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잡을 수 없는 바람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숲을 흔듭니다. 바람과 함께 양철지붕을 뚫을 것처럼 거센 비가 쏟아집니다.

하루 이틀 내린 비가 아닌데 지금 비바람은 산중을 휩쓸고 갈 기세라 마음 놓고 잠들기 어렵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과 거센 비바람 때문에 깨어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방밖으로 나가 서성여 봅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산마을이라 쉬 무너지거나 물난리가 없으리라 안심하며 잠을 청해 봅니다.

7년 전 태풍이 왔을 때 산골마을에 물난리가 나 멀쩡하던 길이 다 없어지고 산이 무너지고 집은 물에 잠겨 많은 사람들이 피난했습니다. 바람과 물의 힘이 엄청나다는 걸 그 때 보았습니다.

평소에 보면 산이고 계곡이고 언덕이지만 오늘처럼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면 계곡은 그냥 계곡이 아니고 나무가 그냥 나무일 수 없습니다.

거센 비바람에 비 가릴 데 없는 숲속 동물들이며 밭에 심어진 작물들, 숲에 파묻힌 마을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잠을 청합니다.

생각해 보면 장마는 불청객이 아니라 해마다 겪는 익숙한 손님입니다. 이 비로 산천초목이 풍성해지고 강과 계곡이 풍요로워집니다. 마당가에 자라는 감나무와 돌배나무에선 비바람으로 어린 열매가 마당 가득 떨어지지만 실한 열매를 맺기 위한 자연스런 일입니다.

▲ 마당 가득 떨어진 어린 감들 ⓒ지리산

며칠째 계속되는 비로 사람 마음도 침울하지만 햇빛 쨍쨍한 한 여름도 청명한 가을하늘도 이 장마를 거쳐야 만들어지듯 마음을 단련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비가 그치면 짧은 틈에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몸 숨길 곳 없어 보이는 벌들도 빗속에서 꽃을 피운 도라지꽃, 오이꽃들을 찾아 날아옵니다.

▲ 도라지꽃 ⓒ지리산

▲ 오이꽃 ⓒ지리산

7년을 땅속에 있다가 7일을 살 수 있는 매미는 장마라고 여유 가질 틈이 없는지 열심히 울어댑니다.

산골사람은 비 그친 틈에 땔나무를 해오고 밭을 둘러보고 집주변을 둘러봅니다. 아궁이에 가끔 불을 때서 젖은 아궁이도 말리고 집안 습기도 말립니다.

비바람에 넘어진 옥수수 가지 고추들을 손보고 쑥쑥 자라는 풀을 뽑아줍니다. 흐르다 막힌 물줄기는 없는지 둘러봅니다. 사람도 새들도 벌과 매미도 장마를 겪는 모습이 비슷해 보입니다.

▲ 방울토마토 ⓒ지리산

넘어진 고추와 가지를 세우는데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매미는 울지 않는데 빗속에서도 매미가 울어댑니다. 7일 동안 허락된 시간이 온통 비만 내렸으니 매미가 쉴 틈이 없는 가 봅니다.

빗속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저 매미처럼 살아가는 확실한 이유를 아는지, 그 확실한 이유를 위해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는지’ 마음 깊이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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