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와 스웨덴 / 언론과 언론 / FTA ‘타결’ vs ‘미타결’ => 상반된 팩트 나눠갖기

분명 정부는 한·EU FTA 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하였다. 유럽을 순방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마지막 방문국이었던 스웨덴에서 19차 라디오 인터넷 연설을 통해 “다행스럽게도 몇 개 나라의 반대로 오래 끓어왔던 한·EU FTA가 합의점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EU의장국인 스웨덴 총리와 정상회담을 통해서 합의 내용을 확인하고, 협상의 종결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헌데 스웨덴 레인펠트 총리는 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런 종류의 협정을 완결 짓기 위해서는 다른EU 국가들과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코 ‘타결’은 아니라는 명확한 메세지를 남긴 것이다.

분명 엇갈렸다. 그런데 언론들은 지면 등에서 일제히 ‘타결’을 선언하였다. 정치적 입장을 가릴 것 없었다. 조중동은 한·EU FTA의 장밋빛 미래를 선전했고,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한·EU FTA의 문제점과 독소조항에 주목하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타결은 기정사실화 됐다.

▲ 조선일보 7월13일자 1면

바로 이때였다. 한·EU FTA 자체에 대한 평가와 협상 내용의 질적 평가와는 무관, 무색하게 일부 인터넷언론을 비롯하여 블로거들 사이에서 ‘타결이냐’ ‘미타결이냐’를 두고 팩트 경쟁이 14일 오전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스웨덴 기업 에릭손의 15억달러 투자 결정에 대한 청와대의 ‘김칫국’ 들이 마시기까지 더해지면서 유럽 순방에서 이 대통령이 보인 ‘설레발’이 그야말로 설레발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게으른 건지 무능력한 건지 자기들 마음대로 한·EU FTA를 타결시켜버린 언론들은 ‘희대의 웃음거리’ ‘국제적 망신’ 등으로 비난받고 있다.

한·EU FTA 타결에 대한 ‘사실’ 논쟁이 점차 확산되자, 16일자 경향신문과 한겨레에서는 정부가 최종 타결 없이 타결을 발표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경제외교 거짓 홍보 의심받는 이명박 정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에릭손 투자 건과 한·EU FTA 타결 선언에 대한 정부에 대해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라고 힐난했다.

▲ 한겨레(위), 경향신문(아래) 7월16일자

경향신문 제목처럼 한·EU FTA를 둘러싼 ‘온도차’가 드러났다. 차이가 나지 말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팩트'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과 EU가 입장이 달리하고, FTA 타결됐다는 언론과 그렇지 않다는 언론들의 간극도 크다. 특히, 블로거들은 모든 것에 싸늘하다. 논란이 격화되자 외교통상부는 “정부가 무리하게 한·EU FTA 협상 타결을 발표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며, 한·EU FTA 협상이 타결된 것에 대해 한국과 EU간의 이견은 없다”고 16일 밝혔다.

KBS, MBC, SBS 한 목소리 “한·EU FTA가 타결되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정부는 한미 FTA때 그랬던 것처럼, 타결이 되거나 말거나 한·EU FTA에 대한 일방적 선전의 물량공세를 쏟아내고 있다. 언론이 이러한 정부의 홍보를 고스란히 받아쓰기 하고 있다는 점도 같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 뉴스가 꿈쩍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지난 13일, 그러니까 정부가 한·EU FTA 타결 발표 이후부터 15일까지 KBS, MBC, SBS의 메인뉴스를 살펴보면 한EU FTA가 우리 삶에 미칠 영향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다.

▲ 7월13일 KBS, MBC, SBS 메인뉴스 캡처(상단으로부터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KBS와 MBC의 경우 13일, 한·EU FTA가 타결되었다는 정부 발표에 맞춰 헤드라인 뉴스로 각 3꼭지, 2꼭지로 뉴스를 전하였다. 그리고 이후 EU와의 FTA에 대한 이렇다 할 리포트를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설명한 괴담에 가까운 ‘타결’과 이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13일 당일 MBC <뉴스데스크>의 경우 와인, 돼지고기, BMW 등의 가격이 떨어진다고 소개하면서 “우리 경쟁력이 취약한 부분에 대한 지원책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면피용 멘트만 있을 뿐이다. 11일, 12일에는 “오는 13일, 유럽을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EU의장국인 스웨덴을 방문할 때 타결 선언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EU FTA 체결의 가장 큰 효과는 세계 최대 시장을 확보했다는 겁니다” 등으로 타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듯 보도했다.

KBS 역시 다르지 않았다. 11일에는 유럽에서 한·EU FTA 타결을 위해 ‘노력’하는 이 대통령의 행보를 고스란히 전달하였고, 한국의 홀로 타결 발표가 있기 하루 전인 12일에는 EU와의 FTA체결이 갖는 의미를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이제 한국은 세계자유무역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습니다”라 전하였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권인 유럽대륙과 미국, 양측을 잇는 아시아의 자유무역 거점으로 성장할 발판이 마련됩니다.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입니다. FTA를 추진한 지 불과 10년여 만에 이뤄낸 성과입니다. 이제 한국이 세계적인 FTA 흐름의 주류로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이는 보호무역주의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향후 우리나라가 세계 곳곳으로 시장을 넓혀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이 같은 한국경제의 위상 변화는 우리의 국가 신인도와 한미 FTA 비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도무지 한·EU FTA의 문제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꼭 해야 하는 협상일 뿐이다.

결국 KBS는 13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은 한·EU FTA 타결로 세계 최대 단일시장의 높은 문턱을 없애 우리 경제의 새로운 출구를 확보한 것을 이번 유럽 순방의 성과로 꼽았습니다”라며 타결에 열을 올렸고, “이번 FTA 타결로 자동차와 IT, 가전업계는 표정이 무척 밝아졌습니다. 장기적으로 GDP, 일자리 증가도 기대됩니다”라고 전망하였다. 물론 MBC와 마찬가지로 ‘득’아닌 ‘실’도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특히 양돈업계의 막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한 꼭지로 구성, 보도하였다.

SBS도 흡사하다. 11일과 12일 한·EU FTA가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보도하였고, 특히 12일에는 “한국과 유럽연합 간의 FTA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습니다”라며 한·EU FTA 타결을 정부보다도 일찍 ‘선언’하였다. 13일에는 정부의 타결 발표에 힘이어 4개의 꼭지로 타결 소식과 관련한 뉴스를 전하였다. 뉴스의 구성은 KBS, MBC와 거의 흡사하다. 다만 한미 FTA, 한일 FTA, 한중 FTA를 비롯하여 호주, 뉴질랜드, 걸프국 등 동시 다발적 FTA까지 추진한다면 “아시아의 FTA 허브”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하였다. 이후 14일에는 “한·EU FTA 타결로 동유럽 여러 국가가 새로이 잠재력 있는 미래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동유럽 시장을 점검까지 하고 나섰다.

대동소이하다. 한·EU FTA를 둘러싸고 KBC, MBC, SBS는 유럽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의 뒤를 좇고, 한·EU FTA 타결에 ‘초점’을 맞추며 ‘실’도 있지만 ‘득’도 적잖이 많다고 선전하였다. 한·EU FTA의 독소조항, 매끄럽지 않은 정부의 타결과정 등에 대해서는 죄다 빠져 있을 뿐이다.

한·EU FTA 타결(?)에 호들갑떠는 언론

이 대통령은, 그러니까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벤트’에 공을 들여왔다. 좋게 말해 ‘서프라이즈’한 ‘이벤트’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전시행정’ ‘포장정치’다. 하여간 이명박 서울시장은 ‘하이서울 페스티벌’이 개막하는 날, 초록 색 ‘서울광장’을 오픈하였고(서울광장 개장식 때 동물원에서 호랑이, 캥거루, 원숭이, 사슴 등이 초대되기도 하였다), 청계천을 복원 이벤트로는 ‘스프링’, 그러니까 청계과장 ‘소라탑’ 제작으로 35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였다. 이 대통령은 시장을 찾아가서 ‘떡볶이’도 먹고, 모내기 하는 논에 가서는 ‘막걸리’도 먹는다. 그리고 이번 유럽 순방 때는 한·EU FTA 타결이라는 ‘성과’를 손에 쥐고 싶었던 모양이다. 헌데 여론은 절대 유리하지 않다. 다만 ‘언론’만이 이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한·EU FTA 타결이라는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독소조항은 물론, FTA에 대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영향력과 이로 인한 ‘실’은 단순히 와인, 명품가방, 유럽 자동차의 값이 살짝 떨어진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 기업들이 관세 문턱 조금 낮춰진다고 소매가격까지 내린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언론이 나서 한EU FTA를 타결하고 나선 호들갑은 물론, 이 대통령의 ‘설레발’에 “영광인 줄 알아, 이것들아~”라며 떠들어대는 보도가 그저 한심할 뿐이고… 시종일관 FTA 찬양론을 외치는 조중동은 그렇다 치고, 비상식적인 정부정책에 칼날 세우고 감시 견제를 하던 MBC 뉴스 역시 한·EU FTA 앞에서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려 먹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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