 더욱 더 높아졌다. 때문에 그의 전설은 후배작가들에게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다.

공지영이 ‘도가니’를 쓰면서 ‘무진기행’을 오마주(영화 등에서 특정 작품의 장면을 차용함으로써 그 감독에의 경외심을 표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한 것은 너무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런데 교수도 우리에게 ‘무진’(霧津)이라는 지명은 실제 지명이 아니라 상상의 공간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안개나라’라는 이 기막힌 상상 속에 도시는 소설의 사유공간을 확장시켜 독자들의 감동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무진이라는 도시가 어딜까를 생각하게 됐다. 당연히 가장 물망에 오르는 도시는 김승옥의 고향인 순천이다. 바닷가라는 것도 순천만의 안개를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에 가서 처음 살았던 ‘톈진’(天津)에 살았는데, 안개와 나루라는 공통점 때문에 톈진이 무진 같다는 동일시를 무척이나 많이 했다. 실제로 중국서 알아주는 안개 도시는 충칭(重慶)이다. 충칭은 ‘안개도시’(霧都)로 불릴 만큼 안개가 많다. 창지앙과 지아링지앙이 만나는 만큼 물이 많고, 분지에 가까운데다, 몇 년 전에는 산샤댐으로 유속까지 거의 사라졌으니 안개도시라는 명성에 더 맞는 도시가 됐다.

사실 사람들이 어떤 도시에 특징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동일시를 통해 자신과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고향을 떠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살아야하는 처지라면 그 땅에 정을 붙이기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도시이든 이야기든 이미지든 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공지영은 장애인 학교의 비리 문제를 다른 소설을 쓰면서 이 ‘무진기행’이라는 액자를 쓴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일반인들과 거리가 있는 그 공간의 음습함을 다룰 때 안개처럼 적당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내릴 지하철역을 지나쳐 버릴 수 있다는 조바심이 들만큼 몰두하게 했다. 교사생활을 하다가 사업을 시작해 실패한 강인호에게 어느 날 아내가 무진(霧津)시에 있는 장애인 학교인 자애학교에 교사 자리를 말한다. 가족과 떨어진다는 염려 속에서 무진에 내려온다. 학교에 간 인호는 이 학교가 이사장과 아들인 교장, 행정실장 등의 왕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살과 알 수 없는 폭력이 꼬리를 문다.

그러던 중 장애는 있지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연두를 통해 교장의 성폭력이 알려지고, 자애학교의 추악한 실체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이 실체에 가장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이는 인호의 대학 선배이며 한때 자신과 감정이 있었던 서유진이다. 유진은 정치가인 남편과 이혼하고 장애아인 아이를 키우면서 무진시에서 시민인권센터를 이끄는 실천가다. 언론의 도움으로 이 사건은 세상에 폭로되지만 안개처럼 짙게 쌓인 무진시와 권력의 커넥션으로 한계에 부딪혀가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자신의 개인사까지 드러나 가족들에게까지 오해를 산다.

소설은 어떻든 상식적인 결론이 나온다. 사실 이 나라에서 지역권력과 검찰, 경찰, 지자체, 교육청, 교회 등의 썩은 커넥션에 도전하는 것은 계란에 바위치기라는 것은 아직까지 불문가지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후 그녀가 천착한 르뽀식 소설의 전형을 이룬 작품이다. 책 후반 ‘작가의 말’에서 썼듯 이 소설은 신문기사에서 본 작은 장면을 통해 시작된다. 범죄자들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순간 법정에는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기사다.

장애인들에게 비명을 불러일으키는 그 절망이 무엇인지에서 작가의 상상을 시작된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번거하게 그런 일에 내가 뛰어들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쉽사리 시작할 수도 끝맺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소설 속 강인호처럼 공지영은 이 사건을 취재했고, 구성해서 소설로 상자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액자로 껴 넣어 이미지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또 강인호와 서유진의 감정 흐름도 넣어서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또 소설 안에 등장하는 장경사를 비롯한 인물들은 ‘무진기행’에서 만나는 인간 군상처럼 뭔가 감춰져 있고, 은폐하려는 본성들이 잘 살려져 있다. 때문에 지명뿐만 아니라 소설 전반에서 김승옥 소설에 빚지고 있다.

이번 소설에도 그녀는 문단의 평가쯤은 무시한건 지 문학적 완성도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그녀 특유의 문체나 스타일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소설의 문학적 성취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문체나 고고한 스타일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이 실천을 동반해야한다는 의미는 어느 소설보다 잘 지킨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길항적 삶을 실천하고 싶어 <미디어오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97년 DJ가 당선되고나자 자유로워지고 싶어 여행잡지로 전직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못해서 이 잡지가 망해서, 다른 잡다한 신문일들을 하다가 99년 9월 결혼과 더불어 중국으로 건너갔다. 학업과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중국에 적응했다. 2002년부터 '알짜배기 세계여행 중국'을 시작으로 10여권의 중국 관련서를 썼지만 언제나 내 책을 만들기 위해 잘린 나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조만간에 좀 미안함이 덜할 책을 한권 낼 계획이다. 2004년부터는 중국 전문 여행 콘텐츠 회사인 '대국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서 운영중이다. 올부터는 한신대에서 외래교수로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 있다. 한중 교류에 줏대를 세워주는 '한중 문화 하이웨이'라는 막연한 구상을 현실화 시키는데 정신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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