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감옥’으로 번역된 ‘panopticon’. 그리스어로 ‘pan’는 ‘모두’, ‘opticon'은 ’본다‘는 뜻이다. 원형감옥은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이 1791년 죄수를 교화할 목적으로 설계했다. 중앙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그 주위를 동그랗게 돌며 층층이 감방을 짓는다. 감시탑은 어둡게, 감방은 밝게 만들어 간수는 죄수의 모든 행동을 한 눈에 볼 수 있되 죄수는 간수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죄수가 늘 감시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해 스스로 감시하도록 한다는 원리다.

1975년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가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그 감시체제가 규범사회의 기본원리로 바뀌었다고 지적해 주목을 받았다.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현대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 원형감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민인식고유번호를 가진 나라라 모든 개인정보의 중앙집중적 집적이 용이하다.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학교, 고향, 성적, 성품, 교우, 가족, 재산, 군역, 병력, 신용, 직장, 차종 등등 모든 개인정보를 알 수 있다. 수사목적으로 전자우편도 열람했다니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안다.

▲ 6월 22일 열린 '이명박 정부 표현의 자유 침해 실태 발표 기자회견'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위해 상자를 쓰고 온 참석자들. ⓒ나난
국세청은 어디서 몇만원을 벌었는지 안다. 인별-가구별로 부동산 소유실태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 경찰청은 모든 전과사실을 안다. 시도교육청은 재학생-졸업생의 생활기록부를 수록하고 있다. 금융전산망은 오늘 얼마를 인출-예탁하는지 보고 있다. 해외여행도 다 기록되어 있다. 옥외활동은 CCTV, GSP, 출입증, 통행증이 기록하고 휴대전화는 위치를 추적한다. 컴퓨터를 뒤지면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다 말해준다. 신용카드는 어디서 무엇을 사고 먹었는지 어디서 버스나 지하철을 몇시에 타고 내렸는지까지 알려준다.

정보기술 발달에 따라 개인정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침해되고 있다. 인터넷 해킹 또는 내부자의 누출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공개되어 사회문제가 되곤 한다. 은행, 병원, 신용카드, 백화점 등의 상업적 자료는 물론이고 의료보험, 차적 등 정부소관의 자료도 유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도청-감청장치와 비디오, 오디오를 통해서도 사생활이 감시당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공공적-상업적 목적으로 집적된 개인정보가 본인이 모르는 사이 범죄 등 다른 목적으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이제 개인정보는 국경을 넘어 테이터베이스 마케팅을 이용한 국제조직에 의해 거래된다. 미국 아틀란타에 본부를 둔 ‘초이스포인트’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라틴 아메리카 10개국 주민 수천만명의 개인정보를 미국 정부기관에 판매해 온 사실이 2003년 AP통신에 의해 폭로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 까닭인지 미국 영사가 비자를 신청한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인적 배경을 훤히 알고 있어 놀랐다고 한다.

당시 멕시코에서 6,500만명의 전체 선거인 명부와 600만명의 차량등록부를 입수했고 이것을 미국 연방 법무부에 6,700만 달러에 매각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정부가 이 자료를 가지고 2006년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시끄러웠다. 여기에는 주소, 여권번호, 미등록 전화번호도 들어 있었다. 니카라과 정부는 자국민의 은행계좌, 부채잔고, 주택등기 등 사적 기밀을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콜롬비아에서는 전국 유권자 3,000만명의 선거인 명부를 통째로 매입한 혐의를 받았다.

이 회사는 1997년 보험회사에 신용정보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출발해 60개의 정보수집회사를 인수하며 급성장했다. 개인과 기업에 관한 170억개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7,000개의 연방, 주정부, 법집행기관을 포함해 10만 고객에게 정보를 공급한다. 소장한 개인정보 규모가 2억2,000만명에 관한 250조 바이트나 된다. 경영진은 주로 전직 정보기관 고위간부 출신이며 민간기업과 정부기관의 고용인력에 대한 인사검증도 수행한다. 더러 개인정보를 왜곡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공급해 말썽을 빚는다.

이명박 정부가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감청을 확대하고 모든 국민의 통화내역과 인터넷 이용기록을 보관하도록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판에 주요기관에 대한 DDoS(서비스분산거부) 공격이 무방비상태에서 자행됐다.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다. 정치권력-경제권력이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얼굴을 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파괴하고 그것을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한다. 현대인간은 한낱 유리알에 갇힌 빨가벗은 군상으로 전락했나?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