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 사회과학 동아리의 학술부장을 했다. 1학년을 지도한 책임이 생긴 나는 각 분야별로 읽을 필독서의 목록을 만들었다. 동아리 후배 가운데는 이공대쪽도 있었지만 나는 그 후배들이 ‘전문인’도 좋지만 교양인이 되어주길 원했다.

그 필독서 가운데 C.W 밀즈의 ‘파워 엘리트’도 있었다. 밀즈는 이 저작을 통해 미국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자본과 군부, 정부관료 삼각동맹을 꼬집었다. 물론 이 저작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다지 틀리지 않은 말이다. 물론 자본 속에는 월스트리트의 오만한 금융쟁이들로 버전업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세미나 도중에 후배 최헌이 미국에 대한 비판에 빈정상했는지 반발을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최헌이 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많은 이들이 미국을 비판하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 현 대통령이 미국에 완전 ‘몰빵’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여전히 세계적인 군사강국인 미국을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미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정권의 미국에 대한 ‘몰빵’이 한없이 두렵다. 하나는 미국에 대한 ‘몰빵’으로 빈정이 상할 중국이나 러시아의 관계가 있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를 속칭 ‘시다바리’로 생각하는 미국에 이용당할 이 땅의 미래가 무섭기 때문이다.

중국은 MB가 취임한 후 순방국이 미국에 이은 두 번째가 아니라, 일본에까지 밀려 세 번째였다는 것도 빈정상했고, 이전보다 격이 낮아진 대사 파견에도 빈정상했다. 외무부장관을 했던 홍순영이나 외교안보수석비서관(임명시 차관급, 현 장관급)을 지낸 김하중과 달리 현 신정승 대사는 그 아래 급인데다 중국어도 능통하지 않다. 이 결과 중국은 겉으로 말하지 않지만 이미 우리나라에 많이 빈정이 상해있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우리나라에 보복조치를 한다면 버틸 방법이 있을까. 중국은 대외 교역에 있어서 이미 상대적 우위 정도가 아닌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에게 한국은 충분조건 정도지만 우리에게는 필요충분조건을 넘어선 절대적 수준의 의존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에 모든 국력을 쏟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실체는 어떨까. 사람들은 미국의 엄청난 GDP와 금보유량, 기축통화, 군사력에 미국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일견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그 GDP의 대부분은 이미 부실이 밝혀진 금융 쪽에서 나온 것이고, 나머지는 안에서 만들고 부시고, 먹고 한 것의 결과다. 그게 대외적인 영향력이 있을까. 금보유량도 좋지만 과연 과거처럼 금본위제도 아닌 상태에서 금이 미래 금융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달러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가진 2조 달러의 외환이나 국채는 대부분 미국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2005년 중국해양석유(Cnooc)가 미국 8위 정도의 정유회사인 유노칼 인수를 거부할 때, 이미 달러가 그리 쓸모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EU, 러시아 등과 함께 달러 기축통화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이 군사력에서 절대적인 우위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이미 700기에 달하는 각종 핵무기 패키지를 가졌고, 인공위성기술까지 가진 중국과 전쟁을 불사할 만큼 미국이 완벽한 군사적 우위를 점하지 않은 것도 불문가지다.

때문에 미국으로서 쓸 수 있는 수들은 많지 않다. 중국의 소수민족 분쟁을 통해 구소련처럼 힘이 약해지거나, 북한을 분쟁지역으로 만들어서 근접한 중국에 타격을 가하는 안이 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미국에 ‘몰빵한다’고 한반도의 전쟁위험이 사라질 것인가. 오히려 북한을 고립하는 지금이 더 무서운 상황인데도 우리 정부는 미국에 ‘몰빵한다’.

이야기가 헛돌았는데, 오늘 말하려는 책은 마비쉬 룩사나 칸의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바오밥 간)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폐쇄를 결정했던 미국의 국외 범죄인 수용소다. 우선 국외라는데 관타나모가 있는 곳은 쿠바의 동쪽 지역이다. 너무 신비하지 않은가. 카스트로나 게바라로 익숙한 쿠바의 한 켠에 미국의 수용소가 있다는 게 어떻든 미국은 이 땅을 차지하고 범죄수용소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범죄자들은 대부분 정치범이나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이들이다. 테러리스트는 미국에서 체포된 이도 있지만 또 상당수는 아랍권에서 체포된 이들이다. 때문에 미국에서도 모든 면에서 터부시되고 죄악시 된 인물이다.

그런데 이 공간에 아프카니스탄계 미국인 칸이 문을 두드린다. 2005년 마이애미 대학 로스쿨에서 공부하던 칸은 이들의 불합리한 처벌 과정에 분노하고, 그곳에 통역과 견습 변호의 업무를 신청한다. 누가 봐도 아랍형 얼굴인 그녀는 관타나모에 들어가 수감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 아프카니스탄에 출장을 다녀오는 등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속칭 테러리스트는 진짜 테러리스트도 있지만 대부분은 현상금에 눈이 먼 이들에게 잡혀온 무고한 사람들이라는 데 놀란다. 소아과 의사로 봉사활동을 지원했다가 테러범으로 몰려서 잡혀온 무소비는 재판도 받지 못하다가 1년 반이나 억류된 다음에 ‘적 전투원’으로 분류되어 재판을 받는다.

염소치기였다가 운동화 한 켤레를 받고 로켓포를 쏘았다는 혐의로 체포된 타주를 이야기를 읽으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한눈에 보인다. 최악의 감옥에 갖혀 있지만 타즈는 낙관적인 자세로 영어를 배우고, 찾아온 변호사에게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을 힐난할 만큼 유머러스하다. 또 방송기자로 일하다가 잡혀와 단식투쟁으로 자신을 변호하던 알하즈의 처참한 투쟁 모습도 보여준다. 또 자살을 위해 고분 분투하는 알도사리의 편지(226페이지)는 과연 이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실체인가를 경악하게 한다.

무고한 이들이 왜 잡혀서 관타나모로 올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5천에서 2만5천달러에 달하는 현상금 때문이다. 1년 국민소득이 300달러인 나라에서 이 돈은 눈을 뒤집히게 하는 액수일 뿐만 아니라 정적들을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 결국 죄 없는 이들을 관타나모라고 하는 감옥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현상의 실체를 보기 위해 부모의 고향이자 범죄자들의 고향인 아프카니스탄으로 향한다. 거기서 그녀는 남편과 아버지가 잡혀가서 핍박받는 이들의 삶을 만난다. 또 방사능 사용으로 인해 기형아가 태어나고 죽음의 땅이 되어가는 현장도 목도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모국인 미국에 대한 희망을 가지려 애쓴다. 에필로그의 첫 말이 “관타나모난에 있는 미국 수용소는 미 국민에 대한 도전입니다”라고 쓴다. 존재하지만 이것은 미국의 실체가 아니라는 항변이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 나쁜 장군이 관리하는 불합리한 범죄수용소라고 말하는 원리와 같다. 그래도 공정한 시각을 가진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관타나모는 폐쇄가 결정됐고, 이곳 수용자들은 미국이나 세계 각국으로 송치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관타나모는 당연히 미국 인권문제의 마지노선이 아니다. 아직도 수많은 곳에 그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반도 역시 미국의 의도에 따라 전장으로 바뀔 수 있는 현실이다. 그런 시간이 오면 어느 날 갑자기 잡혀가 관타나모에 수용된 이들처럼 이 땅에서도 비슷한 피해자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어렵게, 어렵게’ 이런 책이 출간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미국의 마지막 양심이 살아있는 증거여서 안심이 되는 부분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길항적 삶을 실천하고 싶어 <미디어오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97년 DJ가 당선되고나자 자유로워지고 싶어 여행잡지로 전직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못해서 이 잡지가 망해서, 다른 잡다한 신문일들을 하다가 99년 9월 결혼과 더불어 중국으로 건너갔다. 학업과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중국에 적응했다. 2002년부터 '알짜배기 세계여행 중국'을 시작으로 10여권의 중국 관련서를 썼지만 언제나 내 책을 만들기 위해 잘린 나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조만간에 좀 미안함이 덜할 책을 한권 낼 계획이다. 2004년부터는 중국 전문 여행 콘텐츠 회사인 '대국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서 운영중이다. 올부터는 한신대에서 외래교수로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 있다. 한중 교류에 줏대를 세워주는 '한중 문화 하이웨이'라는 막연한 구상을 현실화 시키는데 정신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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