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금요일 OCN <직장연애사> 2부의 한장면이다.

케이블이 등장하며 여성들은 몰랐던 세계를 하나 접했다. 바로 성인물이다.

아무리 케이블이라도 해도 방송이니 그 수위는 낮겠지만 밤12시 이후 TV만 틀면 성인물이 나오기 시작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남성들이 무엇을 보는지 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는 환호와 이러다가 여성들까지 포르노물에 길들여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앞섰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주 지상파 방송사의 밤 12시 이후 편성표를 보라. 월 KBS2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 화 MBC 프라임 <2007 현장체험 수학여행을 떠나요>, 수 SBS 미래한국리포트 <어떤 대통령을 원하십니까?>, 목 KBS2 <낭독의 발견>, 금 KBS1 <영상앨범 산>이다.

늘 저런 식이다. 왜 교양은 저렇게 한밤중에 쌓아야 하는가? 이런 반감이 들지 않는가? 그리하여 여성들도 리모콘을 케이블로 돌렸다.

대신 케이블 성인물 감상에는 도덕적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걸 덜기 위해 두가지 전제를 세웠다. '잠시 청소년과 어린이 걱정은 접어두자. 밤 11시 이후에 방송되니 성인들도 볼권리를 좀 누려보자'와 '지상파와 케이블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이다.

그렇게 마음의 짐을 덜고 나니 한결 보기가 편해졌다. 역시 소득이 있었다. '성인물=애로비디오=포르노'라고 여겼던 여성들은 그 안에도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성에 관한 표현에 엄격한 제한이 있는 지상파 방송과 비교하면 한결 자유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가끔은 어지간한 폭력물 보다는 청소년들에게 '덜' 유해할 것 같은 성인물들도 있다.

OCN이 9일 첫방송을 시작한 <직장연애사> 8부작은 케이블 성인드라마의 진화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감독이 MBC <남자셋 여자셋>, <세친구>, OCN <가족연애사>, OCN <가족연애사2>를 만든 김성덕 PD라는 것에서도 어느정도 예감할 수 있다.

2부 '그녀는 남자를 가지고 노는 마녀'편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한 여자의 두가지 면을 보여준다는 방식까지는 익숙하지만 1인 2역이 아니라 2인 1역이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어느새 다른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목소리도 비슷해서 나중에는 같은 인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밖에도 성인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계속 깬다. 타이틀곡은 가수 성아의 '환상동화'를 써서 현대적인 느낌을 살렸다. 영상도 밝고 화면전개도 무척 빠르다.

카메라도 다양하게 사용한다. 특히 회의실 장면이나 여주인공을 관찰하는 장면 등은 기존 드라마들 보다 훨씬 세련된 느낌을 줬다. 출연진들이 대부분 낯선 얼굴이지만 연기가 자연스럽다.

성인물이니 만큼 노출장면이나 키스씬, 섹스씬, 노골적인 대사도 많았지만 코믹한 분위기로 연출해 대부분 웃으면서 넘어가게 만들었다. 가족과는 함께 못 봐도 친구들이랑 같이 볼 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는 된다.

주인공들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목소리만 나오는 인물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도 흥미롭다. 이를 통해 여주인공의 심리를 읽게 만들고, 마치 시청자와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줄거리는 섹시함으로 직장 동료 남성들을 파멸로 이끄는 여주인공의 만행을 공개하려는 사방위(사내연애방지위원회. 국외 또는 국내에서 회사 기강 및 정보유출을 막기위하여 비밀리에 조직되어 활동하는 사례가 종종 있음)와 그녀를 보호하려는 남자 직원들간의 소동을 담았다.

<직장연애사>의 관련 기사를 보니 아직까지는 여주인공들의 섹시미에만 집중하고 있다. 언론이 이제 드라마 비평에 대한 대상을 좀 더 넓혀도 될 듯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